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인터넷성경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4과) 2

Joyfule 2008. 11. 17. 00:03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4과) 2

 룻기(2): 엘리멜렉과 룻(2장)


2막1장 서곡


하나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세기에서부터 작정하고 섭리하신 하나님의 이야기(The Story)는 결코 변경되거나, 수정되거나, 포기되거나, 가감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열심이다.  이 '하나님의 열심'(왕하19:31, 사9:7)이 이루어지는 것이 역사의 수레바퀴인 것이다.  모세와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30)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룻기를 통해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촘촘하게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섭리하시는가를 보아야 한다.  이것은 우연히, 운이 좋아서, 밤에 돼지꿈을 꾸었더니가 아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이다.

1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하나님은 보아스를 준비하셨다.  우연은 없다.  회개하고 주 앞에 나올 때 비로소 하나님은 은총의 통로인 '보아스'를 만나게 하시고 붙여 주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등장하는 사람은 바꾸어질 수 있지만 -엘리멜렉에서 나오미로, 나오미에서 룻으로, 룻에서 보아스로- 그분의 계획은 결코 포기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먼저 포기하는 것은 교만이며, 가장 큰 불신앙이다.

그는 엘리멜렉의 친족이다.

그는 유력한 사람이다.  

2-3절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으나 달라진 것은 없다.  모압에 있을 때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이후나 가난은 마찬가지다.  세상에 있을 때나 예수 믿기로 하고 교회에 등록한 이후나 문제는 그대로다.  유력한 자와 먹을 것이 없어 보리 베는 자를 따라 이삭줍기를 해야 하는 가난한 자의 대조를 보라.  이것이 베들레헴의 모습이다.  

회개했으니 이제 하나님이 책임지셔야 한다는 말은 좀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많은 경우 회개를 입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회개는 내가 하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꿈꾸는 경우가 그것이다.  내가 할 일은 마음과 입으로 회개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거다는 한마디로 '거지 근성'이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믿음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유력한 자'라고 성경이 소개하는 보아스는 누구인가?  가난한 사람들이 이삭을 주을 정도로 밭을 소유하였다.  그런데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보리 이삭이 자라 열매를 맺고, 때가 되니까 곡식이 창고에 자동적으로 쌓이게 되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이다 알아서 해 주신 것인가?  아니다.  이것만큼 오해하고 있는 것은 없다.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룻은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코 혼돈하지 않았다.  그녀가 밭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보아스를 만났겠는가?  정리하면 이렇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행동을 배제하지 않으며, 인간의 행동은 하나님의 섭리를 앞서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기초가 되어야 한다.

1막 3장에서는 나오미가 묻고 룻이 대답했는데 2막 1장에서는 그 반대다.  룻이 한 가정이 나아가야 할 바를 주도하는 구조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룻 역시 이 일을 독자적으로, 단독적으로 결정하여 시행하지 않는다.  서로 나누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방식을 취한다.  참 아름다운 것은 나오미와 룻이 이처럼 서로 대화(dialogue)를 나누면서 지낼 수 있는 관계였다는 점이다.

4-7절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보리 추수 때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도록 하시더니, 룻으로 하여금 밭에 나가 이삭줍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그 많은 밭들 가운데 보아스의 보리밭으로 인도하셨다.  섭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룻이 이삭줍기를 하고 있는 시간과 장소에 마침 보아스가 나타난 것이다.

보아스 역시 매우 건강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보리 베는 자들과의 대화에서 짐작하게 된다.  서로를 축복하는 사이, 그것도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임을 볼 때 보아스가 얼마나 전인적으로 건강한 사람인가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