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知)와 사랑82. - Herman Hesse.
옮긴이: 최달식
펴낸곳: 교육문화연구회
걸음을 옮기는 박자에 따라서 두 사람의 노래는
어느 때는 즐겁게, 어느 때는 장엄하게 들렸다.
"오늘은 기분이 썩 좋은 것 같아."
로베르트가 말했다.
"응, 그렇고말고. 오늘은 즐겁지. 요런 예쁜 아가씨를 발견하잖았어.
오, 레네. 시체 치우는 인부들이 너를 남겨두었다니 정말 다행이지 뭐야.
내일쯤은 아담한 우리만의 보금자리가 발견될 테지.
그럼 우린 즐거운 생활을 보낼 거고, 서로 건강하다는 것을 기뻐하게 될 거야.
레네, 달팽이가 제일 좋아하고 사람도 먹을 수 있는 두툼한 버섯을 숲속에서 본 적이 있니?"
"응, 있어."
레네는 웃었다.
"몇 번씩이나 봤는걸."
"네 머리카락은 바로 그것하고 똑같은 갈색이란 말이야, 레네.
냄새도 똑같이 좋거든. 노랠 또 하나 불러 볼까? 넌 배고프니?
내 가방 속에는 아직도 먹을 만한 게 있지."
이튿날, 그들은 좋은 곳을 발견했다.
조그만 자작나무 숲속에서 통나무로 지은 오두막이 있었다.
아마 예전에 나무꾼들이나 사냥꾼들이 지은 듯 했다.
쇠를 비틀고 문을 열었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로베르트도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오는 길에 목동도 없이 서성대고 있는 염소 떼를 만났다.
그중에서 통통하게 살찐 암놈을 한 마리 데리고 왔다.
"자, 로베르트."
골드문트가 말했다.
"넌 목수는 아니었지만 가구사였으니
우리들 궁성에 칸막이 벽을 만들어야겠어. 방이 두 개 되도록 말이야.
레네와 내가 쓸 방 하나, 너와 염소가 쓸 방 하나,
먹을 것도 이젠 얼마 없으니 오늘은 염소젖만 가지고 만족해야만 해.
많든 적든간에 말이야.
너는 벽을 만들어라.
우리 둘은 잠자리를 마련할 테니. 내일은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야겠구나."
세 사람은 서둘러 일을 시작했다.
골드문트와 레네는 잠자리에 깔 것을 찾으러 나섰다.
로베르트는 벽을 만들 나무를 자르기 위해
들판 아무 데나 널려 있는 돌에 대고 칼날을 세웠다.
하지만 그 공사는 하루 안에 끝마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로베르트는 밖에서 잤다.
골드문트는 레네가 아직 남자를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부끄러움을 탔다.
하지만 애정이 풍부한 감미로운 놀이 상대임을 알았다.
그는 레네를 어린애 안 듯 가슴에 안고
오랫동안 잠들지 않고 레네의 가슴의 고동을 듣고 있었다.
레네가 벌써 오래 전에 지쳐서 깊이 잠이 들고 난 뒤에도,
그녀의 갈색 머리 냄새를 맡으며 힘차게 끌어당기면서
한편으로는 그 커다랗고 평평한 구덩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가면을 둘러쓴 악마가 몇 대의 마차에 가득 차 있던 시체를 처넣은 구덩이를.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답지만 이내 시들고 마는 것이었다.
오두막의 칸막이 벽은 매우 훌륭하게 완성되었다.
나중에는 세 사람이 함께 달라붙어서 일을 했다.
로베르트는 그의 역량을 과시하려고 했다.
대패질하는 받침과 연장과 자와 못만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어 줄 텐데 하고 자꾸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은 기껏 칼과 손뿐이므로
열두 개의 자작나무를 잘라서 그걸로 오두막 마룻바닥에
단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두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칡덩굴로 얽어매어서 사이를 막는 길밖에 별도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즐겁고 재미가 있었다.
모두 같이 도왔다.
틈틈이 레네는 딸기를 찾고 염소를 돌보러 갔다.
골드문트는 근처를 뒤져 이것저것 가지고 돌아왔다.
그곳 주변에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특히 로베르트는 매우 안심했다.
전염에 대해서도, 적대 행위에 대해서도 안전했다.
하지만 먹을 것이 아주 조금밖에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불리한 조건도 있었다.
근방에 비어 있는 농가가 하나 있었다.
골드문트는 그들의 통나무집 대신에 그곳을 숙소로 정하자고 제의했으나
로베르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가지고 나온 것은 무엇이든
일일이 불에 그을려서 소독하기 전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골드문트가 거기서 발견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그래도 작은 의자가 둘, 우유를 짜 넣는 통 하나, 그릇이 몇 개, 도끼가 하나였다.
어느 날 그는 들에서 달아난 닭을 두 마리 잡았다.
레네는 골드문트를 사랑하며 행복해했다.
셋이서 아담한 고향을 만들어가며 나날이 조금씩 보기 좋게
가정을 세워간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빵은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 또 한 마리의 염소를 키웠다.
순무를 갈아 놓은 조그만 밭도 발견했다.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칡덩굴로 엮은 벽도 완성되었다.
잠자리를 다시 고치고 아궁이도 만들었다.
시내는 멀지 않고 물은 맑고 달콤했다.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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