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30절 말씀입니다.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위 구절은 달란트 비유입니다. 그런데 위 구절에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야단을 맞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오늘날의 교회의 관점에서 보면 믿음이 매우 좋은 사람이란 점이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24절과 25절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능히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임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 이 한 달란트마저 잃어버릴까봐 두려워서 감추었나이다. 그리고 이제 여기 있나이다. 보소서. 당신은 당신의 것을 받았나이다.” 보십시오. 이 얼마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나름대로 신앙이 있는 소리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표현을 보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비전을 지속적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가운데 씨앗을 심어야 하는 필요성을 보게 됩니다.
씨앗을 심지도 않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니까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는 자세는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자세입니다. 어리석은 자세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받은 것마저도 빼앗길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씨앗을 심어 열매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슨 씨앗을 심어야 할까요?
무엇보다 말씀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새물결선교회에서 개최하는 전국 집회나 컨퍼런스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 컨퍼런스를 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컨퍼런스를 열게 하시는 이유는 말씀의 씨앗을 뿌리게 하기위한 목적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모두 이것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며 헌금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회 되는대로 말씀을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말씀의 씨앗을 심는 일은 한 번 심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은 마치 깃발을 높이 세우는 일과 같습니다. 성경에는 네 종류의 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디 바라건대 여러분 모두 좋은 밭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좋은 열매 맺는 일들이 풍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음으로, 기도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 인생의 푯대를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 로마에 가기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했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입니다.
[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노라 [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롬 1:7-15)
이는 바울이 푯대를 향해 지속적으로 기도하였음을 봅니다. 여러분, 만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 나라 가운데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셨다면 그 푯대를 바라보면서 씨앗을 뿌리되 말씀의 씨앗과 더불어 기도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다윗의 장막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나라에 부흥이 임하여 전체 교회가 새부대의 교회로 변화되고 새로워질 수 있도록 줄기차게 밤낮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중보기도의 영이 부어져 계속적으로 기도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고난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입니다.
[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전 4:9-15)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이나 국가에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있으려면 누군가가 그 지역이나 국가를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순교의 피로 교회가 세워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난주간에 고난을 재현하는 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면서 수많은 고난을 당했던 바울의 경우를 가리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고난을 말합니다. 복음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 당했던 고난에 동참한다는 말이 참의미입니다. 바울은 이런 고난을 통해 생명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 하게 하려 함이라 (고후 1:3-11)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 11:23-28)
위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죽음의 고난이 왔을 때 자신에게 생명이 넘쳐났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난이 닥쳐와도 어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고난에 동참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말이지만, 우리들은 사도 바울보다 훨씬 더 수월한 환경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여러분을 감옥에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한다고 여러분을 굶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태장으로 때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들은 바울보다 훨씬 좋은 환경 가운데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방은 받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체 교회가 바뀌려면 지각 변동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진과도 같은 일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때 비방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부분적으로 바뀌어서는 전체 교회에서 지각 변동은 없을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점진적으로 오든지, 갑자기 오든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야 지각변동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의 권세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때, 분리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 앞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들이 이제껏 가지고 있던 신앙관, 편견으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부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단이라고 정죄할 것이며, 어떤 이는 신비주의라고 조롱할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이 역사하셨던 시기에는 항상 이런 일들이 있어왔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감수하지 않고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 조롱받아도 비판받는 일을 감수할 수 없다면 이단소리를 듣는 것을 두려워하면 절대로 하나님이 이 나라에서 역사하시는 일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각오해야할 일들입니다. 이사야 54장입니다. 이사야 54장은 말세에 세우실 종들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14]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 [15] 그들이 모일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모여 너를 치는 자는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 [16]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만한 기계를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17]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하면 대적하는 무리들이 일어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안전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강한 성이 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뒷받침하셔서 이기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회복되어져 갈 때, 이 땅에 십자가의 복음을 다시 증거할 때, 사람들은 대적해 올 것입니다. 기존의 가치관을 무너뜨린다는 명목으로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정직하게 전하면 하나님께서 대적을 물리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교회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따르는 자들과 받아들이는 자들, 세워지는 자들을 늘려 가실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많은 반대라도 하나님의 역사를 반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이 나라 전체에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바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선교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십니다. “열방을 위해 기도하라.” 언젠가 하나님께서 우리가 자녀임을 보여주시면서 열방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흔히 다른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보다 열망이 적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모든 나라들이 다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나라를 위해서도 줄기차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곧 우리나라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에 대한 씨앗을 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치 다른 교회들을 섬기다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교회를 세워 가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른 나라를 섬겨야 합니다. 필리핀이나 중국을 섬기는 일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하는 것입니다.
가끔 어떤 이들은 “우리 주제를 알아야지. 우리 성도가 몇 명인데 해외 해외를 운운하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을 몰라서 하는 말들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상황을 이용하셔서 일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친히 이루십니다. 우리들은 다만 순종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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