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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65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7. 11. 08:35
 
 
꼬마 철학자65  - 알퐁스 도데  
 
    환상의 여인 아르마 보렐 2

    "당신이 말한 그 푸른 나비 어쩌구 하는 시집을 가져왔소. 
    참 해괴망칙한 시야!"
    그녀가 손짓을 해보이자 그는 하던 말을 멈췄다. 
그는 그 시의 저자가 그 자리에 있음을 알아차렸고 
계면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안의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졌다. 
그때 세번째 손님이 도착하여 다행이 분위기가 바뀌었다. 
세번째 손님은 그녀에게 연극대사의 발성기법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그는 안색이 몹시 창백하고, 붉은색 가발을 쓰고 있었으며, 
웃을 때면 썩은 이빨이 다 드러나 보이는 꼽추였는데 모습이 아주 끔찍했다. 
꼽추만 아니었더라도 당대의 위대한 연극배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꼽추란 사실 때문에 그는 무대에 설 수 없었고 학생들이나 가르치고, 
당대의 모든 배우들에 대해 악담을 늘어놓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르마 보렐은 그가 나타나자마자 큰소리로 물었다.
  "이즈라엘리뜨를 봤나요? 오늘 저녁엔 어땠어요?"
이즈라엘리뜨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유명한 비극 여배우 라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꼽추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그녀는 갈수록 못해. 그앤 영 별볼일 없단 말이야. 
더구나 그앤 창녀라구. 진짜 창녀란 말이야."
  "그래요? 진짜 창녀예요?" 
그녀가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그녀 뒤에 서 있던 나머지 두 사람도 확실한 어조로 따라 말했다.
  "진짜 창녀야...."
얼마쯤 지나서 사람들은 그녀에게 뭐든지 낭송을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종이칼을 쥐고 
실내복 소매를 걷어 붙이고는 낭송하기 시작했다.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도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오히려 순백색 팔과 고개짓을 할 때마다 살랑거리는 그녀의 금발에 매료되어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고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낭송을 끝마쳤을 때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크게 박수를 쳐대고 
이번에는 내가 라셸은 진짜 창녀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날 밤 나는 온통 순백색과 황금빛만이 출렁대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시를 쓰려고 탁자 앞에 앉으려고 하는데 
그 황홀한 팔이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유혹하는 통에 시를 쓸 수 없었다. 
외출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 포기하고 자끄 형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는 이층 부인 이르마 보렐에 대한 얘기로 채워졌다.
아, 자끄 형! 이르마 보렐은 굉장한 여자야! 
그녀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그녀는 소나타도 작곡하고 그림도 그려. 
벽난로 위에는 테라코타로 만든 산비둘기가 있어. 
자기 작품이래. 석 달 전부터는 연극을 하고 있는데 그 유명한 라셸, 
라셸은 정말 창녀처럼 보이는데, 라셸보다 훨씬 잘해. 
정말이지 형은 꿈 속에서라도 그런 여자를 보지 못했을 거야. 
그녀는 안 본 게 없고, 또 가보지 않은 곳도 없어. 갑자기 그녀는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내가 쌩 페테르스부르그에 있었을 때엔...' 
그랬다간 또 '나폴리보다 리오의 항구가 더 좋지'하고 말하는 거야. 
마르케이자스 군도에서 데려온 앵무새도 있고, 흑인 하녀는 프랭스 항구를 지나다가 만나게 되었데. 
형도 잘 알지? 왜 그 꾸꾸블랑 말이야. 좀 사나와 보이긴 해도 
꾸꾸블랑은 조용하고, 얌전하고, 성실해. 아주 훌륭한 여자야. 
돈키호테의 그 사람좋은 산초처럼 속담을 섞어 가며 말을 하는 게 버릇인가 본데, 
평소엔 말수도 적어서 거의 말을 안하지. 
그런데 사람들이 이르마 보렐에 대해서 알아 보려고 유도질문을 하거나 하면, 
가령 그 여자가 결혼을 했는지, 어디엔가 보렐이라는 남편이 있는 것인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진짜 그 여자가 그렇게 부자인지를 물어 볼라치면 
꾸꾸블랑은 특유의 은어로 이렇게 대답하지. 
'염소가 하는 일을 양이 알 리가 없지'라든가 
'양말에 구멍이 났는지를 알아 보려면 구두를 벗겨 봐야 한다'라고 말이야. 
그녀는 이런 속담들을 백여 개도 넘게 알고 있어서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녀를 당할 수는 없어...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르마 보렐의 집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알아?... 
글쎄, 바가바를 만났지 뭐야? 그치는 그 부인한테 굉장히 빠져 있는 것 같았어. 
그는 그녀를 콘돌 독수리나 백련, 물소에 비교하는 아름다운 시를 지어 바치지. 
하지만 그녀는 그런 류의 찬양 따위엔 신경도 쓰지 않아. 
게다가 그녀는 그런 아부에는 아주 익숙해져 있거든. 그녀 집에 드나드는 예술가들은, 
아주 유명한 사람들도 있는데, 모두 그녀를 사랑하고 있어.
그녀는 아름다와. 뭔가 아주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 
나는 내 마음이 벌써 그녀에게 사로잡힌 것 같아서 겁이 나.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검은 눈동자의 그녀가 나를 지켜 주고는 있지만 말이야. 
그 사랑스러운 검은 눈동자! 
오늘 저녁은 그녀를 만나서 형 이야기를 해야겠어. 자끄 형!
내가 편지를 다 써갈 무렵 누군가가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이르마 보렐이 꾸꾸블랑을 시켜 그 창녀의 연극을 보러 
떼아뜨르 프랑세 극장에 가자고 초대를 해온 것이다. 
나는 그 초대를 기꺼이 승낙하고 싶었는데 입고 갈 옷이 마땅치 않아서 초대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끄 형이 옷 한 벌쯤은 사주었어야 했어... 그건 꼭 필요한 거란 말이야... 
내가 쓴 시가 신문에라도 소개되면 기자들한테 고맙다는 인사도 하러 가야 하고 말이야. 
옷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나는 아주 기분을 잡쳐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