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상래목사

참목자와 삯꾼목자를 구별하는 세가지 기준

Joyfule 2020. 3. 22. 02:04


 
     참목자와 삯꾼목자를 구별하는 세가지 기준

 

 

정치인들이 선하고 정직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들은 그들을 찍어준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선한 사마리아인 코스프레를 할 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군가는 국회위원이 되고 대통령도 되어야 한다. 그래서 착한 성품이나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유권자의 입맛을 잘 알고 그에 따라 말과 행동을 잘 하는 이들이 당선이 된다.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가 선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베대통령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볼 때는 악하기 짝이 없지만, 일본국민들은 그에게 표를 몰아준다. 일본 국민들의 마음을 잘 알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선하고 정직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설령 성품이 악하고 이중인격자라도 괜찮다. 오직 자신에게 표를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쥐고 흔드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정치인들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들은 누구인가? 오직 표를 얻기 위해서는 위법과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시정잡배와 다를 바가 없는 정치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결한 성품에 경건한 신앙과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보내준 양들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목자들이다. 아시다시피 천국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원하는 믿음과 성품을 잘 가르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양들로 양육해야 하는 게 그들의 책임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이 따로 직업이 없어도 생계걱정이 없도록 잘 섬기는 이유이다. 그러나 목사들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양들의 마음과 속내를 잘 읽고 그들의 입맛대로 가르치고 인도한다면 천국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을 떠나 심판대에 서 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양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고 인도하지 않는다. 양들의 입맛대로 말하고 가르치면 양들이 지갑을 열어 삶을 풍족하게 해주고 칭찬과 덕담으로 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양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무지하며,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삶에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이런 목사들을 삯꾼목자라고 부른다. 삯꾼목자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양을 치는 이들이다. 그들은 양들의 영혼이 잘 되는 일에 관심이 없다. 오직 양들로부터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삯꾼목자들이 가르치지 않지만, 천국에 들어가는 필수적인 기준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

 

1. 삯꾼목사들은 죄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는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59:2)

 

성경은 하나님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죄 때문이라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다. 죄란 하나님이 싫어하는 생각과 성품, 말과 행동을 총 망라하는 단어이다. 말하자면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명령을 위반하는 것이 죄인 셈이다. 그래서 당신은 날마다 죄와 피터지게 싸워 이기며, 죄에 걸려 넘어진 사실을 고백하고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용서를 구하고 계신가? 목회자의 입에서 죄에 대한 설교를 들어본지 오래 되었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들이 새카맣게 도배되어 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5~8)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생각과 성품, 말과 행동을 총망라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그 죄의 본질은 어떤 말이나 행동, 생각이나 성품이 육체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것에 귀결되어진다. 그러므로 말과 행동의 속내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육체가 원하는 것이라면 죄가 된다. 그러므로 육체가 원하는 생각이나 말, 행동과 철저하게 싸워 이기지 않으면 성령의 사람이 될 수도 없고, 설령 성령과 교제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떠나갈 것이다. 사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이 죄라고 아는 것들만 죄라고 규정짓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 죄라고 규정하는 것들에 대해 무지하다. 성경에는 모든 하나님의 뜻이나 규례, 명령 등을 조금이라도 위반하거나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이다. 성령이 안에 들어오시면 죄에 대하여 세밀하게 깨닫게 해주신다. 그러므로 죄라고 알게 된 모든 것들과 피터지게 싸워 이겨내야 한다. 싸워 이길 수 있고 없고가 중요하지 않다. 싸우는 것이 자신의 몫이다. 싸워 이기는 힘은 성령께서 주신다. 그러나 피터지게 싸우지 않는 사람들은 죄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고, 죄를 싫어하고 끊어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백번 넘어지더라도 싸우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라.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에 대하여 관심조차 없으며, 설령 성경을 읽어서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죄와 싸울 생각이 없는 이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의 삯꾼목사들은 죄에 대하여 가르치기를 꺼려한다. 교인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교인들이 좋아하는 구원과 축복, 위로와 격려로 설교시간을 빼곡하게 채운다. 그런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은혜를 받았다고 좋아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에 대해 무지하고 죄와 싸울 생각도 없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삯꾼목사를 담임목사로 세우는 것이, 바로 유권자의 입맛에 맞게 말하는 정치인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2. 삯꾼목사들은 귀신과 싸우는 능력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16;11)

 

성경은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놀라운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고 있는 어둠의 세상지배자라인 악한 영이라고 선포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탄의 별명이 세상의 임금()이자 세상의 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은 세상적이라는 단어가 마귀적이라는 말로 바꾸어 말하는 것에 주목하시라.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다스리시지만, 귀신들은 죄인을 통치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그들에게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귀신들이 하나님의 종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속성을 이용해서 죄인들을 처벌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어둠은,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귀신들이 통치하는 세상을 말한다.

