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Webster
Daddy Long Legs
키다리 아저씨께.
1월 9일
아저씨, 영원한 구원을 보증 받을 수 있는 선행을 하고 싶지 않으세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빈곤의 바닥에 있는 가족이 있답니다.
양친과 지금 그 슬하에 자녀가 넷이나 있고요.
큰 아들 둘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간 채 행방불명이고,
단돈 한 푼도 보내오지 않는 대요.
아버지는 유리 공장에서 일하다가 폐병에 걸렸어요.
그 일은 아주 건강에 나쁜 일이래요.
그래서 지금 병원에 누워 있어요.
그 때문에 저축한 돈을 다 써버렸고, 요즈음 일가의 생계는
24세 된 큰 딸의 어깨 하나에 달려 있다는 군요.
그 딸은 하루에 1달러 30센트 품삯을 받으며 바느질을 하고 있어요
(그것도 일이 있을 때만이에요)
그리고 밤에는 화병깔개에 자수를 놓고 있어요.
어머니는 별로 건강하지 않은데다가 완전히 무능력하고 신앙심만 깊어요.
딸은 과로와 책임과 걱정으로 뼈를 깎는 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쪽은 아무일도 하지 않고
두 손을 무릎에 모은 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요.
마치 참고 견디며 신의 뜻에 복종만 하겠다는 태도에요.
일가가 이번 겨울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할 지경이에요.
제가 봐도 예측이 안가요.
이 곳에 100달러만 있으면 석탄도 얼마정도 살수 있고,
세 아이들에게 구두를 사주고, 학교도 보낼 수가 있고,
조금 여분의 돈이 생기니까 딸이 2,3일 일이 없는 날에도
죽을 정도로 애태우지 않아도 되겠고요.
아저씨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부자에요.
괜찮으시다면 100달러만 기부해 주지 않으시겠어요?
그 딸이야말로 도와 줄 가치가 있어요.
지금까지의 저같은 애보다 훨씬요.
제가 아저씨께 부탁하는 것은 순전히 그 딸 때문이지
다른 식구들 때문이 아니에요.
저는 그 어머니한테 어떤 일이 닥친다 해도 별로 걱정되지 않아요.
그런 줏대 없는 사람은요.
그 가족들이 줄곧 눈을 희번덕이며 하늘을 보고 내심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명 이건 모두 하늘의 뜻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공연히 화가 나요.
겸허라고 해야 할지 포기라고 해야 할지 하여튼 뭐라고 부르든
그것은 무능하고 게으른 근성에 지나지 않아요.
저는 더 전투적인 종교가 좋아요!
우리는 지금 제일 싫어하는 철학 과목의 예습을 하고 있어요.
내일은 쇼펜하우어를 다 끝내겠다는군요.
아무래도 그 철학교수님은 우리가 철학 이외의 수업이 있다는 것을 모르시는 것 같아요.
특이한 노인이에요.
머리를 구름속에 박고 걸어다니고, 그러다가 때때로 대지에 부딪치면
앞이 캄캄하신지 멍하니 눈을 끔뻑끔뻑하지요.
때때로 우스운 말씀으로 수업을 재미있게 하려고 하세요.
그러면 우리도 정말 재미있는 척하죠.
사실 그 교수님의 농담은 전혀 재미가 없거든요.
그 교수님은 수업과 수업 사이에는 오로지 물질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만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것을 정확히 알아내려고 그것에만 시간을 투자하고 계세요.
그 바느질하는 처녀라면 물론 물질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거에요!
그런데 제 소설은 어디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쓰레기통 속에 있어요.
전혀 글 다운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자기 작품에 애착을 갖는 작가 자신이 이렇게 인정할 정도라면
트집잡기 좋아하는 일반 독자들의 비판은 어떨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