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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생활지침 Lessons on Christian Living

Joyfule 2021. 5. 23. 02:06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 제7권]

    그리스도인의 생활지침 Lessons on Christian Living

 

 제 4 과 - 믿음에 의한 생활


먼저 고린도후서 5:7절을 암송하십시오.


믿음에 의한 생활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희미한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만드신 것은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약속을 하셨고 그 약속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대가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Pai cost (페이코스트 : 대가를 지불하다), 즉 대가를 치르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믿음을 배우려면 값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는데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무조건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 믿음을 보기 위해서 희생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고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하였습니다(고통을 겪었습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순종을 하나님께 보여드렸습니다. 그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삭을 통해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 아들, 이삭을 칼로 쳐서 죽이려는 부모와 같은 마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 것 같은 마음을 아파하셨습니다. 그 대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믿음을 배우는 데 값을 치르는 성도가 되십시오. 아브라함은 순종하지 않고는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믿음을 주십니다. 값을 치르지 않는 믿음은 가치가 없기 때문에 쉽게 버려 버립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값을 지불하면서 믿음을 배워야 한다.’ 라는 결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받기만 하면 진보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을 배우고 순종에서 여호와 이레 준비의 축복을 배웠습니다. 이삭을 칼로 베어야 하는 아픔과 같이 하나님의 아픔을 보여주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축복은 아들을 받치므로 배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제물이 됨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가를 지불하므로 배우는 것입니다.


◉ 묵 상 (고린도후서 5:7)

 

보는 것으로 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알고 있는 상식, 보는 느낌, 판단해서 그대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사람의 오감, 즉 보는 것으로 사물을 터득한다는 것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백번 묻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행합니다. 현세적인 것 경험적인 것 물리적인 것 그대로 믿고 삽니다. 다른 것은 믿지 않습니다. 지식을 추구합니다. 생각, 느낌, 판단 각자 다 다릅니다. 그런 것 판단하고 생각하고 결정하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이것이 현세 그대로 보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의 대표로는 에서와 롯을 들 수 있습니다. 에서는 신령한 것을, 보는 것으로 팔아 버렸습니다. 롯은 소알 바라볼 때 물댄 동산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겨우 부끄러운 구원받은 인생입니다. 우리는 위엣 것을 바라보는 자가 됩시다(골로새서 3:1~3).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행한다는 뜻인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땅엣 것과 반대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산다는 것입니다. 내 의견과 맞지 않고 비현실적이지만 내 느낌, 생각, 판단 이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옳다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내 생각, 판단 포기하고 말씀 믿고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사야 7:10~16절에 보면, 북 왕국 이스라엘이 연합군을 조직하여 유다를 치러왔을 때 아하스는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불안한 심정이 범민족적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이사야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임마누엘이 나옵니다. 동정녀 탄생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응답합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저들을 부지깽이처럼 만들 것이니 증거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아하스 왕은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사야가 다시 응답합니다. 700년 후에 유다족속을 통해 동정녀가 탄생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에 아하스 왕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유는 아하스는 유다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유다 자손을 통해 온다고 했으니 유다를 멸망시키지 않고 살려 놓을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살아야 예수가 온다는 것은 곧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승리를 확신하는 자는 염려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깁니다.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아하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물을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내 생각, 느낌 경험대로 살았다면 이것은 영적으로 헛수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만 하면 열매 가득히 맺는 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칼빈주의는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불신앙으로 행하고 실패하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로서 웃사는 법대로 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과 충돌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광야 40년 동안 가르치신 것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중심하여 가라하는 곳에 가고 멈추라는 곳에 멈추어야 했습니다. 이것만 잘하면 됩니다. 추월하는 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신뢰할 때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행하고…”


1. 믿음은 왜 필요합니까? (히 11:1)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목적을 알고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목적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행하고 수고하는 것은 가인의 제사가 되기 쉽습니다. 가인은 자기중심이었습니다. 가인은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드리므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에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받은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믿음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차이는 목적이 달랐습니다. 아벨이 드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양식으로 준 때는 노아 홍수이후이기 때문입니다. 양은 양식도 아닌데 첫 새끼를 드린 것은 죄 구속 때문에 드린 것입니다. 아담이 분명히 가르쳤을 것입니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데려간 것을 볼 때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한 이유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에녹이 65세에 변화되었는데 그 때에 자기의 인생을 정리했습니다(유다서 14~15). 아들을 낳는데서 동기가 되어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 아들은 므두셀라인데 ‘므두’는 죽음이라는 뜻이고 ‘셀라’는 무엇을 보낸다, 무엇이 터진다는 뜻입니다. 므두셀라는 B.C 317년에 출생하였고 므두셀라가 죽던 그해 노아 나이 600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인데 그 믿음의 제1공식은 “하나님이 가라사대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제2공식은 “그 말씀을 듣는 것인데 듣습니다.” 제3공식은 “깨닫고 믿게 되는 것인데 믿습니다.” 제4공식은 “확신 한다 인데 확신이 온다는 것입니다.” 제 5공식은 “내가 그 말씀을 준행한다는 것인데 행하는 것입니다.” 제6공식은 “내가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인데 증거를 받는 것입니다.” 제7공식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인데 영광 받으신다. 입니다.”


