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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배경

Joyfule 2019. 6. 17. 01:13


 

     종교개혁의 배경

 

 

2.3. 부처와 깔뱅을 중심한 스트라스부르와 즈네브: 교회론 중심

큰 정치 세력인 칼 5세(Karl V)의 통치 속에 살면서도 은혜론과 기독론에 기초를 둔 구원론으로 대표할 수 있는 '이신칭의' 복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회의 개혁이나 교회 조직에 무관심했던 루터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조국 '스위스'의 독립을 위해서 "훌륭한 시민만이 휼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신념하에 작렬하게 조국을 위해서 전장에서 순국(교)한 쯔빙글리와는 다른 측면들이 부처와 깔뱅에게서 발견된다. 즉, 부처와 깔뱅이 활동하던 곳은 루터가 활동하던 곳과 같이 큰 국가도 아니었고, 쯔빙글리가 활동하던 곳과 같이 산간 지역에 흩어진 목장 촌락들로 구성된 연맹 공동체도 아닌 자유 도시 국가인 스트라스부르와 즈네브였다.

 루터와 쯔빙글리는 일생 동안 조국에서 일했지만, 부처와 깔뱅은 조국을 떠나 망명 생활을 했다. 부처는 영국 켐브리지 대학 명예 교수로서 만년을 보내고, 깔뱅은 즈네브에서 그의 활동 말기에 비로소 시민권을 획득했다.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볼 때 부처와 깔뱅이 살던 두 도시는 비텐베르크와 쮜리히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개혁파, 즉 부처-깔뱅파는 루터파와 쯔빙글리파의 합작품이라는 단순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 개혁 당시만해도 루터와 그의 지지자들은 개혁파 종교개혁자들을 쯔빙글리파의 지지자들이라고 비판하고, 쯔빙글리파는 그들을 루터파의 지지자들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은 루터파와 쯔빙글리파 쌍방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성찬론 논쟁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는 개혁파는 루터파와 쯔빙글리파의 단순한 합작품이 아니라, 두 전통의 창조적 수용 발전이라고 보아야될 것 같다. 이 두 전통의 창조적 수용 발전이 자유 도시 국가와 조화를 이루어 개혁파 종교 개혁의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세 가지 종교 개혁 모델의 특징들을 몇 가지 예를 통해서 비교해보도록 하자. 물론 이런 시도는 종교 개혁 운동의 세 모델의 특징들을 너무 단순화시킬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찬론에서 루터의 경우 기독론에 강조점을 두어,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각각의 고유한 독립성 보다는 일치성에 관심을 두어 소위 '공재설'을 취하고 있다. 쯔빙글리의 경우 포도즙과 빵의 실재적 효과 보다는 단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회상하거나, 기념하는 차원에서 '상징설'이나 '기념설'에 가깝다. 그러나, 부처와 깔뱅은 성찬의 근거와 내용이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루터의 기독론적 성찬론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루터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차이점을 강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physical)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부활 승천하신 이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만 계신다고 주장하였다 (소위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 'Extra-Calvinisticum').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영(보혜사)을 통해서 성찬에 임재하시므로, 그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루터는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임재 방법을 기독론적 차원에서 생각하여,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에 집착하였다면, 개혁파에서는 성령론적으로 생각하였다. 쯔빙글리는 성령의 매개적 성격을 간과하였다면, 개혁파 종교 개혁자들은 성령의 매개적 활동을 잘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종교 개혁자들이 '성령의 신학자'로 불리워지지만, 부처와 깔뱅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루터의 경우 '이신칭의' 교리의 강조로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의 선호도가 높지만, 부처와 깔뱅에게는 교회론과 목회 신학에 대한 관심으로 에베소서가 그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종교 개혁자들 중에서 최초의 목회 신학인 '올바른 목회학' ('Von der wahren Seelsorge', 1538)을 저술한 이가 개혁파의 아버지이며, 깔뱅의 영적 아버지였던 부처라는 사실은 우연 일치가 아닐 것이다. 쯔빙글리의 경우는 선택론보다는 섭리론이 강조되어서 마태 복음을 선호하고 있다. 

 
종교 개혁 운동의 세 가지 모델의 특징의 차이점은 교회와 국가 관계 문제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루터의 경우 교회와 국가는 각각 고유한 독립성이 유지되고 있는 반면, 상호 밀접한 관계의 약화가 우려되고, 쯔빙글리의 경우 국가와 교회가 거의 동일시되어서 각각의 고유성 특히 교회의 국가로부터의 독립성이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부처와 깔뱅의 경우 교회와 국가는 각각 고유한 기능과 영역을 유지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상호 협력-비판 관계에 있다. 즉, 국가는 섭리의 차원에서 사회 안녕 복지와 잘못된 이단을 처벌할 의무를 띄고 있는 반면, 교회는 선택론의 측면에서 하나님의 나라로서 영적인 일에 관여하고 있다. 루터와 쯔빙글리와는 달리 부처와 깔뱅에게는 교회의 치리가 교회론과 성화론과 관련하여 강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루터에게는 구원론이, 쯔빙글리에게는 국가론이, 부처와 깔뱅에게는 교회론이 강조점을 얻고 있다. 


