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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知)와 사랑17. - Herman Hesse.

Joyfule 2012. 9. 11. 01:51
 
  
지(知)와 사랑17. - Herman Hesse. 

옮긴이: 최달식
펴낸곳: 교육문화연구회
골드문트의 풍부한 상상력은 차츰 마술 같은 길을 지나서 
친구의 생각과 두 사람의 말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의 친구는 또 골드문트의 마음과 여러 종류의 상태를 
침묵으로써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빛 속에서 영혼과 영혼의 새로운 결합이 차츰 익어간 뒤에야 
비로소 언어라는 사다리가 놓여졌다.
수업이 없는 어느 날이었다. 
도서실에서 불시에 두 사람을 우정의 핵심과 의미의 한가운데에 갖다놓고 
멀리까지 새로운 빛을 던지는 것과 같은 대화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수도원에서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던 점성술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었다. 
나르치스는 점성술이란 인간의 운명과 천명에 질서와 조직을 부여해 주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러자 골드문트가 이의를 제시했다.
 "당신은 언제나 차이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이 당신의 가장 특별한 성질이라는 것을 나는 차츰 깨달았습니다. 
가령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커다란 차이에 대해서 당신이 말씀하실 때, 
그 차이는 언제나 차이를 발견하려고 열중하고 계시는 
그 묘한 태도 속에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확실히 자네는 핵심을 찔렀네. 
사실 자네에겐 차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 하지만 내게는 중요한 일이야. 
나의 본성은 학자이고, 나의 천직은 학문일세. 학문이라는 것은 자네 말을 인용한다면, 
'차이를 발견하려고 열중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란 말일세. 
이보다 더 학문의 본질을 내세울 수 있는 말은 없을 거야. 
학문적인 인간에게 있어서는 차이의 확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단 말일세 
학문이라는 것은 차이의 기술일세. 이를테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짓는 특징을 발견하는 것, 즉 사람을 인식하는 것이지."
 "그건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농부의 신을 신고 있기 때문에 농부이고, 
어떤 사람은 왕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왕입니다. 그것은 확실히 차이죠. 
하지만 그런 것쯤은 아직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부와 왕이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다면 
그때는 어린아이도 구별할 수가 없지 않겠나?"
 "학문이라고 해서 그런 구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학문이 어린아이보다 현명하다고 말할 수 없겠지. 그것은 인정하겠네. 
하지만 학문은 어린아이보다 끈질기단 말일세. 
학문은 가장 단순한 특징에만 주의를 하진 않아."
"아니에요. 영리한 아이라면 그것도 가능하죠. 
어린애는 눈짓이나 태도로 왕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당신네 학자들은 너무 거만하다는 
겁니다. 당신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당신들보다 어리석다고 생각할 테죠. 
하지만 지식은 없어도 지혜는 가질 수 있거든요."
  "자네가 그걸 깨닫기 시작했다는 건 기쁜 일일세. 
그래서 내가 우리 둘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현명하다는 것을 뜻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아. 
다만 자네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지."
  "그것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특징의 차이에 관해서는 물론 천명의 차이에 대해서도 때때로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왜 나와 다른 천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이나 나나 똑같이 크리스찬입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수도원 생활을 하실 결심을 결심을 하고 계십니다. 
나와 똑같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십니다. 우리 두 사람의 목표는 똑같습니다. 
우리들의 천명은 똑같습니다. 즉, 하느님한테 돌아가는 겁니다."
  "대단히 좋은 말이야. 교리학 책에 의하면 인간은 모두 똑같지. 
그러나 모든 인생이 그런 건 아니야. 
구세주를 가슴에 안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와 구세주를 배반한 다른 제자, 
이 두 사람은 아마 같은 천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단 말일세."
 "당신은 궤변가입니다, 
나르치스. 계속 이런 길을 가는 한 우리는 서로 다가설 수가 없습니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는 다가설 수 없네."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그건 진심일세. 해와 달이, 바다와 육지가 서로 접근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서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란 말이네. 
이봐,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란 말이야. 
우리의 목표는 서로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인식하고 상대방에게 그 사람이 무엇인가를, 
즉 상대방인 반대자들과 그 보충을 보고 그것을 서로 존경하는 걸 배우는 것이지."
  골드문트는 어리둥절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 슬픈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는 간신히 말했다.
 "당신이 나의 생각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주시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인가요?"
나르치스는 약간 주저하다가 잠시 후 딱딱하지만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