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따질 수 없다

Joyfule 2024. 3. 22. 18:46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따질 수 없다(롬9:19-23)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따질 수 없다(롬9:19-23)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존 듀이의 교육이론에 의한

현대교육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의 최대의 원수일 거라고 봅니다.

지금도 교육자 출신 목사 중에서 하나님의 예지 예정이나 하나님의 작정을

무너뜨리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걸 보면 한숨을 쉬며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인간의 의지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선택할 수도 있고 말씀대로 살려고 결단을

할 수도 있는데 왜 전적 타락이니 무조건적인 선택이니 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포박하여 자존심을 상하게 하느냐고 항변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이 웃으시지요(시2:4)

주식의 초보들을 주린이라고 부른다던데 아마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영린이들겠지요.

 

Q. 하나님의 작정에 우리가 따질 수가 있나요?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롬9:19-20)

 

A.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받아 거듭난 사람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신기한 매커니즘이 있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듣는 대상은 절대로 항거할 수 없는 법입니다. 예컨대 아브라함의 경우입니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아브라함이 아니라 그 누구도 항거할 수 없는 법입니다.

이를 테면 베데스다 못가에 38년 동안 누워있는 병자에게 주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병자가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요5:8)  

만일 교육학에 영향을 받은 지성주의자들은 여러분도 그 병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으면 병도 났습니다. 말씀을 굳게 붙잡으세요 하고 설교를 할 겁니다.

그게 바로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받는가 아니면 자신이 말씀을

믿으려고 신념과 의지를 굳게 하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사실 그 병자는 말씀을 붙잡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이 그 병자를 일으켜 걷게 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허물하시겠느냐? 하고 반문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알아서 하시면서 왜 안 믿는다고 트집을 잡고 계시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네가 뉘기에 감히 하는 표현을 하고 설명합니다.

어허! 이 사람아, 말조심 하라는 모습입니다. 네가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따지느냐는 거죠. 지음을 받은 물건이란 만들어진 것,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지은 자 곧 만든 자에게 왜 이렇게 만들었는가 따지고 허물할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선택과 예정입니다.

하나님께 선악과를 왜 에덴에 두셨지요? 왜 타락을 그대로 방치 했지요?

등으로 하나님의 불공평을 따지는 사람은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이며 물 없는 구름과 같고 뿌리 뽑힌 가을 나무와 같습니다(유1:12)

지음을 받은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어떻게 따질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바울은 구원을 창조적인 사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은 재창조이며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완성의 계획(창1장)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겁니다.

 

Q. 토기장이가 그릇 종류를 정할 권한이 없을까요?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9:21)

 

A. 당연히 그릇 종류는 토기장이의 맘대로 만들어집니다.  

그릇은 그 내용물에 의해 이름이 결정이 됩니다.

김치를 담으면 그릇의 재료와 상관없이 김치그릇이며

금을 담으면 비록 흙으로 만들어 진 그릇도 금 그릇입니다.

그 그릇에 그리스도를 담고 그의 영과 생명이 담기면 바로 귀하게 쓸 그릇이 됩니다.

신앙의 과정 가운데 어느 정도의 수준에 진입이 되면 자신은 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이지만 주의 영광과 형상인 그리스도가 담겼다는 자의식이 뚜렷해집니다(고후4:7)

그로인해 십자가의 도를 배웁니다(고후4:10-11) 그래서 새 언약이 매우 중요합니다(고후3장)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그의 형상을 얻어 그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영광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고후3:16-18)  

 

Q. 하나님의 불공평에 대해 불평을 할 수가 있나요?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롬9:22-23)

 

A. 그리스도 안에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노를 내릴 자에게도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기로 작정된 진노의 그릇들에게도 오래 오래 참으십니다.

그래서 시편73편에서 세상의 악인들의 형통한 모습을 보고 거의 넘어지고

미끄러질 뻔 했다고 기자는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의 아들들의 세대를 알고(시73:15)

성소에 들어갈 때에 악인들의 종말을 알고 오히려 그들이 미끄러운 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시73:17-18) 하나님의 긍휼의 그릇 곧 자비의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기 위하여 지었음에도 아무도

왜 그 사람만 그렇게 했느냐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센 존재는 상천하지에 없습니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 부르심을 받아 의를 얻고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사람은 주여 내가 믿습니다 하고 스스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나를 부르시는 그 자리에 약속을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면

성령이 인을 치시고 보증을 하십니다. 내가 스스로 말씀을 믿고 붙잡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약속의 말씀을 듣고 보여주시는 대로

그 자리까지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온전하다고 인정해 주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