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Joyful묵상노트

Joyful 여섯 번째 묵상 겔러리

Joyfule 2008. 12. 24. 04:18

          Joyful 여섯 번째 묵상 겔러리 가치관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를 여행중 아이들이 반짝이는 돌로 구슬치기하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다이아몬드였다 그래서 이 여행자는 사탕을 한 봉지를 주고 다이아몬드와 바꾸었다 아이들은 달콤한 사탕에 매료되었고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모르는 아이들은 더 많은 사탕을 받고 다이아몬드가 많이 있는 장소를 여행자에게 가리켜 주었다. 어느 누구나 가치관이 있다 인지능력이 있으면 어린 아이라도 좋고 나쁜 것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명예에, 재물에, 선행에, 건강에,.... 저마다 가진 가치관이 다 다르지만 무엇에 가치관을 두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수 있다. 어떤 것에 가치관을 두는 것이 후회없는 삶이 될것인가 잠간 있다가 없어질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설계도 오늘 진화론의 허구를 가르치는 한동대학 교수님의 창조론 강의 동영상을 보았다 얼마나 알기 쉽게 잘 설명하는지... 학교에서 아무 저항없이 자연스럽게 진화론 교육을 받는 많은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 모든 건축물에는 설계도가 있다 건축하는 이들이 설계도에 의해서 공사를 한다 로봇도 설계도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설계도가 있는 것은 설계한 사람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 하늘색 기둥은 우리가 쓰는 바늘끝을 확대한 것이다 이 바늘끝에 노랗게 묻어있는 것은 대장균 덩어리이고 네모안의 까만점은 대장균인데 이것의 설계도를 읽으려면 A4용지1,000 페이지 분량의 내용이 들었단다. 얼마나 정교하고 정밀한지.... 인체에도 설계도가 있다. 게놈. 바로 DNA이다. 인간게놈은 한 사람의 개체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유전자를 말한다고 한다. 설계도가 있는 것은 설계한 분이 있다는 증거이다. 사람은 아메바가 진화해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교한 설계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작품이다. 진화론자들은 화석을 보고 모든 생물의 진화를 주장하지만 진화했다면 중간단계 화석은 왜 없는가? No touch! 아주 오래전, 추석을 맞아 유치원에 다니는 조카딸에게 한복을 사주고 싶어서 제 엄마에게 돈을 주며 제일 예쁜 것으로 사주라고 했다. 몇 시간 후 때때옷을 사왔다고 좋아하는 조카딸을 맞으며 "어디보자 ~ 얼마나 예쁜가" 하고 때때옷을 만지는 순간, 조카딸이 "만지짐 마!" 하고 소리를 빽~ 지르는 것이었다. "어?"(내가 사준건데~ 손도 못대게 하다니) 어이없어서 웃었다. 아이는, 시장에서 제 엄마가 돈을 지불했으니 큰 이모가 옷을 사주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일순간 섭섭한 생각이 들며 이것이 하나님 앞에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지 우리보다 더 잘 아시며 때를 따라 필요를 공급하시고. 우리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래서 제 힘으로 사는 줄 알고... 제 것인 줄 알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땀 흘려 수고하여 번 것인데 뭐가 하나님 은혜야?" "내 삶에 간섭하지마!" 아이들은 보는대로 한다. 2005년 우리 하은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 이야기. 작은 딸 기원이의 남편은 글로벌선교교회 부목사이다. 작은 딸은 LA의 CCC에서 활동하며 캠퍼스 사역을 했다. 저녁에 가정예배를 드릴때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기도하는 데 목사인 아빠가 딸 하은이에게 "내일은 엄마가 캠퍼스에서 말씀전하니까 잘 전하도록 하은이가 기도해줘!" 그랬더니 다섯살배기 하은이가 "알았어!" 그래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 데 갑자기 하은이가 제 엄마 머리에다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단다. 제 엄마는 깜짝놀랐지만 웃음이 터져 나오더란다. 제 아빠가 저희들을 위해 기도할때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해주니까 누구를 위해서 기도할때는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인 줄 알았나 보다 아이들은 보는 대로 한다. 아마 하나님도 웃으셨을 것 같다. 토기장이 내가 알고 있는 어느 목사님은 설교는 은혜롭게 잘하시는데 인물이 너무 안? 생겼다. 얼굴은 쌔까맣고, 눈은 작고 찢어졌으며, 입술은 튀어나오고 두툼하다. 동료 목사님들이 용모에 대해 농담을 하면 "어허! 하나님의 작품을 가지고 왜 이러쿵저러쿵 해요?" 라고 하신다. *^^* 정말 그렇다. 못났어도 잘났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뭐 저런 사람이 다있어?" "저런 사람은 없는게 나아." 하고 외모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격을 가지고도 우리는 폄론한다. 한갖 미물인 지렁이, 거머리도 다 뜻이 있어 지으셨는데 하믈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이랴. 단점이 많고 허물투성이의 인간일지라도 지으신 이의 목적과 뜻이 있는 존재들이다. 신체적인 장애나 성격적 장애가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대로 지어진 것이다 그러기에 "나를 왜 이렇게 만드셨어요?" 항의 할수 없다 우리는 피조물이니까....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 받은 물건이 지은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이 없느냐?"ㅡ로마서9:20-21. 자존심 남편은 나에게 "당신은 자존심이 강해!" 라고 한다. 자존심의 뿌리는 열등감이라고 했던가? 내가 약점과 부족함이 많기에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자존심이 강하다는 말보다는 자존감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자존심은 부정적인 개념이지만, 자존감은 긍정적인 개념이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함부로 처신하지 않는다. 오래 전 허광재목사님이 사모대학교육에서 말씀하기를 "남자의 자존심은 고압선과 같다 고압선을 잘못 건드리면 타 죽는다" 라고 했다. 나는 타 죽지 않으려고 남편의 자존심을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그것이 가정평화에 일조를 했다고 볼수 있다. 사실 누구의 자존심이나 다 민감한 것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지 않는가? 자존심을 건드려서 화를 당한 이야기는 수 없이 많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해서는 내 자존심이 중한 것처럼 남의 자존심도 중한 줄 알고 내 인격이 귀한 것처럼 남의 인격도 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약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존중받으면 기쁜 것처럼 다른이도 존중받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처신하면 된다고 본다. 오늘 극장 스크린에서 본 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바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