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장 21절과 20장 17절부터 24절입니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시키시고 계십니다. 회복된 교회는 전례없이 주를 알고 사랑하며, 전례없이 거룩하며 하나되고, 전례없이 강한 능력의 교회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교회가 회복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어떤 분은 오늘날의 교회를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에 비유하곤 합니다. 마른 뼈가 의미하는 바는 ‘철저한 죽음’과 ‘소망 없음’입니다. 사실 주일 성수를 잘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생명이나 친밀함, 하나님의 실재, 하나님의 은혜는 실제로 많은 성도들에게서 경험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과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서 일반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 내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걷혀 있습니다. 교회 운영 역시 세상의 기업 운영 방식과 다를 바 없는 실정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말세가 되면 그리스도의 신부를 회복시키셔서 단장할 것’을 약속하시고 계십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물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마른 뼈들이 다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능히 살겠느냐?”라고 물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에스겔은 “하나님이 아십니다.0”라고 답변하였습니다.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4]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위 구절은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사역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4절과 5절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과 “생기”에게 명령하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사역의 은유적 표현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사역이 회복되었을 때 뼈들이 살아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될 것을 암사하신 말씀입니다. 교회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되며, 목회자나 평신도 상관없이 여호수아처럼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구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 앞에 순종한 결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임하여 하나님이 백성들 가운데 운행하시며 그들을 통해 역사하셔서 잃어버린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이 있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지며 하나님의 생명이 백성들 가운데 넘쳐남으로 세상의 갈급한 자들이 주님께로 돌아와 날마다 구원받는 자들이 더해가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교단은 다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일을 위해 드려지는 일들이 불가능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금 언급한 일들을 이루실 수 있다는 것이 에스겔 골짜기의 교훈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이 일들을 조금씩 이루어 나가시며 하나하나 성취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전체의 교회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서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크게 여섯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째, 비전을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 즉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이 나라 교회와 사회 가운데 역사하셔서, 모든 교회가 변화될 뿐만 아니라, 모든 예배가 회복되며, 하나님이 친히 그 가운데 운행하시며, 백성들의 삶을 다스리시며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세상과 죄를 이기고 그 속에 하나님의 거룩함이 충만하며, 주를 깊이 알고 온 삶으로 주님께 드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교회로 회복되어지는 비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제키 플랜저가 여인의 몸으로 홍콩의 버려진 도시로 갈 때에 그녀가 한 말입니다. “나는 그 때 버려진 도시 속에서 또 하나의 도시를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폭력과 갱들의 도시, 마약과 매춘, 도박이 성행하고 있던 도시에서 그녀는 부모가 누군지 모른 채 태어나고 자라난 아이들이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도시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버려진 도시 속에서 희망을 보았던 것입니다. 수십 년간 마약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주님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생산적인 삶을 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삶을 드려 귀하게 쓰임 받는 도시를 본 것입니다. 젊은 시절을 매춘하며 보낸 창녀들이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도시를 그녀는 버려진 도시 속에서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이전과는 새생명 가운데에서 살아가며 다른 삶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희망없던 사람들이 보람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녀는 보았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제키 플랜저가 보았던 희망의 도시는 눈에 보이는 도시가 아닙니다. 그녀가 보았던 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이었고 우리는 이것을 비전이라고 부릅니다. 비전이란 우리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교회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초청하셨고 이 일을 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비전을 다시 더욱 뚜렷하게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정확하게 비전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온 세계에 복음이 뿌려지고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곳에 교회가 세워지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스페인에도 가기를 원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이 그의 비전이었습니다.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3-14)
여기서 푯대란 비전을 말합니다. 여기서 푯대란 주님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빌립보 3장은 주님을 아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의 본질은 삶 그 자체였습니다. 살아가는 목적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토대가 되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바울을 부르신 부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푯대였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모든 것이 주님을 아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 알기를 열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교회회복의 부분을 성취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푯대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이 푯대를 줄기차게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순간마다 보아야 합니다. 이 일은 영적인 경각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깨어있어야 가능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순간순간 세상에 눈을 돌리기 쉽습니다. 오락, 돈, 명예, 일, 인간관계 등에 쉽게 눈길을 두게 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쉽게 빠집니다. 이렇게 되면 비전이 너무나 쉽게 흐려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돈을 벌어야 하고, 인간관계도 가져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때그때 하나님 앞에 다시 기도하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푯대를 뚜렷이 보고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시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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