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나는 베이커 양의 그 '해낸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녀는 가냘픈 몸에 작은 가슴, 곧은 몸매를 하고 있었는데,
마치 젊은 사관 후보생처럼 어깨를 뒤로 젖혀 곧은 몸매를 더욱 드러나게 했다.
얼굴은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햇빛으로 찡그린 그녀의 회색 눈동자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나를 돌아다보았다.
나는 문득 어디에선가 그녀를 혹은 그녀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스트에그에 살고 계시다고요?"
그녀는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그 곳엔 제가 아는 분이 있어요."
"나는 아직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개츠비라는 분을 아실 텐데요."
"개츠비라고?"
데이지가 물었다.
"무슨 개츠비 말이야?"
그 사람은 바로 내 집 옆에 살고 있다고 미처 대답하기 전에
하인이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알려 왔다
탐 부캐넌은 그 억센 팔을 자기 마음대로 내 겨드랑이 밑으로 넣더니
마치 장기 알을 다른 칸으로 옮기듯이 나를 방에서 이끌고 나갔다.
두 여인은 손을 허리에 살며시 얹은 채 가볍고도 경쾌한 발걸음으로 앞장서서
지는 해를 향해 훤히 트려 있는 장밋빛 방으로 갔다.
그 곳 식탁에는 네 자루의 촛불이 바람에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촛불은 뭐 하러 켰지?"
데이지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짜증을 냈다.
그러더니 그녀는 곧 손가락을 흔들어 촛불을 꺼 버렸다.
"2주일만 지나면 1년 중 가장 길다는 하지예요."
그녀는 밝은 얼굴로 우리들을 쳐다보았다.
"당신들도 일 년 중에서 낮이 가장 길다는 그 날을 기다렸으면서도
막상 다가오니까 그 날을 깜박 잊고 지나쳐 버리지요? 저는 말이에요,
항상 그 날을 기다렸으면서도 깜박 그 날을 지나쳐 버리지 뭐예요."
"우리 재미있는 계획을 세우는 게 어때요?"
베이커 양이 하품을 하며 마치 잠자리에 들기라고 하듯이 식탁에 앉으면서 말했다.
"좋아."
데이지가 말했다.
"무슨 계획을 세울까요?"
그녀는 별 뚜렷한 것이 생각나지 않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이런 날 어떤 계획을 세우나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눈에 걱정스러운 빛을 띠고 자기의 새끼손가락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이것 봐요!"
그녀가 투덜거렸다.
"여길 다쳤어요."
우리의 시선이 모두 그녀의 손가락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마디는 검고 푸르스름했다.
"탐, 이건 당신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녀는 원망하듯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어쨌든 당신이 그런 거예요.
이것 역시 짐승 같은 남자, 산더미 만한,
괴물처럼 엄청나게 큰 몸집의 본보기 같은 남자와 결혼한 탓이에요."
"괴물 같다는 소리는 정말로 듣기 싫소."
탐이 얼굴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비록 농담이라고 해도 말이오."
"괴물 같아요."
데이지는 짓궂게 되풀이했다.
데이지와 베이커 양은 동시에 얘기를 하곤 했는데, 그들의 얘기는 아주 평범했다.
그들은 입고 있는 흰옷이나 아무 욕망도 없어 보이는
무심한 눈만큼이나 태연한, 무미건조한 농담처럼 말했다.
그들은 그저 이 곳에 있고, 탐과 나를 맞아서 대접을 하거나
혹은 대접을 받으려고 겸손하고 즐거운 척 위장을 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들은 식사가 곧 끝날 것이고, 조금 더 있으면 이 밤 또한 끝나
평범하게 잊혀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동부와 서부의 다른 점이었다.
그 곳에서의 저녁 시간은 실망을 주는 예감이 하염없이 밀려오거나,
순간 자체가 긴장된 두려움 속에서 저녁의 끝을 향하여
한 단계 한 단계씩 급히 지나가 버리게 마련이었다.
"데이지, 너를 만나면 마치 내가 문명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구나."
나는 코르크 냄새가 나지만 그런 대로 맛이 좋은 적포도주를 두 잔째 마시면서 진실을 말했다.
"곡식이나 다른 것에 대한 얘기는 할 수 없니?"
나는 이 말을 별 뜻 없이 한 소리였는데 엉뚱한 반응이 나타났다.
"문명이 붕괴되어 가고 있어."
탐이 화난 말투로 대꾸했다.
"나는 매사에 지독한 비관론자가 되어 버렸다네.
자네, 고다드라는 사람이 쓴 '유색인 제국의 발흥'이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나?"
"아니, 읽어보지 못했는데."
나는 그의 말투에 놀라며 대답했다.
"그래? 그건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이야. 아니 누구나 한 번 쯤은 읽어 봐야 해.
그 책의 요지는 우리가 경계하지 않으면 백색 인종은 완전히 멸망해 버린다는 거야.
과학적으로 증명까지 하고 있지."
"탐은 요즘 매우 심각한 생각을 많이 해."
데이지가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뜻도 모를 난해한 책들이 많아. 그 낱말의 뜻이 뭐였더라...?"
"모두 과학적인 책들이야."
탐은 참을성 없게 데이지를 힐끔 바라보며 자기 주장을 내세웠다.
"그 책은 모든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었지.
그건 지배적인 인종인 우리의 책임이야.
조심하지 않으면 다른 인종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될 거야."
"그 인종들을 타도해야죠."
강렬한 햇빛에 눈을 사납게 깜박이면서 데이지가 귓속말로 말했다.
"두 분은 캘리포니아에서 살아야 하는데..."
하고 베이커 양이 말을 꺼냈으나, 탐이 둔한 몸을 일으켜 고쳐 앉음으로써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북유럽 인종이라는 것이지.
나도 자네도, 그리고 당신도 말이야. 또..."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머리를 조금 끄덕이는 것으로 데이지도 그 속에 포함시켰다.
그러자 데이지는 나에게 윙크를 했다.
"...그리고 문명을 형성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우리 백인이 만들어 냈던 것이네.
아, 과학과 예술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도 말이네. 알아듣겠나?"
그의 몰두하는 자세에는 차라리 애처롭기까지 했는데,
평소보다 더 두드러진 자기 만족감도 더 이상 그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같이 보였다.
이 때 안에서 전화벨이 울려 하인이 방을 나가자,
데이지는 순간적으로 말이 중단된 틈을 타서 내게로 몸을 기울였다.
"우리 집안의 비밀을 하나 가르쳐 드릴게요."
그녀는 신나는 듯이 속삭이었다.
"저 하인의 코에 대한 얘기인데, 듣고 싶지 않으세요?"
"어떤 이야기인지 한 번 들어볼까?"
"좋아요. 저 사람은 처음부터 하인이 아니었대요.
뉴욕의 어떤 집에서 은으로 만든 그릇 닦는 일을 했는데, 식기가 무려 200명 분이나 되었대요.
그래서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은제 그릇을 닦아야 했는데,
마침내 코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대요..."
"그런데 상태가 점점 나빠진 거죠."
베이커 양이 넌지시 끼여들며 얘기했다.
"맞아요. 계속 악화되어 마침내 그 자리를 그만두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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