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 곽용화
(4)뉴에이지 음악의 역사적인 배경
대중음악의 장르들을 보면 여러 장르의 요소들이 복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록음악 같은 경우에는 리듬 앤 블루스와 웨스턴 컨츄리가 복합되어 있고
요즘 국내에서 인기있는 댄스음악이나 랩음악을 보아도
록이나 펑크, 테크노가 복합되어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은 그 장르의 음악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도 마찬가지다.
재즈, 프로그레시브, 클래식, 그리고 일렉트릭 음악이 복합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뉴에이지 음악이 처음에 만들어질 때부터 이런 요소들이
의도적으로 복합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뉴에이지 음악에서 나타나는 것들이 타 장르의 특징과 일치한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뉴에이지 음악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사람들이 다른 장르를
조금씩 모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자라온 음악적인 배경이나 음악을 만들 당시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상태 가 음악을 특징짓도록 했으리라 추측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당시에 선이나 요가 등 동양종교에 심취하여 있었고
명상을 통해서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서양의 음악들을
의도적으로 모방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록음악이나 뉴에이지 음악의 해악성에 대해서 연구하고 강의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대중음악을 연구하려면 반드시 60년대의 음악을 연구할 것을 권한다.
왜냐하면 60년대의 대중음악을 모르고는 현재의 대중음악을 연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중음악은 사실 그 뿌리가 거의 60년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록음악도 마찬가지다.
록음악이라는 용어는 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50년대의 용어는 록 앤 롤이었다.
60년대에 거의 모든 록음악의 장르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뉴에이지 음악도 60년대에 나온 것이다.
솔로 중심에서 그룹음악이 인기를 얻은 것이나 싱어 송 라이터
(직접 곡을 쓰고 부르는 음악인)가 나타난 시기도 이 때다.
60년대 이후의 음악은 모두 변형이나 모방에 불과하다.
전자기기의 발달로 매우 새롭게 변형된 테크노 음악도
사실은 60년대의 기원을 두고 있다.
60년대의 대중음악에서 뉴에이지 운동의 그림자를 엿볼 수가 있다.
1975년부터 노골적으로 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한 뉴에이지 운동이지만
이미 60년대의 대중음악에 들어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60년대의 대중음악과 뉴에이지 운동
60년대의 대중음악을 '비트(beat)의 시대' 또는
'의식혁명을 일으킨 시대'라고 표현한다.
음악을 통해서 의식혁명이 일어났었고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강한 비트의 음악이 난립했었다는 얘기다.
이 말들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에베레스트 산 주변의 기후처럼 매우 변화무쌍한 시대였고 복잡한 시대였다.
필자는 60년대의 대중음악을 '혼란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청교도 정신이 도전받는 시대, 음악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윤리와 도덕이 도전받는 시대였다.
의식혁명은 반기독교적인 방향으로 흘러갔고 젊은이들의 문화는
반사회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은 미국의 상황이다.
대중음악의 중심지였고 뿌리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건너온 대중음악인들이 이러한 흐름에 기폭제가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비틀즈다.
긴 머리의 헤어스타일에 성적인 매력까지 갖춘 이들이
대중음악의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활기를 더했던 것이 바로 뉴에이지 운동이다.
60년대 중반에 아시아인들에 대한 이민법이 개정되면서부터 수많은
인도의 구루(Guru)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힌두교 사상을 전했고
서양의 신비주의와 함께 문화에 접목되기 시작했다.
1959년에 미국 공립학교에서 행해지던 기도와 성경공부가 금지된 이후였기 때문에
학교에까지 침투하게 되었다.
동양종교의 중심은 인본주의였고 서양은 세속적 인본주의로 흘러가
하나님의 존재마저 부인하게 되었다.
이렇게 두 인본주의의 만남은 당시의 문화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CANA클럽의 연구회원이며 이화여대 교수인 이양림 교수는
뉴에이지 운동에 나타난 세속적 인본주의 라는 아티클에서 이렇게 말한다
"동양의 인본주의적 종교에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였지만,
뉴에이지 운동이 부상하기 전까지 그 인본주의는
그 종교권 테두리 내에서만 작용하였다.
그러나 서양의 인본주의는 처음에는 단순한 인본주의였으나 세속적 인본주의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1960년대 중반 아시아인들에 대한 미국 이민법이 개정됨에 따라
미국으로 이민오는 아시아인들 중에도 힌두교 지도자들인 구루들이 섞여 있었다.
이민후 구루들은 포교활동을 하면서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다는 방법을 소개하였다
그때까지 말로만 부르짖던 인간잠재력 개발법을 구체적으로 동양 신비주의에서
나온 심령술에서 찾게 되면서 오랫동안 동과 서에서 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색깔을 가지고 발전해 온 두 가지 인본주의가 드디어
서구 문명사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수 천년 동안 미신에 불과했던 동양 신비주의가 서구 문명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수용되면서 뉴에이지 운동은 출발하였다. "
인간잠재력 개발을 선두에 내세운 동양종교의 방법들은 자연스럽게
학교로 들어가게 되었고 영적인 삶을 위한 커리클럼이 없어진 학교에서
마치 잡초처럼 끈질기게, 곰팡이처럼 꾸준히 번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동양의 인본주의와 서양의 세속적 인본주의의 만남은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60년대에 히피운동이 일어나 마치 거센 파도처럼 쉽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중음악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양종교에 심취하는가 하면 노래 속에다 그런 사상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서프 음악(surf music)으로 유명한
비치 보이스(Beach Voice)다.
비치 보이스와 뉴에이지 운동
비치 보이스는 비틀즈와 마찬가지로 T.M. (Transcendental Meditation,
초월명상)을 미국에 보급시킨 대표적인 그룹이다
TM은 1965년에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Maharish Mahesh Yogi)에 의해
미국에 소개된 명상법이며 뉴에이지 운동의 한 줄기가 되는 것으로
비틀즈가 최초의 제자들이었다.
비치 보이스 멤버 중 기타리스트인 알 자딘(Al Jardin)과 리드보컬인
마이크 러브(Mike Love)는 점성술에도 깊이 빠져 있었고
영매를 통해서 자신들의 전생을 알기 위해 몸부림 치기도 했었다.
1961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후손이라는 마을에 살던
데니스 월슨(Dennis Wilson)으로부터 시작된 서프음악의 대명사로
잘 알려져 있고 서핀 유 에스 에이 (Suran U.S.A.)로 유명한 비치 보이스는
1978년에 T.M.을 보급시키기 위한 앨범인
M.1.U.(Maharishi International University)를 만들기도 했었다.
비록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이 앨범을통해 비치 보이스가 얼마나
T.M.에 빠져 있었 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비치 보이스는 T.M.이
'여러분 인생의 한 부분이 되게 하라' 고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