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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비극은 불순종의 아들의 숙명이다.

Joyfule 2018. 3. 14. 00:16

 

 

 

인생의 비극은 불순종의 아들의 숙명이다.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조선시대 사극의 주요 단골소재이다. 그의 비극적인 생애가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그는 영조의 외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총명함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그러나 영조의 변덕스러운 성품으로, 아들을 극단적으로 내몰아서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여 급기야 세자는 정신질환에 시달렸다. 그의 병은 울화증이었는데, 요즘 증세로 우울증이다. 그래서 가끔 발작을 일으키고 난폭해져서 사람을 죽이고,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난후에는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부왕이 심하게 책망하면서 더욱 두려움에 빠지면서 증세가 더욱 깊어졌다. 결국 세자의 성품은 돌변하면서 난폭해졌고, 여러 나인과 환관을 죽이고 자살을 기도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보다 못한 영조를 아들을 뒤주 안에 가두고 음식을 주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역사가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르게 한 원인이, 영조의 조급함과 변덕스러움 뒤에 숨은 두려움 때문에 아들에게 완벽함을 기대하였지만, 실망감에서 더욱 아들을 닦달하였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조선시대 왕가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대하면서 얻은 교훈은, 불순종의 아들들이 겪는 불행한 삶은 애잔한 슬픔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모르던 조선시대에, 이 문제의 해결책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한중록이라는 책으로 기록하면서 한 많은 인생을 남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극의 가족사가 조선의 왕가에만 있는 일이겠는가? 우리네 주변에도 이런 비극의 주인공들이 차고 넘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왜 우리가 비극적인 인생극장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1:21~32)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고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사람들이 바로 크리스천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야,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게 된다고 배우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영광을 받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류의 조상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 때문에 사람들은 불행에 허우적거리면서 고통스러워하다가 생명과 영혼을 사냥당하면서 지옥의 불길에 던져지는 운명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보호하심을 거두면, 세상을 지배하는 왕인 악한 영들이 포로로 잡아 학대를 하며 고문을 하다가 지옥의 불에 던져 넣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행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며 감사하지도 않기 때문이며 마음이 죄로 어두워져서 변질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욕심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어 어둠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에게 학대받도록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자녀들에게 진노를 일으키며, 지옥에 던져 넣음으로 가혹한 형벌을 받게 하겠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2,3)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5:6)

 

성경은 불순종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세상풍조를 따르고 세상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자들이며, 세상의 권세 잡은 자가 바로 불순종의 아들들을 지배하는 악한 영임을 밝히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내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불순종의 자녀인가 아닌가? 당신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한다면 당연히 불순종의 영이 역사하는 불순종의 자녀일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네 교인들은 영접기도를 하고 주일성수를 하면서,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녀로서 천국에 들어갈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옳은 게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잣대로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인지,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불순종의 아들인지 어떻게 알 것인가?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4:4)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7)

 

불순종의 아들이 하는 일은 세상 풍조를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 즉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육체의 욕심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 때문에 교회에서 드높은 직분을 지녔거나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되었든지, 아니면 엄청난 헌금을 드리고 각종 봉사를 오래 했으며 담임목사가 시키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정적으로 했든지 간에, 육체의 욕심을 쫓아 살아간다면 하나님과 원수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좇아 육체의 욕심을 채우며 자아성취와 부와 성공을 추구하는 자들은, 죄다 세상과 친구가 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세속적인 축복을 받아, 부자가 되고 소원을 이루며 자녀가 잘 되고 성공하는 삶을 얻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기독교인으로 주일성수를 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것에 상관이 없이, 일상의 삶에서 당신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이, 자신이 원하는 부와 성공, 쾌락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해보면, 당신이 불순종의 자녀인지 아닌지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불순종의 자녀에게 역사하는 미혹의 영은 그렇게 녹록한 놈이 아니다. 당신의 머리를 타고 앉아 교묘하게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어 속이지만,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하여 철썩 같이 믿게 하는 놈이다. 그래서 지혜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솔로몬의 고백을 말씀드리겠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2:1~11)

 