 

그래서 악한 영들이 바로 세상의 왕이자 막강한 권세를 가진 통치자이며, 세상을 주관하고 다스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교회에서 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교회는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아니한가? 모든 교회가 하나님이 다스리고 귀신들은 얼씬하지 못한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네 교회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셈이며, 죄다 천국을 누리며 살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교인들의 삶을 보라. 세상 사람들과 진배없이 불행한 삶에 허우적거리며 고통스럽게 사는 이들이 널려 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이런 상황을 못 본척하기 일쑤이며, 교회 안에 들어온 교인들은 죄다 천국백성이라고 등을 토닥거리고 있다. 만약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백성이라면 세상 사람들과 진배없이 고단하고 팍팍하게 사는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어야 하며, 귀신들을 향해 세상의 왕으로 세상을 통치하고 있는 상황을 알아듣게 설명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네 교회지도자는 벌거숭이 임금님 코스프레를 하며, 교인들이 귀신들의 포로인 세상 사람들과 진배없이 각종 불행한 사건사고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며 살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므로 귀신들에 대한 정체나 공격 전략과 싸워 이기는 능력에 대해 가르치면서, 귀신들이 들어가서 고통당하거나 공격당하는 교인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야 할 목회자들이, 귀신들을 두려워하며 귀신에 대하여 말도 뻥끗 못하게 하고 있는 게 우리가 마주한 암울한 현실이다. 그 이유는 우리네 목사들은 성령의 능력이 없으며, 교인들의 영혼을 책임질 수도 없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삯꾼목자이기 때문이다.

 

3. 삯꾼목자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4:29)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29:13)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8:1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중략..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1:9~13)

 

필자가 10여년의 기도 끝에 성령께서 나타나서 하신 말씀이, 이제부터 본직적인 사역을 하라는 것이었다. 본질적인 사역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나님을 만나서 동행하는 게 삶의 목적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는 기도훈련이 본질적인 사역이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을 만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방식은, 간절히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것이다. 성경의 위인들은 죄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간절히 부르고 찾은 끝에 하나님을 만났다. 사도들 역시 예수님을 3년 반동안 따라다니면서 제자훈련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에 따라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부르는 기도 끝에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에 입교한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이 하나님을 만난 기도의 방식대로 가르쳐서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고 동행하는 삶을 이끌고 있음은 물론이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11~13)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2:41,42)

 

위의 구절에서 오로지 기도했다는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자. 이 단어의 헬라어는 프로스카르테룬테스이다. 예전에는 이 단어를 전심으로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어쨌든 전심이든지, 오로지... 힘썼다고 하든지 간에, 이 말의 뜻은 대동소이하다. 필자가 다른 말로 대체해보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죽기 살기로, 혹독하게 라는 의미와 같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태도로 성령의 임재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의 영접기도에 아멘 하는 행태와는 판이하게 다르지 아니한가? 그게 오로지 기도하거나, 전심으로 기도하기에 힘썼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네 교회지도자나 교인들이 필자의 주장에 수긍할 리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아무런 변화가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어떤 영적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지도 않는다. 그냥 기독교를 믿는 종교인으로, 성경지식을 머리에 저장하면서 예배의식을 드리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신 사도행전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보라.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며 고질병을 고치면서 영혼구원을 하는 도구로 사용되다가 천국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신은 귀신을 쫒아내고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 귀에 거슬릴 것이다. 그러면서 꼭 그래야만 되느냐고 되묻고 싶을 것이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성경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다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기도를 싫어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왜냐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기도는,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1,20분간 자신의 유익을 소원하거나 삶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읍소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기도에 응답이 없자, 대부분의 교인들이 규칙적인 기도를 하지 않고 교회마당을 밟고 있다. 실상은 목회자들조차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실정인데, 성경에 명령한대로 쉬지 말고 전심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또한 교인들이 기도하기를 싫어하는데, 듣기 싫은 말을 반복해서 가르친다는 것은 교인들의 미움을 사서 쫓겨나갈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삯꾼목사들은 교인들이 싫어하는 기도를 하라고 권면하지 않으며, 덕담과 축복으로 도배한 설교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는 백성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과 진배없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다가 이 땅을 떠나고 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1~15)

 

선한 목자는 예수님께서 그랬듯이, 양들의 생명과 영혼을 위해서 목숨까지 기꺼이 버리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뒤를 이어받아 양들을 치는 목자들이라면, 예수님처럼 양들의 생명과 영혼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결연한 각오를 하며 양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삯꾼목사들은 양들의 눈치를 보고, 양들이 좋아하는 덕담과 위로로 설교시간을 도배하는 아첨꾼이다. 그들은 양들의 영혼과 생명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에 관심이 없이, 오직 자신의 배를 위하여 양을 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삯꾼목자라고 인정하는 목사들은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참 목자인지 삯꾼목자인지 알아내는 기준으로, 오늘 교인들은 듣기 싫어하지만 천국에 들어가는 필수적인 3가지의 조건에 대해 말씀드렸다. 그러므로 이 천국의 조건을 가르치며 양육하지 않는 목사들이라면 죄다 삯꾼목자임에 틀림없다. 당신이 이런 목사가 있는 교회에 있다면 천국에 들어갈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