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하나님의 자녀로 확정 받는 조건

Joyfule 2024. 3. 7. 01:31


   하나님의 자녀로 확정 받는 조건(롬8:12-14)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그 믿음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어진 줄을 알고 보이는 것은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라(히11:1-2)는 초자연(supernaturalness)의 신비함을 믿는 것입니다.

과학이 지금 보이는 우주가 홀로그램이라는 말까지 하고 있잖아요?

보이지 않는 창조의 원인에 의해 세팅이 된 하나의 그림과 같다는 뜻이죠.

기독교는 신비를 빼고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비주의는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건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이어서 배격해야 하지만 성경적 신비는

내게 이루어지고 있는 구원 자체가 이성 그 이상의 영적 세계의 신비자체입니다.

롬8장 1절부터 11절까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복을 말씀합니다.

그 다음 12절부터는 그리스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업그레이드가 됩니다.

 

Q.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디에 빚을 지고 있나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8:12)

 

A. 롬8:1절부터 11절 말씀으로 미루어 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적인 의무감으로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마음대로 살면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영의 인도를 받아 살 의무만 있습니다.

새 번역에는 ‘육을 따라 살 책임이 없습니다’ 다른 성경에는 ‘육에 빚진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더 이상 육신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앞의 말씀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또 대접이 달라지는데 ‘형제들아’ 하고 차원이 달라집니다.

형제들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을 전제하고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아는 바울이 형제들이여 할 때에는

듣기 좋아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굉장한 내용을 담아서 말하는 겁니다.

요한서신에서는 요한이 ‘자녀들아’라고 부릅니다.

그 자녀들이 들어가는 곳이 바로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형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 이렇게 계속하여 발전되어 갑니다.

 

Q. 육신대로 살면 어떤 결과가 오는가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A. 육신대로 살면 점진적으로 죽어 갑니다. 결코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영으로서 자존적으로 굳게 서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육신의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잘 관리하려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게 바로 먹고 운동하고 병원 약국 드나드는 일상입니다. 

이게 바로 죽음의 비즈니스입니다(dead business) 그러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겉 사람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 늙어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비즈니스를 하는 거죠(life business)

다만 잘못하면 냉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될 위험에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는 사람을 당당하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교만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할 책임은 항상 짊어지고 삽니다.

내가 무엇인가 하려고 덤비는 몸의 욕심을 영으로 통제하라는 말입니다.

오리가 물 위에 떠 있으려면 물갈퀴를 물밑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듯 십자가의

도로 예수의 죽음을 항상 짊어지므로 주의 영과 생명이 역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예수와 함께 우리가 죽은 것은 딱 한 번입니다.

그 다음엔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날마다 죽어야만 하는 겁니다.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죽고 다시 산 것을 확인하고

이제는 ‘난 육신에 대한 의무가 없어’하고 거절하고

영의 통제를 받으면 내가 이미 십자가를 넘어간 것이 분명합니다.

복음에 의하면 아담 곧 십자가 저쪽에 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이쪽으로 넘어온 것은 운명적으로 이미 확정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예정되어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의해 한꺼번에 몽땅 일망타진으로 넘어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신분적으로는 이쪽 곧 그리스도 안에 건너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되지 않고 있음은 이미 건너와서 이쪽에 있는 존재이며

주인이 바뀐 존재임을 알지 못하고는 내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건너온 사람으로서 육신의 의무는 없고 영의 의무만 있는 사실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영의 통제를 받기 시작하면 바울과 같이

‘내가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하고는 날마다 다시 사는 복을 누립니다.

그것이 바로 나는 죽은 자이지만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자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원리입니다. 생명의 비즈니스의 비밀이며 비결입니다.

나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영의 통제를 받으면 지체는 당연히 따라옵니다.

 

따라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내가 나의 입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시인하는 것과

성경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 하고는 그 격이 다릅니다.

롬1-11절의 그리스도인이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 격상됩니다.

이것이 로마서 8장 안에서도 이루어지는 신앙의 발전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위치를 기록하고 성령은 그 위치에 대한 체험을 하도록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임을 알게 하는 것도 성령이  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증도 성령이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 구원의 인침이며 보증인이 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은 왕자들 중에서 세자 책봉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왕자와 세자는 다릅니다. 왕자라고 다 왕세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왕위 계승권자가 바로 세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인이다’ 하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고는 확연하게 달라요. 차원이 다르고, 성령의 대접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다 하는 자격지심만 가질 뿐 아직 일을 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일반 제사장들과 대 제사장은 달라요.

그런데 대제사장마저도 집을 맡은 자이고, 아들은 그 집의 주인입니다(히3:6)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건 보통 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형제들은 육신에게

빚을 져서 육신대로 낑낑대며 죽음의 비즈니스를 하며 살 것이 아닙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멘.

육신대로 살지 않고 영의 인도를 받으면 ‘너는 나의 아들이다’ 하는 영의 확증이 옵니다.

이건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영을 좇아 살아 본 자만이 압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엄청난 영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구원 안에서도 차원이 있고, 상하가 있습니다. 그건 은혜의 보좌와의 거리입니다.

좁은 의미에서 구원이란 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 영생 얻었다는 말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달라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었다(엡2:8) 구원을 이루라(빌2:12) 구원을 얻을 것이다(마24:13) 말씀합니다.

정확한 표현은 지금 구원을 이루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구원ing)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엡4:13)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만 내가 가는 길을 그 분이 아시고,

그 분이 나를 완성하게 해주실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바울이 나의 달려갈 길 다 가고 선한 싸움과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의의

재판장이신 주께서 내게 의의 면류관을 내게 씌우리라는 소망을 가졌습니다(딤후4:7-8)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유언과 같은데 그 만큼 달려간 다음에도, ‘이후로는’ 하고 말합니다.

빌립보서도 그렇습니다. 빌립보서만큼 많이 나아간 말씀이 어디 있어요?

바울은 내가 이제 잡았다 함도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오직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쫓아가노라(빌4:12-14)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 되었다, 다 이루었다, 난 이제 졸업이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속에 착한 일을 그 분이 시작하였으니

그리스도의 날까지 끊임없이 그 분이 이루어나가실 겁니다(빌1:6)

따라서 우리에겐 육신이 아니라 영을 좇으라는 그 분의 소원에 응하는 순종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