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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겪을만큼 겪어봐야, 진짜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Joyfule 2018. 4. 30. 11:37


 인생을 겪을만큼 겪어봐야, 진짜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이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 이유는 기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아서이다. 아마 기도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게 그리 버겁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단호하게 명령하고 목회자들이 간곡하게 권유하는 데도 별 다른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기도훈련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선별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그 사람들은 기도를 해야 할 필요가 절대적인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세상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게 된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라 기도할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며, 설령 기도를 시도해도 간절히 기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붙잡고 혹독하게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쳐봤자 입만 아프다. 그래서 필자는 그런 사람들이 기도훈련을 요청해도 뜨뜻미지근하게 대답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언제 기도하게 되는가? 인생의 황혼기에 다가서면, 드디어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인생이 무상함과 더불어 흙먼지같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자신의 존재감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적어도 50세 이상이 되어야 비로소 인생의 의미를 곱씹기 시작한다. 50세가 넘어서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성적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청춘이거나 인생을 꽃피우는 시기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과 삶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살아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간의 무능함과 이 땅에서의 삶의 덧없음을 아무리 얘기해봤자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50세 이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50세 이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두 인생이 덧없음을 느끼고 기도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필자가 말하려는 의도는, 적어도 50세 이상이 되어야 인생을 돌이켜볼 수 있는 나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당신이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못하는지 아는가? 아직도 당신의 능력과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할 시간에 더욱 일을 하고 공부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돈을 쌓아두고 싶어 한다.

 

아니라고? 기도할 필요성도 느끼고,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중이라고? 오홋, 그런가? 그렇다면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다. 그러나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당신은, 아직도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기도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당신이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다면 하나님과 하나가 된 상태를 경험했을 것이며, 그런 사람들은 성경에서 약속한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기도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사람들을 거의 본적이 없다. 그러나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보았다. 그들은 그런 증거로서, 그동안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금식기도 혹은 여러 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였노라고 침을 튀겨가며 말하곤 했다. 열심히 기도했다고하는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필자도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필자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의 기도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1:22)

 

위의 두 구절은 공통점이 있다. 구하는 대로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러나 조건을 약간 다르다. 하나는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가 되었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믿고 구하는 것이라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도할 때 믿고 구한다고 소리를 지르지만 응답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 그런지 아는가? 그들이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예수님이 믿는다고 판단하는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말하는 믿음의 증거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드러낸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믿고 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여보았자 허공에 흩어지고 말뿐일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4,25)

 

그렇다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려면 하나님 안에서 당신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할까, 아니면 하나님이 당신 안에서 그분의 뜻을 내려놓으실까? 당연한 얘기를 왜 하냐고? 그렇다. 당신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려면, 먼저 당신의 뜻을 내려놓아야 한다. 당신의 계획과 목표, 생각과 소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은 성경에서는 자기부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부인이란 자기를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가 되려면 자기부정부터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자기를 부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맞닥뜨리는 고난과 손해를 기꺼이 참는다. 그게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결심을 실천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기도자리에 앉아서도, 자신의 욕심과 계획, 생각과 희망사항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가 될 생각이 전혀 없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서 욕심을 채우려는 가증스러운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네 교회에서 부르짖었던 기도가 아무런 효험이 없이 사라졌던 이유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기도의 방식이, 현재 당신의 신앙성적표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기도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당신의 생각이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 찰 때, 비로소 하나님이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가 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당신의 욕심과 계획, 생각과 희망사항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이 당신 안에 들어오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시라. 그냥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 쉬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온전히 내려놓은 자녀라고 판단하실 때까지 끊임없이 하나님을 불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