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결말이 선함을 믿으십시오

Joyfule 2015. 9. 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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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3) 결말이 선함을 믿으십시오

에베소서 1장 7-10절

 

< 결말이 선함을 믿으십시오 >

 

하나님은 통일시키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10절). 하나님은 우리의 앞날을 지금도 만들어 가십니다. 시련도 필요합니다. 시련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입니다. 작은 병이 더 큰 병과 불행을 막습니다. 쉴 줄 모르면 강제로 쉬게 되고, 안식을 지키지 않으면 강제로 안식하게 됩니다. 강제적인 쉼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강제적인 쉼은 후퇴하는 절망의 기회가 아니라 회복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고난은 최종 선을 위한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때로는 비도 와야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감사하는 전천후 감사신앙은 좋은 날을 부릅니다. 진짜 인격과 성품과 가치관과 믿음은 고난 중에 진가가 나타납니다. 세상이 어두우면 불신자는 세상을 원망하지만 믿는 사람은 “내가 빛을 발할 때가 이때다.”라고 일어섭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다 어려운 때 일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새 사소한 일로 실망하고 시험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은 축구 중에 목사님이 자기 발을 밟고도 미안해하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에 등록하면서 그 교회 목사님에게 대뜸 질문했습니다. “목사님은 축구 잘해요?” 목사님이 잘 못한다고 하니까 그때 그는 “정말 다행이네요!”하고 그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잦은 실망은 낮은 소망 때문입니다. 앞날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할 것은 ‘나의 신실함의 부족’이지 ‘미래에 되어질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혼돈 중에 흘러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분명한 목적 중에 하나님이 설계하신 제 코스로 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세상은 심판과 징벌과 파괴로 끝나지 않고, 승리와 축복과 재창조로 끝납니다. 우리의 삶에도 반드시 그런 선한 결말이 있을 것입니다.

 

< 극복하지 못할 시련은 없습니다 >

 

한 청년이 실연을 당했습니다. 인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어른들은 “별일 아냐!”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저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나!”라고 섭섭해 했지만 점차 인생 경험을 쌓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때는 무서운 실연을 당했지만 그래도 잘 사는 것을 보고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었습니다.

 

시련은 있지만 극복하지 못할 시련은 없습니다. 나의 실패는 다 남도 겪는 실패입니다. 큰 실패도 겨우 한두 번의 실패입니다. 감사를 렌즈를 끼고 보면 지금까지 승리한 삶이 훨씬 많았습니다. 한 가지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닙니다. 실패에는 하나님이 선한 의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말은 항상 선합니다.

 

인생의 선과 그림과 흔적들이 땅에서는 이해되지 않지만 하늘에서는 그것들이 위대한 하나님의 예술작품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언젠가 천국에 가면 그 하나님의 위대한 예술작품의 신비가 명쾌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는 흑암과 골짜기와 같았던 순간이 하나님의 위대한 설계였음을 알고 감탄할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커지면 천국에서 할 감탄을 이 땅에서 미리 앞당겨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땅의 감사는 하늘의 감탄을 선도합니다.

 

슬픈 얘기를 계속 하면 겉으로는 공감해주는 것 같아도 점차 이웃을 잃습니다. 그러나 힘들었지만 승리한 얘기를 하면 같이 기쁩니다. 슬픈 얘기는 사람도 싫어하지만 하나님도 싫어하십니다. 이제 슬픈 표정, 슬픈 얘기, 슬픈 생각을 멀리하십시오. 불행을 세지 말고 감사를 세십시오. 하나님은 이전에도 지켜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고, 이후에도 지켜주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도 선하고, 삶도 선하고, 성도의 결말도 선합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