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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3과) 4

Joyfule 2008. 11. 7. 10:03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3과) 4

 룻기(1): 엘리멜렉과 룻(1장)

 


1-4.
모압은 야누스의 두 얼굴과 같다.

  모압에는 하나님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는 곳이다.  처음에는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파라다이스인 것처럼 다가오지만, 그래서 이곳이 유다 베들레헴인줄로 착각하게 만들지만, 그러나 이 유혹이라는 미끼에 걸려들기만 하면 모두 다 상처뿐인 영광을 얻을 뿐이다.  나는 예외일거라고 착각하지 말라!  오늘도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덜' 거듭난 사람은 현대의 모압이 손짓하는 유혹에 시선을 빼앗긴다.  모압은 늪일 뿐이다.  늪 위에 아무리 그럴듯한 것들이 놓여있을지라도 속지 말라!  그것을 붙잡는 한 침몰하게 되어 있다.

  작가 헤밍웨이는 20세기 미국과 인류 문명을 {노인과 바다}라는 그의 작품에서 형상화한다.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앙상한 뼈 뿐이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작가는 인간 실존의 허무를 노인을 통해 고발한다.  그는 자신의 엽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것이 엘리멜렉이 선택한 모압의 실상이다.  모압의 환상에 속지 말라.  하나님은 {엘리멜렉과 모압}이라는 짧은 작품 속에서 엘리멜렉이라는 인간 실존의 허무를 모압을 통해 고발한다.  헤밍웨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엘리멜렉과 다를 뿐 인간의 항구에 정박하였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죽어 있는 자신의 앙상한 시체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위기는 영적으로, 생활 면에서, 그러니까 삶의 전 영역에서 찾아온다.  바로 그때, 이러한 때에 진실로 깨어 있는 자라면 다음과 같아야 한다.  흉년이라는 고난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더 통찰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도 흉년은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데, "예수 안에도 고난(십자가)은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신앙공식'을 떠올리면 어려울 게 없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떤 일을 시작하실 때 뺄셈부터 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렇게 무게를 달아 보실 때 "아, 하나님이 뭔가 또 일을 시작하셨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가슴이 뛰어야 한다.  많은 경우 뎃셈만을 기대하고 기다리다가 실망하고 좌절하고 끝내 버리기 때문에 은혜의 샘이 곧 말라 버린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너진 이스라엘의 제단을 보며 애통해 할 수 있어야 한다.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버린 앙상한 이스라엘의 소망 없음을 보며 목놓아 울었어야 한다.  민족을 가슴에 품는 사람, 교회를 심령에 끌어 안는 사람이 되라.  우리의 눈에는 모압이 들어와서는 안된다.  비록 흉년으로 휘청거리고 있을지라도 유다 베들레헴이 우리의 영적 시야에 들어와야 한다. 하나님의 심정(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눈물을 보았어야 했다.  그리고 회개했어야 했다.  하나님과 눈높이를 맞추면 역사는 이루어진다.  유다 베들레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물을 보아야 한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철부지 인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보시는 하나님의 가슴을 헤아려야 한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네가 내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23:37-38)


1-5. 부
스러기 묵상

도피가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아무리 베들레헴이 타락하며 예루살렘의 성전(교회)이 세속화되었다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  예루살렘의 풍성했던 은혜를 기억하며, 점점 그 빛을 잃어가는 베들레헴의 영광을 목숨 다 하여 지켜가야 했던 그였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심정으로 베들레헴에 뼈를 뭍을 각오를 했어야 한다.  여러분! 어떤 교회가 사랑과 은혜 가운데 부흥하는지 아나요?  엘리멜렉처럼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 흉년'을 만나도 그곳에서 생명을 건 신앙의 승부를 해내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건강하게 성장한다.  떠돌이 엘레멜렉, 떠돌이 성도들에게는 소망이 없다.  베들레헴은 우연히, 스스로의 힘으로, 자생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1-6. 도피자의 행로

  문제는 피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그냥 그대로 덮어두거나,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으로도 역시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 해결은 그 사람의 영적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