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곽용화
록음악 속에 뉴에이지 운동 2
구약성경을 보면 음란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이 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상숭배다
록음악에서 나타나는 음란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상숭배와 관계된 것이다.
신비술, 이단사상, 사단주의와 같은 음란함이 많이 나타난다.
그런데 록음악의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특징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아라는 것이다
록음악은 철저하게 이기주의적인 음악이다.
'당신'에 대해 노래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나'를 노래한다.중심이 나에 맞추어져 있다.
그것도 미래의 자신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미래를 노래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현재의 자신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록음악은 현재의 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록음악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음악을 듣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발산하면서 듣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자신을 음악에 내어맡기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록공연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다
공연장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들을 억제하지 않고 그대로 발산하는 것이다.
사실 억제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날 때가 더 많다.
왜냐하면 록음악에 들은 에너지가 그냥 놔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록음악 속에 들어있는 에너지는 무엇인가?
로버트 패티슨은 '자아를 몰아치는 에너지'라고 말하고 있으며,
켄 마이어스는 '자아를 추구하는 데 불을 당기는 에너지' 라고 말한다.
록음악은 자아를 추구하토록 만든다.
아니 만든다는 표현보다는 몰아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특성이 40여년이 흐르도록 록음악이
전 세계의 음악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아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록음악의 본질은 무엇일까?
록음악의 가장 흔한 주제인 음란을 놓고 볼 때 본질을 알 수가 있다.
로버트 패티슨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여 그 자리에 자아를 대신 앉히려는 범신론적인 욕구는
에로틱한 것일 수밖에 없다.
성적 충동은 자아를 그 영역 밖으로 확산시키려는 가장 명백한 사례이다. "
범신론, 바로 그것이다.
록음악 속에 숨어 있는 뉴에이지 운동이 바로 록의 범신론인 것이다.
록음악은 철저하게 자아를 추구하는 음악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을 범신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범신론이 자아의 실현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범신론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이며 모든 것이 신이다
자연을 비롯한 우주만물이 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주를 이야기하고 자연을 이야기하면서 결국에는
인간이 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되돌아온다
범신론의 가장 중심된 사상은 비인격적인 신이 아니라 인간이 신이 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신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자아를 추구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범신론이다.
신이라는 무한한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 결국은
인간의 유한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범신론인 것이다.
우주를 이야기하고 윤회를 거창하게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다.
록음악이 바로 그령다고 할 수 있다.
록음악은 정치나 세계정세,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노래하기도 하지만 해답이 없다.
그러다보니 프로그레시브 록처럼 초현실주의를 노래하는
허무주의 음악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한때 록음악이 마치 인류의 미래를 위한 음악이고
해답이 들어있는 음악인 것처럼 행세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60년대다.
60년대는 대니얼 벨의 표현처럼 폭력과 잔인한 것에 대한 관심,
성적 변태에 대한 몰두, 소음을 만들어 내려는 욕구, 반인식적이고
반지성적인 분위기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를 단번에 지워버리려는 시도,
예술과 정치의 융합이 나타나던 시기였다.
그리고 영적이고 정신적인 배경으로 범신론이 등장했었다.
서양의 신비주의와 동양의 범신론이 맞물려 나타났으며 이러한 흐름은
록음악에 의해 주도되었다. 록음악이 가지고 있었던 범신론과
동양의 범신론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파트너였다.
히피를 비롯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범신론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를 형성했는데
거기서 나온 것이 바로 이상주의였다.
그리고 이 이상주의는 인간이 다시 쌓아올리기 시작한 바벨탑이었다.
요가, 명상, 신비술 등이 난무했었고 힌두교 구루들이 영적인 스승으로
인식되었으며 범신론을 바탕으로 한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으로 여겨졌었다.
당시의 록은 하나의 신화였다.
록의 신화
켄 마이어스는 이러한 록의 신화를 록의 낭만적 신화라고 표현한다.
그는 록음악에서 19세기의 낭만주의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록의 낭만적 신화의 본질은 록음악이 어떤 우월한 형태의 지식을
제공해줌으로써 일종의 영적 구원을 제시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영적 구원이 즉각적인 것이고 육체적인 것이며 감정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젠 마이어스의 견해는 옳은 것이다.
록음악은 인간의 구원의 문제까지 다루었다.
그러나 록음악이 인간에게 말해줄 수 있었던 구원은 즉각적이고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록의 본질이 범신론이기 때문이다.
자아를 추구하는 범신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하나님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자아를 앉히려는 록음악이 어떻게 구원의 길을 제시할 수가 있었겠는가?
마치 구원을줄 수 있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교만에 빠진 록음악이
구원의 한 방편으로 무엇을 주었는지 한번 살펴보면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록음악은 구원의 대안으로 마약을 제시했다.
그래서 당시에 마약은 지혜와 영적 구원의 힘으로까지 추앙되었다.
수많은 록 음악가들이 마약을 복용했으며
L.S.D.같은 마약을 복용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었다
지미 헨드릭스의 말을 들어보자.
"마약이 육체적인 죄인의 상태로부터 나의 정신을 해방시켰고
우주적인 힘과 사차원 세계의 신들에 대한 전자교회음악(electric church music)을
창조하도록 허락했습니다. "
마약은 복용하면 즉각적으로 마치 구원을 얻은 듯한 착각에 빠지도록 만들었지만
약의 효력이 떨어지면 다시 더 강한자극을 필요로 하도록 만드는
중독성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져 갔다.
구원의 길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파멸의 지름길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많은 록음악가들이 마약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