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우리들은 이제 그런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요.
내가 그분은 시카고에 계시다고 말하면 그분은 시카고에 계신 거예요."
나는 급한 김에 개츠비의 이름을 대 보았다.
"그러세요?"
그러자 그녀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녀는 다시 나를 아래위로 살펴보았다.
"잠깐만요. 이름이 어떻게 되지요?"
그녀는 사라졌다.
잠시 후 마이어 울프심이 위엄을 한껏 부린 채
두 손을 부자연스럽게 내밀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를 자기 방으로 끌고 가서는 경건한 목소리로
이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슬픈 시간이라고 말하더니 나에게 담배를 권했다.
"나의 기억은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말했다.
"그 때 그는 막 제대한 젊은 소령이었지요.
전쟁 때 받은 훈장들로 가득한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몹시 가난해서 보통 옷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내가 그 사람을 처음 본 것은 43번가의 와인브레너 당구장에서였습니다.
그는 그 곳에 들어와 일자리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은 이틀 동안이나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나와 함께 가서 점심이라도 드십시다.' 하고 난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30분만에 4달러치 이상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사업을 시작하게 해 주었나요?"
"시작하게 해 주다니! 내가 그를 키웠소."
"아아, 그러셨군요."
"난 그 사람을 무에서, 시궁창에서 끌어올렸지요.
난 첫눈에 그 사람이 잘생기고 신사다운 유망한 청년임을 알았습니다.
그가 옥스퍼드 출신이라기에 나는 그를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미국 재향군인회에 가입시켰지요.
이후 그는 줄곧 승진을 했습니다.
그는 내 고객 한 사람을 위해 올버니에까지 가서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우린 무슨 일에나 그렇게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는 둥글게 꼬부린 손가락 두 개를 쳐들었습니다.
"언제나 함께였죠."
그런 동지 관계가 1919년의 월드 시리즈의 거래도 포함하고 있었는지 나는 궁금했다.
"이제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나는 잠시 후에 말했다.
"당신은 그 사람하고 가장 친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오늘 오후에 있을 장례식에 꼭 참석해 주실 걸로 믿는데요."
"가고는 싶지만..."
"그럼 가면 되지 뭐가 문젠가요?"
그의 콧구멍 속의 털이 바르르 떨리고,
그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 때 그의 두눈엔 눈물이 가득 괴어 있었다.
"그럴 수가 없어요. 더 이상 그 일에 말려들 수가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말려들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젠 다 끝났습니다."
"사람이 피살됐을 땐 사소한 일로 말려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난 이 곳에 있겠습니다.
그러나 나도 젊은 시절엔 지금과 달랐습니다.
내 친구 중 누가 죽었을 땐 어떻게 해서든지 끝까지 상대방을 물고 늘어졌지요.
그걸 감상적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진정이었습니다.
결판이 날 때까지 물고 늘어졌지요."
그가 자신의 어떤 이유로 해서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을 결심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은 그와 대학 동창인가요?"
그가 느닷없이 물었다.
한순간 나는 그가 '거래선' 이야기를 비추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다만 고개만 끄덕거리고는 악수를 청했다.
"사람이 죽은 후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우정을 베푸는 걸 배웁시다."
그는 속에 있는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 다음 나의 관례는 모든 걸 모르는 척하고 내버려두는 것이죠."
그의 사무실을 나왔을 때 어두워진 하늘에선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웨스트에그로 돌아온 나는 옷을 갈아입고 개츠비의 저택으로 갔다.
개츠는 흥분한 채 홀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선 아들과 아들의 소유물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끊임없이 커져 가고 있었으며,
지금 그는 나에게 보여 줄 무엇인가를 갖고 있었다.
"지미가 보내 준 사진이에요."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기 지갑을 꺼냈다.
"여길 보세요."
저택을 찍은 그 사진은 네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여러 사람의 손때가 묻어 해져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저택의 내부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여길 좀 보시오!"
