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설교예화 3380

착각의 십자가와 복음의 십자가

착각의 십자가와 복음의 십자가 어떤 사람이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다 십자가로 생각하고 참고 살아야지요.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는데, 이런 병도 십자가로 생각하고 견뎌야죠.”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병의 원인입니다. 이 사람은 평소 너무 많이 먹고 불규칙한 식사 생활로 인해 위장병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렇듯 자신이 몸 관리를 잘 못하고 음식에 지나친 탐욕을 부리다가 얻은 병을 십자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십자가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가난이 한때 방탕하고 사치해서 생긴 것인데, 그렇게 해서 생긴 가난을 십자가로 간주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탄소 금식

탄소 금식 사순절은 근신과 절제의 기간입니다. 지상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40일은 모든 인류의 죄악을 감당하기 위한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제자들과 진솔한 대화, 회중을 향한 강력한 선포, 하나님 앞에서 행한 처절한 기도, 어린 양과 같은 온전한 순종 등이 모두 이 기간에 이뤄졌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언택트 시대가 열리면서 배달이 급증했고 일회용품 사용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덩달아 많은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이고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지금 현세대를 보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영혼의 건강을 위한 금식은 물론 하나님이 만드신 환경을 되살리기 위한 탄소 금식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

가까운 세상 여행

가까운 세상 여행 과거 유럽의 귀족 사이에선 여행이 고상한 취미였습니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자제들은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세상을 배우러 타국에 갔습니다. 이들은 본국에 돌아가 새로운 학파를 만들기도 했고, 미술의 새로운 유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낯선 것을 만나 흡수하고, 자기 것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가 태동한 것입니다. 요즘 여행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것을 접하는 갈망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꼭 멀리, 물리적 공간을 이동해야 낯선 문화와 접촉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동일 문화권 내에서도 평소 방문하지 않던 낯선 곳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너무 가까워서 지나쳤던 동네 뒷산, 옆 동네 재래시장, 가까운 하천 산책로 등 말입니다. 대화를 잘 나..

기준이 되는 진리

기준이 되는 진리 미국에서 지낼 때,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내비게이션이 없었기에 지인은 자신의 집으로 오는 길을 전화로 설명해줬습니다. 그분의 설명은 간단했습니다. 어느 길을 말씀하시곤 그 길로 ‘죽’ 와서 막다른 길을 만나면 좌회전해서 ‘좍’ 오면 큰 노란색 쓰레기통이 보일 텐데 그 노란색 쓰레기통 앞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설명을 기억하고 무작정 그분의 설명대로 차를 몰고 갔지만, 커다란 노란색 쓰레기통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몇 번의 전화 통화 끝에 겨우 그 집에 도착했는데, 노란색 쓰레기통은 없었습니다. 어제까지 분명히 노란색 쓰레기통이 있었다는 지인의 말에 따님이 말했습니다. 매주 수요일에는 쓰레기 수거하는 차가 그 통을 가져가기 때문에 쓰레기통이 없는데 오늘..

천냥 시주 말고

천냥 시주 말고 흔히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계명을 준다 하시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중 인색한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반성하듯이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혹시 헌금 생활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하나님께 헌금하고 있다는 생각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건네는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천냥 시주 말고 없는 사람 구제하랬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러줍니다. 큰 금액인 천냥을 시주하는 것보다 주변의..

봄 봄의 어원이 ‘보다(見)’에서 비롯됐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봄은 보는 계절입니다.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보고,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기 시작하면서 봄이 옵니다. 열왕기하 6장에는 엘리사가 사는 성읍을 이방인 아람 군대가 포위한 사건이 나옵니다. 이 상황을 본 엘리사의 사환은 탄식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사환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사의 기도로 영적인 눈이 열린 사환이 다시 상황을 보니 아람 군대와 비교도 안 되는 하나님 군대가 산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문제만 볼 때는 겨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보기 시작하면 봄이 온 것입니다. 봄이 와도 보지 못하면 여전히 겨울이요, 겨울에도 볼 줄 알면 겨울도 봄입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

모국어

모국어 우리나라에는 지역별로 독특한 사투리와 억양이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 대화하다 보면 어느 지역 출신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만 쓰는 고유의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예도 있지만 함께 살고 대화하면서 서로의 말과 뜻, 마음을 이해하며 더욱 친밀해집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선포합니다. 성도 된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영혼의 국적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은 여전히 염려, 불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의 입에서 불신과 죄, 더러운 말을 제하시고 믿음의 말, 권능의 말, 무엇보다 하늘의 억양과 은혜의 악센트로 말하게 하십니다. 하늘의 언어를 잃어버린 인생, 그 인생들을 향해 홀..

부러진 가지에 핀 꽃

부러진 가지에 핀 꽃 개천 길을 따라 걷다가, 개천으로 내려가는 길목의 나무에 제법 굵은 가지 하나가 부러져 땅에 닿을 정도로 겨우 매달린 걸 봤습니다. 그 가지를 볼 때마다 참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봄이 돼 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자 그 부러진 가지에도 꽃이 폈습니다. 부러져 죽은 것 같던 그 가지에 꽃이 핀 건 아직 나무에 간신히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부러진 인생 같아서 더는 희망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영혼의 끝이 하나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부러진 가지에도 꽃 필 날이 오듯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이 꽃피워 줄 날이 올 것입니다. 꽃은 스스로 피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공급되는 진액으로 피어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끝까지 ..

