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4과) 3 |
룻기(2): 엘리멜렉과 룻(2장) |
이는 뉘 소녀냐?
한편, 보아스는 섬세한 사람이다. 이삭줍기를 하는 가난한 사람에게까지 관심을 줄 정도로 그는 아량과 넓은 마음을 소유한 점이 퍽 인상적이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고아와 과부, 그리고 극빈자들이 이삭을 줍는 일을 통해 끼니를 연명하였다. 모세는 이들을 위해 이삭을 남겨 놓을 것을 명하였다. 그런데 보아스의 시야에 이런 부류의 사람인 한 여인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무엇보다 2막 1장의 핫 포인트다. 사실 그냥 쓰윽 둘러보고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해도 룻으로써는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흉년의 고통을 제하시고 우리를 권고하사 땅의 소산을 먹도록 양식을 주셨는데 왜 하필 젊은 여인이 홀로 이삭줍기에 나섰을까? 아마 뭐 남모르는 사정이 있나보다. 그것까지야 내 알 바 아니지. 이삭줍는 것도 자존심 상할텐데 방해나 말아야지."
그러나 보아스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마침내 무엇인가 어떤 일이 새롭게 시작될 순간이다. 룻기 전체를 두고 가장 극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그것은 보아스와 룻의 만남이다. 만남은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다. 거기에는 기대와 바램과 소망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비하면 극적이지도 않고 뭐 특별하지도 않다. 그럴듯한 장소도 아니고 보리밭에서의 만남이다.
우리는 흔히 이처럼 별스러워 보이지 않는 만남들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하는 경향이 많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만남, 기념될 사건,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경험되어야 만 무슨 '느낌이 온다'는 둥 하면서 그때부터 비로소 뭔가를 시작할까, 그래서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해 보면서 최대한 실리(實利)가 보장될 때에야 행동을 개시한다. 만약 보아스가 현대인이었다면 그는 결코 보리밭 스켄들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 간격만큼이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일하고,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납하시고, 상하고 찢긴 심령들을 싸매어 주시며, 심판 받아 마땅한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정도로 온 인류를 사랑하신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처럼 세상을 보는 사람, 당신처럼 약자들을 위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주목하신다. 하나님은 빤한 계산 속이 보이는 태도로 뭔가 얻어 보겠다는 식의 굽신거림의 사람에게 당신의 섭리를 보고 듣고 얻고 누리도록 만드시지 않으신다. 섭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몫이다. 이점에 있어서 보아스와 룻은 분명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
룻은 자신의 이름보다도 자신의 삶이 소개된 사람이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시모(媤母) 나오미를 좇아 베들레헴까지 왔다. 그리고 비어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여 밭에 나와 이삭줍기를 하며 베들레헴의 험난한 삶을 시작하였다. 사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이미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자자하게 소문이 난 상태였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살펴볼 본문 가운데 보아스의 말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렇듯 그녀는 온 베들레헴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었다. 적절한 가십(gossip)거리가 없던 차에 룻은 각별한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그녀를 주목하고 계신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과 기대하는 것대로 뒤쫓아 오시는 분이 아니시다.
룻은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맡긴 사람이다. 홀로 된 시어머니를 따라, 그리고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 위해 모압 지방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회개하고 주님을 따랐으니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셔야 한다는 식의 신앙으로 명함을 내 놓지 않았다.
부스러기 묵상
지금 선 자리는 아름답다.
그녀를 향하신 섭리는 이미 시작되었다. 룻은 그 섭리를 따라 성실하게 걸어가고 있다. 꾸밈 없이, 뭔가 일확천금(一攫千金)을 꿈꾸지도 않고, 그렇다고 후회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생각보다 앞서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비굴하게 타협하지도 않는다.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며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더더욱 그녀는 하나님보다 앞서 행동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새로 시작된 베들레헴 생활을 자신의 어떤 의도대로 끌고 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묵묵히 지켜나간다. 바로 그런 삶의 자리에서 보아스와 대면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를 의식하지 않고 이삭줍기에 여념이 없는 여인, 그녀가 바로 자신의 친족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를 따라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이방 여인 룻이라는 것, 거기까지 묵묵히 걸어왔다.
과연 룻에 대한 소문과 그녀를 직접 본 보아스가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좀 더 지켜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계속되는 룻 이야기를 어떻게 섭리해 가실 것인가? 이 일에 보아스와 룻은 어떤 모습으로 쓰임 받을 것인가? 이방 여인이라는 하나의 넘을 수 없는 변수가 이 두 사람의 만남에 어떤 변수가 될 것인가? 문제가 점점 복잡해 질 뿐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양상을 띄기 시작한다. 보아스와 룻, 이들은 모두 지금 서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한 사람들이다. 가장 기본적인 면에서 이들이 해 놓은 베들레헴 스타트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우리 역시 지금 선 자리를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싶어하는 묵상의 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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