그러고는 내 눈에서 감탄의 빛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가 얼마나 자주 그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 왔던지
그에게는 그 사진이 실제의 저택보다 더 실감을 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지미가 이걸 나한테 보내왔지요. 아주 근사한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는 이것으로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참 좋습니다. 최근에 아드님을 보신 적이 있나요?"
"2년 전에 나를 만나러 와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사 주었습니다.
물론 오래 전에 그 아이는 집을 나가 버림으로써 우리 가족들을 실망시켰었지요.
하지만 이제야 난 그 아이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 앞에 멋진 장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애는 성공한 다음부터는 효자노릇을 했지요."
그는 사진을 집어넣기가 못내 아쉬운 듯 한참이나 내 눈앞에 들고 어물쩡거리며 있었다.
이윽고 그는 그것을 집어넣은 지갑을 호주머니에 도로 넣고 나서
대신 '호팔롱 캐시디'라는 제목의 낡아빠진 책을 꺼냈다.
"이걸 좀 보시오. 이건 그 아이가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책이오.
이걸 보면 그 아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거요."
그는 책 뒷표지를 넘기더니 빙그르르 돌려서 내가 볼 수 있게 했다.
맨 뒤 여백에 '계획표'라는 활자체 글씨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1906년 9월 12일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기상...오전 6시
아령 체조와 담 기어오르기...오전 6:15-6:30
전기학 및 기타공부...오전 7:15-8:45
작업...오전 9:30-오후 4:30
야구 및 운동...오후 4:30-5:00
웅변 연습, 몸의 균형잡기와 그 달성 방법...오후 5:00-6:00
발명에 필요한 공부...오후 7:00-9:00
일반적 결심
샤프터즈 또는 oo(이름을 알아볼 수 없었다.)에서 시간낭비를 하지 말 것.
이제부터는 금연을 하고 껌을 씹지 말 것.
이틀에 한 번 목욕을 할 것.
매주 도움을 주는 책이나 잡지 한 권씩 읽을 것.
매주 5달러(지워져 있었다.) 3달러씩 저축할 것.
부모님께 더 잘해 드릴 것.
"나는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노인은 말했다.
"이거면 그 아이의 성품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지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지미는 출세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아이는 언제나 이런 결심 아니면 다른 결심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애가 자신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걸 눈여겨보셨나요?
그 애는 자아 성취에 대단히 열성적이었지요.
언젠가 한 번은 나더러 돼지처럼 먹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애를 두들겨 줬지요."
노인은 항목 하나하나를 큰 소리로 읽고는
내가 부러워하는 표정을 내기를 바라보면서 마지못해 책을 덮었다.
그 때 노인은 그 항목들을 내가 이용하기 위해 베껴 두기를 바랐던 것같은 생각이 든다.
3시 바로 전에 플러싱으로부터 루터파 목사가 도착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차들도 오나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개츠도 나와 마찬가지로 밖을 내다보았다.
예정 시간이 지나 하인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홀에 서서 기다리고 있자,
노인은 두 눈을 근심스럽게 끔벅거리기 시작하더니
걱정스럽고도 분명하지 않은 말투로 비가 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목사가 여러 번 자기 시계를 들여다보기에
나는 그를 앞으로 데리고 가서 30분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헛수고였다. 30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세 대의 차로 이루어진 우리의 행렬은 5시쯤 공동묘지에 도착해
자욱한 보슬비를 맞으며 입구에 멈춰 섰다-
비에 젖은, 끔찍한 검정색의 영구차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개츠와 목사와 내가 탄 리무진이 따랐으며,
5,6명의 하인들과 웨스트에그의 집배원이 탄
개츠비의 스테이션 왜건이 조금 뒤떨어져 따라왔다.
모두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우리 일행이 묘지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서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누군가가 물을 튀기며 우리 뒤를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돌아보았다.
그 사람은 3개월 전에 개츠비의 서재에서 책을 보며 놀란 바로 그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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