2. 믿음은 어떻게 성장 합니까? (롬 10:17)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리라”
믿음은 성장합니다. 그리고 죄도 성장합니다(야고보서 1장 15절에 “죄가 장성한즉”). 믿음은 절대 고정되면 안 됩니다. 성장하고 자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구원받은 믿음은 순간적이나 계속 자라야 하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믿음은 중생 거듭 났습니다. 이젠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라야 합니다. 이 땅에서 소유한 믿음은 계속 자라야 합니다. 믿음은 말씀 듣는 중에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대한 두 가지 면을 살펴보면, 첫째는 믿음 자체가 성장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 인격이 성장해야 합니다. 믿음 성장의 재료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다는 의미는 듣는다든지 공부를 했다든지 이해하고 받아 드리고 수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귀로만 듣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옥토 밭을 깨닫는 것을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이 중요합니다.


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께서 일곱 교회에 하신 말씀 중에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영적 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장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고 받아 드리고 수용할 때 믿음이 자랍니다. 내 생각 내 판단으로는 절대 자라지 않습니다. 또 분위기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유익하고 좋은 영양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자라게 하지는 못합니다. 은사로도 자라지는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영양이 공급될 때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도 말씀과 일치될 때이며 그 말씀으로 은혜 분위기를 만들 때 충만하여져 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면 좋은 제목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를 견고케 하고 반드시 상급을 받게 하십니다. 기도 열심히 하고 확신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3. 바울은 그의 믿음을 “말씀 위에” 두었습니다. (행 27:25)


사도행전 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은 믿음의 기초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었습니다. 자기 경험이나 자기 학식이나 자기 성공에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두었습니다. 로마 항해 중 유라굴로라 강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망이 없는 가운데 배의 화물을 버리고도 구원의 소망이 없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응답을 주셨습니다. 바울에게 그 배에 있는 생명들을 부쳐주겠다고 했습니다. 배만 깨여져 잃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배가 깨여지고 잃는데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논리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유라굴로라의 강풍 속에서 나온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반석이요 기초석입니다. 이 때 뿌리가 깊이 견고히 내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굳게 붙잡으면 유라굴로라 같은 문제도 능히 감당하여 이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십시오. 바울은 배는 깨어져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사야 40장 8절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하였고, 요한복음 6장 68절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를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바울에게 말씀으로 양육을 받았기 때문이다.(모세의 수종 여호수아)


4. 당신의 믿음에는 무엇이 따라야 합니까?


(1) 야고보서 2:17

첫째는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보서 2:17). 영혼이 없는 몸과 같은 것입니다. 즉 죽은 시체입니다. 병원에 식물인간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은 활동하는 것입니다. 즉 예배드리고 찬송 드리고 기도드리고 봉사하고 예물 드리고 전도하는 것이 산 믿음의 활동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많은 나라입니다. 전쟁 때 금은보화 땅에 묻어 두고 피난을 갔습니다. 어떤 농부가 남의 밭을 경작하다 쟁기에 무엇이 걸려 파보니 큰 보화가 있었습니다. 그대로 묻어 두고 자기 집과 재산 모두를 팔았습니다. 아내는 왜 그랬느냐는 물음에 남편은 나를 믿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평상시에 진실한 남편을 아내는 믿었습니다.


농부는 땅 주인에게 그 밭을 팔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보화가 없는 땅인 줄 알고 팔아버렸습니다. 농부는 그 보화의 가치성을 알고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땅을 산 것입니다. 남들이 예수 믿으며 하는 것이 정신 나간 짓이라 하여도 오늘 구원의 은혜를 알고 믿는 자들에게는 그 믿는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난관이 있어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자기 전 생애를 투자하면서도 값지게 여기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인내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땅속에서 발견한 보화입니다. 부자 청년이 주님 찾아 왔지만 재산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했을 때 세상에 더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예수 보화를 소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내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것은 그 가치관이 주님이 최고의 보화로 믿고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이루어질 때 귀한 믿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값을 지불하는 것이 행함이 있는 산 믿음입니다.


(2) 히브리서 6: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基業)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동반되고 인내가 따라야 합니다. 믿음의 결과는 인내가 따라야 하는데 이는 자동차의 바퀴와 같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땀을 흘리며 김을 매고 물대어 주는 고생을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농부는 가을에 풍성한 열매가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잠자고 놀면 가을이 와도 열매가 없습니다. 수고한 후 인내할 때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결과를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수고하고 인내하며 결과를 가지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믿음이 없으면 인내가 없습니다. 인내를 통하여 약속한 말씀을 믿고 행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과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입니다. 인내는 반드시 기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