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하나님께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

Joyfule 2024. 3. 21. 12:24


   하나님께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롬9:14-18)



 과학에 있어 수학으로 결과가 측정이 되는 상대성이론을 주장하는

아인슈타인이 도무지 측정도 이해도 안 되는 양자역학을 향하여 하나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으신다며 그 양자론을 반대했으나 이에 대해 양자론의

개척자인 보어는 하나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하고 응수했다는 일화입니다.

제가 청년시절에 성경을 보기만 하면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적이 많은데

그건 하나님이 제 멋대로 하시는데 도무지 동의를 할 수가 없는 제 죄성이었습니다.

왜 하루에 2만 3천이나 되는 사람을 죽이며 왜 자기 마음대로 여야만 하냐는 반발이었죠.

휴머니즘은 하나님도 우리하기에 달렸다고 보는 모든 종교의 습성과 괘를 같이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피조물인 인간, 거기다가 우물 속에 푹 빠진 두레박과 같이 죄와

사망의 종이 된 내가 하나님께 내 인생을 두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지금 도무지 이해하기도 측정되지도 않는 양자역학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기 중에

거의 다 그 기술로 만들어지므로 관측되고 계산되는 과학만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사물의 원자와 그 구성체인 전자가 일정하지 않고 불특정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함 같이 뉴턴이 말한 것처럼 우주 전체가 큰 공장과 같이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 앞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감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감히 우리가

하나님께 왜 그러시냐고 따지거나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Q. 엿장수 맘대로 같은 하나님이 불의하시나?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9:14)

 

A. 하나님의 작정하심 곧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시는 일에 우리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불편부당이 있으며 편벽이 있겠는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Q.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떠한가요?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9:15)

 

A. 만약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속이 부글부글하면 당신은 아직 죄 가운데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 긍휼히 여기면 앞으로도 계속 긍휼히

여기고 현재 불쌍히 여기면 계속해서 끝까지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공장에서 만드는 제품과 같이 만든 다음 시장에서 팔듯 하지 않으십니다.

예를 들면 목수가 집을 짓기만 하고 완성이 된 후

다른 사람이 사서 그 집에 들어와서 사는 것과 같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약속의 말씀이 반드시 실현되게 하십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같이 똑 떨어지는 인생함수가 아니라 우연 같은 필연의 연속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항상 계시록 관점에서 보도록 해야 합니다.

전 천년이니 무 천년 또는 후 천년의 신학이 다 계시록에서 출발하잖아요?

종말론의 관점에서 교회론이나 구원론이나 기독론 신론 인론 서론까지 다른 겁니다.

완성적인 차원에서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지금의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디오의 하나님, 곧 이미 되어 진 것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을 합니다.

 

Q. 그럼 우리는 어쩌라는 건가요?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6)

 

A. 원하는 자는 ‘자신의 신념과 의지’이며 달음박질은 ‘자신의 노력과 열심’입니다.

제가 젊은 시절 제일 마음에 거슬리는 말씀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였습니다.

왜 가지처럼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헛방이라는 말인가요? 세상은 아닌데...

그리고 잠자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라 하신 말씀이 싫었죠.

그건 제 성격에도 맞지 않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임전태세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패배주의자들만 불러 모아 수리하는 재생공장이라고 여긴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부름을 받아 그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이후엔 간절한

열정이나 달음박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았죠.

오직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아는데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신앙의 초기엔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같고 자신이 선을

결정하는 것 같지만 성숙한 다음엔 순전히 하나님의 작정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그 분의 의지에 의해 되어 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말씀이신 그 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시는 열심과 의지에 연합이 됩니다.

그야말로 천지를 공이놀이 하듯 움직이시는 그 말씀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기화가

되어 말씀의 파장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속에 스며들어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불순종은 성경을 율법의 조항으로 보고

하나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로 행하는 모든 일과 노력입니다.

예를 들면 숟가락으로 밥을 먹으라 하면 '하나님 젓가락이 더 멋있게 보여요' 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원함도, 달음박질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의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Q. 그럼 바로도 주의 도구로 쓰임 받은 건가요?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롬9:17)

 

A. 하나님은 긍정적인 배역이든 부정적인 배역이든 마음대로 쓰십니다.

저도 사실 하나님께 엄청 따지고 대든 사람이 이런 글을 쓴다는 건 기적입니다.

어느 날 도대체 이게 뭡니까? 하고 하나님의 불공평에 대해 대들 때에 하나님은

제 가슴을 그 사랑의 손으로 쓰다듬으셨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 하나님은 정말 크십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울며 고백을 했더랬습니다.

그때부터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기시며(마5:7) 긍휼이 없으면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으며 긍휼은 심판을 이긴다(약2:13)는 말씀을 늘 간직합니다.

 

성경이 바로에게 말씀하신다고 하는데 바울은 성경을 인격화 시켜서

진술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성경이 바로에게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 바로가 하나님의 부정적인 모델로 사용이 되었음을 말씀할 뿐입니다.

성도들은 성경에 집중하여 몰두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푹 빠져 있어야 합니다.

서양속담에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그 속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따라서 말씀에 붙들린 영의 포로가 되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의미로 바로도 하나님이 세우신 일꾼이라고 성경은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과 인간에게 능력과 신성으로 일을 하신다는 걸 알게 하십니다.

거듭난 자들 안에 계시고 그들 가운데서 일하시고 그들 밖에서도 일을 하십니다.

모든 만물들과 인간들이 다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의 주인공이든

악역이든 엑스트라든 다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인도 적당히 쓰십니다.

바로 뿐만 아니라 요나 한 사람을 붙잡기 위해 광풍도 사용하시고

큰 물고기도 동원하시고 박 넝쿨도 이용하셔서 요나를 설득하시는 걸 보세요.

바로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었다 하심은

영화에서 원수가 강하면 강할수록 주인공이 더 빛이 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Q. 과연 우리는 이 사실을 고분고분 수용하고 있는가요?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는지라”(롬9:18)

 

A. 우리가 과연 엿장수 맘대로의 끝판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어떠한 인간이라도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그의 부르심과 긍휼하심

안에 딱 들어오는 순간 입이 막히는 욥과 요나와 돌아온 탕자와 같아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강퍅하게도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알아듣질 못한다고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말씀을 통해 일하시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에겐 자연법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일반은총으로 온 우주를 하나의 기계와 같이 그 말씀으로 작동하시고

그 중에 긍휼히 여길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 부르셔서 그의 자녀로 삼으십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이미 타락한 죄인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