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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知)와 사랑15. - Herman Hesse.

Joyfule 2012. 9. 9. 08:32
 
  
지(知)와 사랑15. - Herman Hesse.   

옮긴이: 최달식
펴낸곳: 교육문화연구회
그러는 동안 골드문트는 친구들에게서 차차 고립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친구들이 골드문트한테 버림을 받고 배반을 당했다고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그와 나르치스의 우정을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자들은 두 사람의 우정이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악평했는데 
특히 두 사람에게 호감을 가졌던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 우정이 비난받을 만한 언덕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누구 하나 이 두 사람의 인간 관계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의 결합에 의해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들이 결합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동지적인 결합도, 
수도원에서 흔히 있는 그런 류의 결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기독교적인 결합도 아니었다. 
다니엘 원장의 귀에는 두 사람에 대한 온갖 소문과 비난과 증상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원장은 40여 년의 수도원 생활에서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의 우정을 보아왔다. 
그것은 한 폭의 수도원의 그림이었으며 아름다운 경치요, 
때로는 위안이었고 반면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원장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주시하고 있었으나 간섭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배타적이고 격렬한 우정은 드물었다. 
위험하다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그들의 순결함을 한순간도 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장은 그 예외적인 지위에 있지 않았더라면 
원장은 주저하지 않고 그 두 사람을 떼어 놓을 어떤 조치를 취했으리라. 
골드문트가 동급생에게는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고 자기보다 연장자인 선생과 
유독 친근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동등하게, 아니 오히려 더 뛰어 나간다고 간주되는 나르치스, 
그가 특히 좋아하는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방해를 받아도 좋단 말인가? 
그의 우정이 그를 태만과 불공평에 젖어 버리게 했고 
그가 교사로서 열성을 보이지 않았다면 당장에 불러들였으리라. 
그러나 그에게 불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질투심에 의한 오해와 소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다가 원장은 나르치스의 두드러질 정도로 예리하고 다소간은 거만하다고까지 할 
그 특별한 천성을 인간에 대한 지나친 통찰력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원장은 그런 천성을 과대하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나르치스에게 다른 천성이 있었다면 원장은 그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나르치스가 학생에게 골드문트에게 무슨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는 사실, 
자신보다도 혹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골드문트를 
훨씬 더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원장은 의심하지 않았다. 
원장 자신은 골드문트의 태도에 나타나 있는 
애교 섞인 우아한 품위 이외에 그에 대해 달리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학생으로서, 수도원의 일원이며 좀 이른 감은 있지만 
벌써부터 수도사의 일원인 것처럼 느끼고 있는 골드문트에 대해 
다소 감동적이긴 하나 미숙한 열의를 나르치스가 두둔해서 
더한층 격려해 주리라는 것은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믿었다. 
골드문트를 위해 두려워할 것은 오히려 나르치스가 
일종의 정신적인 자부와 학자적인 거만을 전염시켜 주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위험성은 바로 이 학생에게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았다. 
무엇이든 그대로 보고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훌륭하고 강한 성품의 인간을 다스리는 것보다 평범한 인간을 다스리는 것이 
감독자에게는 얼마나 편안하고 단순하며 수월한지 모른다는 것을 생각 할 때마다 
원장은 탄식과 동시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자신마저 불신에 감염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원장은 두 사람의 예외적인 인물을 
자신에게 맡겨 준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하리라 생각했다.
나르치스는 그의 친구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의 천성과 성격을 인지하는 데 특별한 재능을 지닌 그로서는 
이미 오래 전에 골드문트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었다. 
그 젊은이가 갖고 있는 모든 생명력과 빛은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는 감각과 영혼에서 재능이 넘치는, 강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예술가로서의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쨌든 그런 위대한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이, 꽃의 향기나 아침의 햇빛이나 
망아지나 나는 새나 음악을 이다지도 깊이 맛보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대관절 무엇 때문에 정신적인 것에 열중하고 있으며 
또 금욕주의자가 되는 것에 열중하고 있을까? 
나르치스는 그 점에 대해 거듭 생각해 보았다. 
골드문트의 아버지가 그러한 마음을 갖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어떻게 그것을 드러내게 할 수 있었을까? 
어떠한 마법을 사용해서 아들을 흘렸기에 아들은 이런 천명과 의무를 믿게 되었을까? 
그리고 아버지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나르치스는 의도적으로 그 아버지에 대해 화제를 돌렸고 
골드문트 자신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적지 않게 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르치스는 그의 아버지를 상상해 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기묘한 일이었다. 
골드문트가 어릴 적에 잡은 송어나 나비에 대한 이야기, 
친구 혹은 개나 거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새소리를 흉내낼 때 
나르치스는 그 즉시 장면을 연상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아버지가 골드문트의 생활 속에서 그만큼 중대하고 강한 
지배적인 인물이었다면 그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달리 묘사할 수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다른 모습을 그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