2.4.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

스토페르는 종교개혁의 다양성 속에서의 통일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결국, 16세기 기독교 세계를 흔들었던 종교적 문제에 그 종교개혁(La R forme)은 기다렸던 응답을 주었다. 어째서 그 종교개혁인가? 뤼시앙 페브르(L. Febvre)는 분명 종교개혁들(les R fomes)이란 표현을 더 좋아했으리라. 여기서 이 말을 단수로 취급하는 것은 '와해된 중세 세계의 요청'에 종교개혁자들이 준 응답의 다양한 강조점들을 등한시하지 않으면서 특별히 그들 메시지의 어떤 통일성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한번 이상 그들을 분리시켰던 여러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매(章) 제목들에 내포되어 있다

 - 종교개혁자들은 근본 문제에 대한 동일한 결정을 가졌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를 본질적으로 심판주처럼 여기게하는 번민을 이기기 위해서, 그들은 한결같이 구속주 그리스도에게로의 동일한 의뢰, 은혜의 전능성에 대한 동일한 주장(이것이 유명한 sola gratia이다), sola fide에 대한 동일한 주장(이것을 통해서 그들은 칭의가 인간적인 어떤 선서나 규정에 의존하지 않는 무상의 선물이라고 이해했다), 교회를 신자들의 모임으로 여기는 동일한 이해법, 그리고 성경을 설교의 생생한 말씀을 통한 끊임 없이 현실화되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로 여기는 동일한 태도(이것이 sola scriptura이다)를 가졌던 것이다." 

 
개혁파 전통 속에 서 있는 우리 나라의 장로 교회는 루터의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의 자연 신학 사상에 근거한 마리아론, 면죄부 등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은혜론과 기독론에 기초한 구원론, 즉 '이신칭의' 복음을 불변의 유산으로 간직할 수 있고, 말씀을 향한 루터의 열정을 배울 수 있어야겠다. 하나님의 저주로 전사했다는 비판을 들었던 쯔빙글리에게서 민족과 국가의 고난을 용감하게 짊어진 '민족 교회'와 '국가 교회'의 용기를 본받아야 되겠다. 그나마 연중 행사에 그치는 성찬식을 부처와 깔뱅의 교훈에 따라 '영적 임재설'(성령론적 성찬 이해)을 따르지 않고, '상징설'을 따르는 우리 장로 교회는 자신의 신앙 뿌리에 대한 무지를 반성해야겠다. 가장 풍성한 靈性(영성)의 寶庫(보고)인 시편으로 만들어진 시편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고유한 개혁-장로 교회 전통에도 불구하고, 우리 장로 교회에서 아직도 대부분의 부흥성가로 구성된 찬송가만이 사용되고 있다. 믿음으로 칭의 되어 구원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열매로 선행이 따르기 마련이다.

성화의 삶이 없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교회의 치리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명무실해진 것은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가 기독교 윤리의 부재를 낳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 같다. 우리는 다양한 종교 개혁 운동 형태를 성령의 은사와 활동의 다양성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전통 상호간의 우열을 저울질할 때 신중을 기해야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파 종교개혁 신학은 균형 잡힌 성서적인 신학 전통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우리의 형편에 적절한 종교 개혁 운동 모델을 도입 적용하면서도, 루터가 재발견한 은혜론과 기독론에 기초한 구원론, 즉 '이신 칭의' 복음을 약화시키거나 놓쳐서는 안되겠다. 

3. 개혁-장로교인은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3.1. '나'('우리')는 왜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인이 아니고, 반드시 기독교인이어야만 하는가?
이 질문은 '진리'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므로, 여기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우리의 엄숙성과 진실성을 요구한다. 이 문제는 기독교를 많은 종교들 중에 하나로 이해하느냐(종교다원주의 등), 기독교만이 구원의 참 종교이고, 다른 모든 종교들은 거짓종교들이라는 양자택일의 문제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3.2. '나'('우리')는 왜 로마카톨릭교도(천주교인)가 아니고, 개신교인(프로테스탄트)이어야 하는가?
이 문제는 특히 구원론과(롬1장-2장) 성서와 전통의 관계 문제이다(행15장). 개신교의 창시자인 루터는 비록 그의 당시 로마카톨릭 교회 자체를 적그리스도의 교회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불렀다. 21 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개신교도로서 우리는 지금도 루터의 이런 판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3.3. 개신교인(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오순절교회 등)로서 '나'('우리')는 왜 개혁장로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의 교인인가?
교회의 다양한 조직과 구조, 정치 형태는 대체로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1) 중앙집권적인 교황-감독 교회(로마 카톨릭교회, 그리스-러시아 정교회, 성공회, 감리교 등), 2) 지방분권적 교회(회중교회 등), 3) 개혁-장로교회. 개혁장로교회의 창시자들은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의 '질서'(ordo Dei = the order of God)까지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개혁-장로교회의 창시자들은 성경 주석을 근거로 하여 '장로회'를 중심한 교회법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치리'나 '권징'은 로마카톨릭교회에서는 사법적 근거를 갖고, 재세례파에서는 윤리적 근거를 가지면서 선택론과 결부되지만, 장로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구원과 치료의 수단으로서 선택론과 결부되지 않고 교회적, 목회-상담적 측면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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