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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곽용화

Joyfule 2006. 6. 10. 01:47

17.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곽용화 록음악, 뉴에이지 음악 그리고 C C.M 지금까지 록음악을 중심으로 해서 대중음악에 나타나는 뉴에이지적인 성향을 설명해 보았다. 그런데 록음악의 부정적인 측면을 다루었다고 해서 선교적인 측면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록음악에서 범신론적인 요소가 나타나고 육십년대에 뉴에이지 운동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는 하나 세상문화를 향한 기독교 문화의 선교전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록음악은 선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음악이다 필자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반대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어떻게 사악한 록음악이 선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사실 록음악은 그 발생 시기부터 온갖 문제를 일으켜왔고 인간의 가장 육체적인 주제들을 다루는데 놀랄만한 성능(?)을 보여왔다 그러나 록 음악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음악을 사용하는 가수들이 인간적인 측면만 부각시켜 부정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주제들을 다루는데만 사용하였기에 선교전략적인 특성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록음악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선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은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국교회내에서 입증되었다. 경배와 찬양을 비롯해 여러 형태의 C.C.M.들이 복음성가라는 이름으로 교회내에서 불려지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록음악을 이용한 C.C.M.이 과연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가에 집중하여왔다. 왜냐하면 필자 역시 C.C.M.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사람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C.C.M.을 연구하면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리듬이 록리듬이라 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과연 그 결과가 어떠한가를 주시해 보았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C.C.M.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음의 선한 열매들이 C.C.M.을 통해서 열리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C.C.M.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특히 하덕규 집사와 공개적으로 C.C.M.에 대한 논쟁을 하기로 한 다음 C.C.M.을 구체적으로 연구하던 중 C.C.M.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록음악을 비롯한 세속음악 장르들이 지금 C.C.M.이라는 이름으로 선교에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비록 대중음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순화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선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C.C.M.을 반대하는 의견들은 그 나름대로 타당하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 의견들이 지적하는 위험성을 C.C.M.이 안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내에서 세속음악적인 장르들로 만들어진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보면 일찍부터 교회가 비록 논쟁들이 있었지만 세속문화를 순화시키는 일을 음악을 통해서 계속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 한 예로 찬송가 안에는 당시의 대중음악으로 분류되던 음악스타일로 만들어진 곡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당시의 대중음악은 지금의 대중음악만큼 악한 음악이 아니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의 대중음악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중음악이 모두 나쁜 주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밝고 건전한 내용의 가사를 가진 노래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왜 대중음악하면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나쁜 이미지만 떠올리는 것일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교회내에서 대중음악에 대한 강의들이 진행될 때 주로 대중음악의 나쁜 측면만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강사를 초청할 때 대중음악의 반기독교적인 것만 연구한 강사들을 초청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중음악을 교회가 어떻게 순화시키고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런 강사로 초청되었던 적이 많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런 강의들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강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강의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대중음악을 어떻게 순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강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C.C.M.의 진가를 알게된 다음부터 필자는 대중음악에 대한 대안으로 C.C.M.을 이야기해왔다. 현재 한국교회가 신세대들의 쇼킹한 문화에 대해 입을 벌리고 비판만 하고 있는데 이제는 대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다. 그리고 그 생각에 가장 어울리는 도구가 바로 C.C.M.이다 그런데 C.C.M.을 생각하면서 필자스스로 한가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은 과연 뉴에이지 음악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과연 뉴에이지 음악을 C.C.M.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뉴에이지 음악을 깊이 연구하면서 필자는 대중음악 장르들과는 다른 음악적인 특징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뉴에이지 운동의 도구로 사용되는 뉴에이지 음악의 영적인 특징을 살펴보았을 때 뉴에이지 음악을 C.C.M.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너무 문제가 많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지금 일부 C.C.M.에서는 부분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뉴에이지 음악이 명상으로 유도한다면 복음적인 뉴에이지 음악을 만들어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다른 장르에 비해 뉴에이지 음악은 너무나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음악적인 특징이나 영적인 특징에 있어서 C.C.M.으로 사용하기에 적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대중음악의 그 어느 장르도 인간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 어떤 음악도 하나님이 되기 위한 음악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오직 뉴에이지 음악만이 인간이 하나님이며 음악을 들음으로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누군가 뉴에이지 음악을 C.C.M.으로 사용한다면 필자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주시해볼 생각이다. 그처럼 하나님을 향해 인간이 신이라고 용감하게(?) 반항하는 음악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