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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에도 원리가 있다

Joyfule 2018. 3. 22. 01:37

  

기적에도 원리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원리가 있다. 그래서 그 원리를 알면 예측도 가능하고, 잘못된 원인도 파악해서 바로잡을 수 있으며, 지금보다 더욱 발전을 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는 곳이 바로 영적인 세계이다. 영적인 세계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리고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 세계이다. 아시다시피, 영적인 세계를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철저한 원칙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운영체계를 안다면 영적인 사람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증거는 기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드러난다. 그러나 기적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방식이 아니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모든 크리스천이라면 기적을 믿어야 한다. 성경은 기적으로 시작해서 기적으로 끝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부정하지는 않지만, 삶의 현장에서 기적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예수를 그리스도 믿고 교회를 다니고는 있지만, 기적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원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기적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원리에 대해 곱씹어보자.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대자연을 다스리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붙는 수식어가 전지전능이다. 그래서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못 하실 일이 없으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의 눈으로 예측할 수도 없고 인간의 생각으로 측정할 수도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기적의 원리를 알아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간다면 기적의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위인들은 죄다 기적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떤 원리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는가?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1:22)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20)

 

아시다시피,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는 직접적이고 필수적인 근거는 믿음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당신의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도할 때마다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였지만,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더욱 희생의 강도를 높여서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기복신앙의 원칙을 적용하여서 새벽기도나 작정기도 혹은 금식기도에 박차를 가하거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얼버무리며 은근슬쩍 뒤로 빠지기 일쑤이다. 그래서 아무도 자신의 믿음의 실체를 볼 수도 없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자신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조차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에 아무런 응답이 내려오지 않는 이유이다. 우리네 교회에서 잘못 가르치는 것이 바로 믿음에 대한 정의이다. 믿음은 자기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셔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믿음을 평가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4:2,3)

 

야고보 사도는 사람들이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콕 집어서 말씀해주셨다. 간구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따라 구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결과는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믿음이 없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어디에서 얻어지는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4:29)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29:13)

 

하나님이 믿음이라고 여기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철썩 같이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자신의 자녀에게 최고의 선물을 준비해놓으시고, 자신을 찾아와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자녀들에게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그래서 당신은 시도 때도 없이 하나님을 찾아오시는가? 대부분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1분짜리 영접기도를 마치면 성령께서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이상 찾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성령 하나님이 자신 안에 계신데, 또 무슨 하나님을 찾아올 것인가? 그러나 성령이 안에 계시는 사람이 바로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는 성령의 사람이 아닌가? 아니, 1분짜리 영접기도에 아멘 하는 게, 바로 하나님을 찾아오는 자녀들의 태도인가? 아니다. 성경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온 마음으로 찾으라고 명령하고 계시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 사람에게 찾아오실 턱이 없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당신이 찾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계신다면 누가 찾아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지식을 머리에 저장한 것에 불과하지, 정말 살아계신다는 것을 철썩 같이 믿는 믿음을 가슴에 저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찾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죄다 만나주실까?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만나주실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주실까?

 

1. 쉬지 않고 전심으로 찾아오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간절히 찾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절박하게 간절히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필자가 시장에서 어린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어린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적당히 찾겠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찾겠는가? 아니면 정해 놓은 시간에만 찾겠는가? 아이를 찾을 때까지 정신없이 목이 터지라고 불러댈 것이며, 만나는 사람마다 옷깃을 붙잡고 호소할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만을 만나주신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고, 예수님도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고 하였으며,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게 죄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아침과 밤에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정해서 깊은 기도를 해야 하며, 낮에도 틈만 나면 쉬지 않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부르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2. 깨끗한 사람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22:8~14)

 