돌려놓아도 돌아서는

돌려놓아도 돌아서는 목양실 창가에 몇 개의 화분이 놓여 있습니다. 난과 제라늄, 파피루스, 선인장 등이 옹기종기 햇살을 즐깁니다. 이 중 바위취도 있습니다. 겨울을 보내며 잎은 모두 졌고, 물기 없이 긴 시간을 보낸 터라 또 하나의 화초를 죽였구나 싶었지요. 혹시나 해 봄을 맞으며 물을 줬는데, 기적이 일어나듯 초록빛 잎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바위취의 여린 잎들은 한결같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창가에 매달려 창밖을 구경하는 아이들처럼 말이지요. 햇살 쪽을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한쪽만 바라보는 것 같아 화분의 방향을 거꾸로 돌렸습니다. 그런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잎들은 다시 고개를 돌려 창을 향했습니다. 돌려놓아도 돌아서는 바..

지도자

지도자 주요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임박했습니다. 유세 기간 후보자의 언행과 일정이 낱낱이 보도되고, 그들의 관심사와 공약도 비교 대상입니다. 사회 전체가 희망을 잃을 때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실망스럽습니다. 선명한 자신만의 공약과 비전을 제시하기를 기대했는데, 과거 선거와 다를 바 없이 상대의 흠을 찾습니다. 실수를 공격하며, 과거를 들추며 비판합니다. 위기의 시대 혁신적 리더십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또다시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상대를 공격하기보다 높여주는 후보는 없는 것일까요. 상대 공약의 장점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공약의 더 나은 점을 설득하는 것은 선거 때 어려운 일일까요. 언론이 상대의 약점을 공개했을 때 들추기보다 감싸며 선의의 경쟁을..

자존심

자존심 자녀들과 함께 유명한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화가의 그림을 보는 듯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하나씩 올려졌습니다. 우리네 식탁 같으면 그릇에 대충 담아서 먹을 것 같은 음식들도 독특한 모양의 그릇에 세밀하고도 정성스럽게 올려져 있었습니다. 셰프에게 이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자존심이요, 손님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 그 자체였습니다. 언젠가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수많은 성인 중 한 사람 또는 우리의 소원을 이뤄주는 요술램프처럼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가장 귀한 보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는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자 자존심임을 아십니까. 모든 것을 창조하신 영혼의 셰프이신 하나님이 가장 ..

십자가

십자가 “사실을 내게 말하면 나는 배울 것이다. 진실을 말하면 나는 믿을 것이다. 이야기를 해주면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 속담의 한 경구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피와 물을 모두 쏟으신 ‘사실’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진실’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아들 예수님까지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중 하이라이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구원하실 땐 그의 아들을 보내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약한 자를 고칠 때 말씀을 선포하시거나 그의 손을 친히 잡아 일으켜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눈물겨..

아브라함은 높이뛰기 선수가 아니다

아브라함은 높이뛰기 선수가 아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을 믿은 첫 번째 사람이 아닌데도 믿음의 조상으로 기억되는 건 큰 명예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이삭을 바친 일입니다. 늘그막에 얻은 외아들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 할 때 아브라함은 그대로 따릅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높이뛰기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들은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섭니다.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고 마냥 고민하며 미루지 않았습니다. 모리아산이 보이자 종들을 남깁니다. 끝까지 데리고 갔으면 분명 종들이 말렸을 것입니다. 이삭과 둘이 가며 칼과 불을 자기 손에 쥡니다. 칼과 불은 번제를..

게임 체인저

게임 체인저 어떤 일에서 판도를 뒤바꿔 놓는 인물, 사건, 제품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합니다. 활자 발명, 화약 개발이 대표적 예입니다. 경영학에선 시장에 변화를 일으키는 혁신적 인물이나 기업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은 게임 체인저를 기다립니다.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은 강력한 백신과 치료제를 갈망합니다. 백신이 개발됐지만, 더 인내하고 기다려야 효과를 경험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토록 기다리던 게임 체인저는 이미 우리에게 선물로 오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마음과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셨습니다. 거짓된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내시고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셨습니다. 참 평안을 선물하..

보혈의 능력

보혈의 능력 35년 전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셨던 어머니께서 1년 동안 병석에 누워계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의술로는 치료받을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심하셨고 진통제를 복용하시며 하루하루 눈물로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와 초등학생이었던 남동생에게 점심 도시락을 못 싸주셨고 퇴근하신 아버지께서 밥을 지어야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는 여자 집사님의 전도를 받고 오산리기도원에 다녀오신 이후부터 걸어 다니기 시작하셨고, 빨래와 식사를 해 주실 정도로 건강해지는 기적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35년간 허리통증으로 병원에 가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십니다. 어제 우리는 종려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종려주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