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ㅡ 이어령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ㅡ 이어령 하나님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거기 있었는냐" "네가 그 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31
꽃샘 바람 - 이해인 꽃샘 바람 - 이해인 속으론 나를 좋아하면서도 만나면 짐짓 모른체하던 어느 옛친구를 닮았네 꽃을 피우기 위해선 쌀쌀한 냉랭함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얄밉도록 오래 부는 눈매 고운 꽃샘바람 나는 갑자기 아프고 싶다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30
비밀의 숲 ㅡ 김춘경 비밀의 숲 ㅡ 김춘경 성밑 담벼락 뒷 편을 둘러 싼 작은 동산에 아무도 모르게 묻어 둔 추억의 방 어린 시절 혼자서만 드나들던 곳 늘어진 솔가지와 이름 모를 풀로 덮인 지붕아래 틈새로 기분 좋게 새어 나오는 햇볕을 받으며 소꿉놀이로 미리 한 세상 살아 보던 곳 해거름이 되도록 온종일 은밀하고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29
엽서 1. - 장석주 엽서 1. - 장석주 저문 산을 다녀왔습니다. 님의 관심은 내 기쁨이었습니다. 어두운 길로 돌아오며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지만 내 말들은 모조리 저문 산에 던져 어둠의 깊이를 내 사랑의 약조로 삼았으므로 나는 님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속에 못 견딜 그리움들이 화약처럼 딱딱 터지면서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28
새벽안개 ㅡ 신경림 . 새벽안개 ㅡ 신경림 사랑을 배우고 미움을 익혔다 이웃을 만나고 동무를 사귀고 그리고 더 많은 원수와 마주쳤다 헛된 만남 거짓 웃음에 길들여지고 헤어짐에 때로 새 힘이 솟기도 했으나 사랑을 가지고 불을 만드는 대신 미움을 가지고 칼을 세우는 법을 먼저 배웠다 법석대는 장거리에서 저무는 강..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27
열무꽃 ㅡ 김달진 열무꽃 ㅡ 김달진 가끔 바람이 오면 뒤울안 열무 꽃밭 위에는 나비들이 꽃잎처럼 날리고 있었다. 가난한 가족들은 베적삼에 땀을 씻으며 보리밥에 쑥갓쌈을 싸고 있었다. 떨어지는 훼나무 꽃 향기에 취해 늙은 암소는 긴 날을 졸리고 졸리고 있었다. 매미소리 드물어 가고 잠자리 등에 석양이 타면 우..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26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 - 이어령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 - 이어령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24
봄 안부 ㅡ 강인호 봄 안부 ㅡ 강인호 당신 없이도 또 봄날이어서 살구꽃 분홍빛 저리 환합니다 언젠가 당신에게도 찾아갔을 분홍빛 오늘은 내 가슴에 듭니다 머잖아 저 분홍빛 차차 엷어져서는 어느 날 푸른빛 속으로 사라지겠지요 당신 가슴속에 스며들었을 내 추억도 이제 다 스러지고 말았을지 모르는데 살구꽃 환..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23
일인분의 고독 ㅡ 장석주 일인분의 고독 ㅡ 장석주 당신이 내게 보인 뜻밖의 사적인 관심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관례적 방식을 빌기는 했지만, 당신의 '사랑한다'는 고백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기뻤습니다. 잎을 가득 피워낸 종려나무, 바다에 내리는 비, 그리고 당신. 그것은 나를 기쁘..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21
달빛 - 이시은 달빛 - 이시은 허공 더듬으며 밤이면 방 가득 들어 앉던 당신 그대 이름 부르면 응답의 눈길 보내시더니 오늘은 간절히 부르는 목소리 끝내 못 들으셨습니까 하늘에는 먹빛 침묵만 흐르고 당신에게로 이르는 길은 보이지 않습니까 신열 돋는 가슴 녹아나는 진액으로 불 밝혀 길 떠나는 밤이면 알고도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20
그대도 나처럼 그대도 나처럼 그대도 나처럼 흔들리는 가슴의 노래를 들으며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까. 그대도 나처럼 가시에 찔린 상처를 안고 내 마음 싸매어 줄 친구 하나 만날 것 같아 저녁노을이 고운 바닷가 찻집에서 밤이 늦도록 홀로 울부짖는 밤바다를 멍하니 바라..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19
샘 - 정진명 샘 - 정진명 내 마음 깊은 곳에 샘이 하나 있습니다 날마다 퍼내어 쓰지만 마른 적이 없는 샘 내가 쓰고도 남아 이웃들에게도 베풀고 때로 뭇짐승들에게도 나누어줍니다 퍼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것은 물길이 당신에게 닿아 있는 까닭입니다 나그네가 칡잎을 오그려 마른 목을 축이고 가는 그런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18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 유안진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17
산울타리 둘러친 집 - 이시은 산울타리 둘러친 집 - 이시은 산울타리 둘러친 집에 살면서 쩡쩡 울려오는 산웃음 데리고 해사한 얼굴로 찾아오는 아침 해 맞으러 가자 아침 해야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찾아오고 초대하지 않은 산노을도 자리를 펴는데 회울음 울어도 웃고 마는 바람허리는 잘도 휘청인다 마른 날 벼락 돋는 소리도 ..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17
봄이 오면 - 이해인 봄이 오면 - 이해인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안뜰에 작은 꽃밭을 일구어 꽃.. ━━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2009.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