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목회칼럼 - 감동은 겸손과 더불어 창조됩니다
요즘 신문이나, TV광고를 접하면 유난히 ‘감동’이란 단어를 강조합니다.
“감동의 영화” “감동여행” “감동 만점의 신간서적” “감동의 아침식사” “
감동을 드리는 기업” “감동을 선사하는 이벤트”등등이 그것입니다.
유독 감동을 강조하는 모습은 사실 이 시대가 감동이 사라진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더더욱 감동에 목말라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감동’을 선사하겠다는 광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 됩니다.
어떤 교회에 소그룹의 청년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도 목사님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청년들은 각각 자신이 바라는 바를 말했습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싶다, 유학 가고 싶다, 신앙이 좋은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 등등
그런데, 끝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한 청년이 무거운 입을 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에겐가 감동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자기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불행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동을 받지 못하는 사람, 감격할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도 감동이 없는 사람, 슬픈 일을 보고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
기쁜 일이 있어도 가슴이 벅차 오르지 않는 사람들이 오늘날 얼마나 많습니까?
현대인들은 점점 웬만한 일에는 바위처럼 마음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얼음장처럼 냉랭한 심장의 소유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감동을 주는 사람도 없고 감동을 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감동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요즘의 세태속에서 우리가 감동을 받을만한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히려 더욱 감동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우리의 삶에는 기쁨이 넘치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감동된 사람을 통하여 우리 또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감동이 창조될까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은 우선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말보다는 행동이 더 요구됩니다.
말만 많이 앞세우는 사람 치고 진실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된 우리도 예수 믿으라고 백 번 말하는 것보다
겸손한 행동 하나가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르익은 벼가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 보셨습니까?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무르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들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고 훈훈해지고 따뜻해집니다. 감동을 받습니다.
풍부한 지식이나 많은 말에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겸손한 행동에 진실로 감동됩니다.
우리 주님되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습이야말로 참된 겸손에서 우러나온 행동을 통한 감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그 진리에 대한 지식과 카리스마라면
제자들과 군중들이 바라던 이 세상의 왕이 되고도 남으셨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자기를 낮추시고 언제나 겸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그 겸손하심의 절대적인 상징인 것입니다.
인류에게는 십자가보다 더 큰 감동의 사건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겸허한 글 한 줄,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증거로 표현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이 우리의 삶 가운데 배어 나올 때 바로 그것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 됨의 표식이,
그리스도인 된 징표가 바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에 있음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성도 여러분을 섬기기를 소망하며
목회실에서 김지성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