깨끗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예복을 입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탐욕과 방탕과 온갖 더러운 죄로 얼룩진 옷을 그대로 입고 예수님을 찾기 때문에 만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깨끗하다는 말은 거룩하다는 말이며,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므로 자녀들에게도 거룩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래서 예수 피에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씻는 자들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날마다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며 죄를 깨끗하게 씻고 계신가? 당신이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치는 죄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에다가, 목회자들이 교회에 관행이거나 자의적으로 지어낸 희생적인 종교행위에 순종하지 않는 명령위반도 죄의 목록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이고,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죄가 가장 큰 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나아오는 자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여야하겠고, 날마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 육체의 소욕을 쫓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좇는 죄와 피터지게 싸우며 이겨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만물보다 더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며,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아를 버리지 않는다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런 죄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피의 공로에 의지하여 회개하고 있다고 해서, 자신의 죄가 용서함을 받아 깨끗하게 씻겨 진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입으로 회개 기도한 것만으로 죄의 용서함을 받았다고 여기며, 이것을 믿는 게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인가? 예수 피의 공로로 죄가 용서함을 받아서, 죄의 대가를 더 이상 지불하며 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죄의 대가란 죄로 인해 생기는 온갖 불행과 고통스런 삶의 문제들이다. 각종 고질병과 정신질환을 비롯해서 극심한 가난, 그리고 삶의 문제들이 죄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면 고질병이 치유 받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평안하고 형통한 삶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어디 이뿐인가? 회개의 열매는 죄와 피터지게 싸우는 영적 능력이다. 전심으로 회개한다고 하더라도 죄를 반복적으로 짓고 있다면,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돼지가 씻은 몸으로 진흙탕에 뒹구는 것이 아닌가? 물론 피터지게 싸우다가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것과, 죄를 지으면 다시 회개하면 되지 하는 것과는 온도차가 크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며 죄인을 가까이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죄를 미워하며 피터지게 싸우는 지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고 계시다. 어쨌든 회개의 열매란 날마다 죄에서 멀어져서 깨끗하게 사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셔야 할 것이다.

 

3. 돌같이 굳은 믿음의 사람

 

믿음의 사전적인 정의를 생각해보자. 믿음이란 이루어질 것을 믿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철썩 같이 믿는다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해주셔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의 믿음을 인정하시는가? 바로 믿음을 보이는 자를 찾고 계시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을 보자. 그는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목적지도 알려주시지 않고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시자,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는 씨족사회로서 치안이 확립되지 않았던 극히 위험한 시대였다. 그러므로 울타리를 두르고 있던 씨족사회를 떠난다는 것은 목숨을 내어버리는 위험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안위하심과 도우심을 믿고 떠나버렸다. 그가 하나님을 굳세게 믿었다는 증명은,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라는 가혹하고 잔인한 하나님의 명령에도 군말 없이 실행에 옮긴 사건이다. 성경은 그같이 한 이유가, 하나님께서 다시 살릴 것을 굳게 믿었다는 설명을 붙이고 있다. 거인 골리앗을 향해 싸움은 건 소년 다윗도 어리석을 만큼 굳센 믿음을 보였으며, 수많은 성경의 위인들은 물론이고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교인들도 그 믿음을 따라, 재산과 직업과 가족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믿음을 보였다. 그래서 당신은 그런 돌 같은 믿음을 보이고 계신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11:1~3)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13:44~46)

 

믿음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 인본적인 증거나 세상적인 잣대와 반대편에 있는 단어이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만왕의 왕이시며 만물의 주인임을 고백하며, 자신은 그분의 주인이며 하찮은 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원하는 삶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며 주인으로 모시는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천국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소중한 목숨을 포함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람만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런 돌 같이 굳센 믿음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믿음을 인정하시는 증거로서 기적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6:17,18)

 

이것이 바로 기적의 원리이다. 하나님은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공의롭고 정의로운 분이시다. 공의롭다는 것은 공평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누구에게나 똑같은 잣대로 재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나 모세, 베드로와 바울에게 재신 잣대를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재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당신의 믿음과 삶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 당신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믿음의 수준에 도달한다면 모세와 바울에게 보여주셨던 기적과 이적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낫게 하는 믿음의 표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직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 천국을 사는 결연한 태도로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사람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계시기 때문이다. 바로 당신이, 하나님께서 학수고대하며 찾으시는 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