위에서 솔로몬의 고백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내가, 내 마음에, 나를 위하여등의 접미사와 명사가 함께 붙어 나오는 이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지혜를 지니고 막대한 부와 명예를 독차지 하면서, 자신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을 죄다 소유하였으며 인생의 쾌락을 원 없이 누려보았던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부와 명예 뿐 아니라 왕비와 후궁이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가 누린 엄청난 부귀영화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말년에 지었다고 전해지는 전도서에서, 그가 자신을 위해 한 일들은 헛되다고 말하고 있다. ‘헛되다는 히브리어 허벨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쓰레기라는 의미이다. 이 세상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고 지혜를 가지고 쾌락을 누렸던 솔로몬 왕의 고백은, 세상의 즐거움은 죄다 쓰레기와 같이 아무짝에도 쓸데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세상의 탐욕과 쾌락을 쫓는 삶은 허무함을 던져질 뿐이며, 종국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지옥의 불 못에 던져지는 끔찍한 재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솔로몬이 허접쓰레기로 버렸던 것들을 조금이라도 얻어 보려고, 평생을 다 바쳐서 날마다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어째든 당신은 탐욕과 쾌락을 추구하며 살았던 인생에서 행복을 찾아서 누리시고 계시는가? 아니라면 그 이유는,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의 포로로 잡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역사하는 미혹의 영을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불행에 빠져서 고통을 주어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도록 허락하셨다. 어떤가, 섬뜩하지 않은가? 그래서 당신은 필자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왕이자 세상의 신이자, 세상의 권세와 통치자로서 지배하는 악한 영은 어떻게 사람을 도륙하는가? 가장 많이 하는 공격이, 사람들의 뇌를 지배하여 정신질환에 걸리게 하거나 고질병을 걸리게 하여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가족 중에 정신질환자나 중독자, 고질병에 걸려서 고통 받고 있다면 필시 악한 영의 포로로 잡혀 있는 셈이다. 또한 악한 영들은 가족과 친한 이들에게 미움과 분노를 넣어주어 싸우고 갈등하게 만들며 분열시킨다. 당신이 가족을 포함해서 주변이웃이나 직장동료나 상사 등에 대한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살펴보라. 염려와 걱정, 두려움과 불안, 의심과 회의, 좌절과 절망, 미움과 분노, 억울함과 불평, 짜증과 원망 등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나지 않고 있다면, 필시 당신의 몸 안에 미혹의 영이 집을 짓고 있는 명백한 증거이다. 마지막으로 악한 영은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하는 일마다 실패뿐이며 열매가 없거나, 자녀들은 공부를 안 하고 부모의 말에 불순종하고 가정과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키며, 직장도 수입이 변변치 않으며, 투자나 자영업도 적자가 나서 악성부채와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다면, 이런 현상은 성경에서 명시한 죄이거나 죄의 결과로 드러나는 영혼과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악한 영의 포로로 잡혀 있는 사람들의 영혼과 삶의 모습은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의심과 회의, 건조함과 허무함, 걱정과 두려움, 불안과 절망 등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채워진 상태이다. 그래서 더욱 돈을 쫒으며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게 만들어서 죄의 나락에 빠뜨리게 한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이 땅을 떠나면 지옥의 불에 던져진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조선의 왕들도,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역사하는 미혹의 영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사실을 찬찬히 생각해보라. 이들조차 운명의 허망함과 인생의 불행에, 어찌 할 수 없는 무기력과 무능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러나 당신은 이에 대한 해답을 잘 알고 있다. 바로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를 용서해주시고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셔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시도록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이다.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4:29),

너희가 전심으로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29:13),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8:17)

 

그래서 당신은 영성학교에 와서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훈련을 하고 습관을 들이기 위해 애쓰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을 불러서 안에 들어오셨다고 믿으면 되는데, 왜 계속해서 반복해서 하나님을 불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이미 기도했으면 오실 것을 믿어야 하는데, 주구장창 하나님을 부르는 행위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도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필자가 가르치는 기도를 비성경적이라고 여기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64:7)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53:4)

 

성경에서 사용하는 부르다는 히브리어의 단어는 qr’(카라)이다. 이 단어는 call(부르다), invoke(호소하다, 빌다, 염원하다), summon(불러내다, 소환하다)의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을 부른다는 행위는 자신의 목소리로 하나님의 관심을 끄는 행위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르는 행위가 바로, 하나님을 불러내어서 자신에게 관심을 갖도록 부르짖고 호소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감사와 찬양, 애도, 도움을 요청하는 단어와 같이 사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께 관심을 갖도록 자신을 드러내며, 간구하고 호소하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의미가 총체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하나님을 불렀으며, 그의 아들이 이삭과 야곱도 따라했다. 이는 홍수사건 이후에 살아남아 그들의 조상이 되었던 노아의 아들 셈의 행위를 본받은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141:1,2)

 

다윗은 하나님이 총애하셨던 성경의 위인이다. 위의 말씀에는 그가 어떤 태도로 기도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날마다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오시도록 간절히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사람은 지으신 목적은, 피조물이 자신을 찾아와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서 높이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네 교회에서 이런 기도를 가르치지도 준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는 미혹의 영이 우리네 교회지도자의 머리를 타고 앉아서 속이고 있기에, 거의 모든 교인들이 미혹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날마다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을 간구하면서, 성령이 들어오셔서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며 동행하는 사람만이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기도의 습관을 들이는 자들만이,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역사하는 미혹의 영을 물리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