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69 - 알퐁스 도데
회한으로 얼룩진 편지 3.
아! 나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어. 수치심, 경멸감, 그리고 분노...
갖가지 감정이 뒤섞여 더이상 눈에 보이는 게 없었어.
그 여자에게 달려들어 편지를 빼앗았고 꼼짝 못하게 했지.
그 여잔 무서워하면서 뒤로 물러서서 비명을 지르더군,
무시무시하게 생긴 흑인 하녀가 옆방에서 비명소리를 듣고는 즉각 달려왔어.
옷도 입지 않아 그 검은 피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머리는 산발을 한 채 아주 흉악한 몰골로 말이야.
나는 그 흑인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
그 큰 손은 힘이 엄청나게 세서 나를 벽 쪽으로 밀어 붙이더니
나와 자기 주인 사이에 버티고 서는 거야.
그러자 이르마 보렐은 정신을 좀 차렸는지 훌쩍거리더군.
아니면 우는 척했는지도 몰라.
울면서도 계속 상자 속을 뒤졌으니까. 그러면서 울먹이는 소리로 주절댔지.
"저 사람이 왜 나를 때리려 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지?
왜냐하면 내가 자기의 귀족 아가씨가 사실은 귀족이 아니라
길가에서 접시나 파는 하찮은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 냈기 때문이야....
어머, 이것 좀 봐, 그 귀족 처녀라던 여자가 준 사랑의 정표가 겨우 이거라니...
머리카락 4개와 1쑤우짜리 제비꽃 한다발이라...
꾸꾸블랑, 그 촛대 좀 이리 가져와."
흑인 하녀가 촛대를 갖다 주니깐 글쎄, 그 여자가 머리칼과 꽃잎을 태워 버렸어.
그래도 난 저지할 수가 없었어.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거든.
비극 여배우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되지 못할 그 여자가 비단 종이를 펼쳐 보면서 말했어.
"아, 이건 뭐지? 이빨인가?... 아니야! 사탕 같아 보이는데... 맞아, 그래... 하트 모양의 사탕이야...."
맞아, 그건 언젠가 까미유가 쌩 제르멩 광장에 있는 가게에서 사준 것이었어.
자기의 마음을 준다는 뜻으로 말이야.
꾸꾸블랑이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지.
"갖고 싶은 게로구나, 꾸꾸! 자 받아라...."
그러면서 그 여자가 강아지에게 던져 주듯이 그걸 꾸꾸블랑의 입안에 던져 넣었지 뭐야?
탐욕스럽게 보이는 그 흑인 여자가 사탕을 깨무는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가 떨렸지.
이빨까지도 검어 보이는 저 괴물이 그토록 즐겁게 깨물어 먹는 사탕은 바로
까미유의 순수한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소중하게 아껴왔던 건데...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
자끄 형, 형은 그걸로 우리들 사이가 완전히 끝장났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아! 나도 몰라... 내가 왜 그러는지... 그 일이 있은 다음날도 여자가
꼽추선생과 에르미온느 역을 연습하고 있을 때 그 여자 방의 한쪽 구석에서
여전히 긴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앵무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젊은 터키인, 다니당이 있었거든...
자끄 형! 형은 정말 묻고 싶겠지?
그런 엄청난 굴욕을 참아 내면서까지 알아 내고자 했던 그 불가사의,
매일 아침 8시에서 10시 사이에 그 여자가 어딜 가는지 난 그걸 알아 냈어.
하지만 오늘 아침, 그 무시무시한 일이 있은 다음에 말이야,
이것이 마지막 사건이 되겠지만... 그래,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할께...
아 쉿!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 만약에 그 여자라면, 또다시 날 달달 볶으려고 오는 거라면?...
오늘 아침처럼 그렇게 무시무시한 일이 있은 다음에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낯 두꺼운 여자니까...
잠깐!... 문을 잠가야겠어 단단히.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어.
자정
그 여잔 아니었어. 꾸꾸블랑이었어.
내가 이렇게 놀라다니. 바보같이... 아직도 마차는 돌아오지 않았는데 말이야.
꾸꾸블랑이 자기 방으로 돌아온 거였어.
'톨로꼬또티강! 톨로꼬또티그낭!'이라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려 와.
이제 잠든 모양이군. 코를 고는데....
그럼 우리의 슬픈 사랑이 어떻게 끝났는지 얘기해 줄께.
한 3주쯤 전에 꼽추가 그 여자에게 아주 원숙해졌다면서
비극을 하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
그래서 자기의 제자들과 함께 연극을 출연시켜 주겠다고 했어.
그러자 그 여잔 뛸 듯이 기뻐했지...
극장을 빌릴 수 있는 여건이 안되기 때문에 그 집에 드나드는 작자들 중 한 명의 작업장을
극장으로 개조하고 파리의 모든 극장 지배인들에게 초대장을 보내기로 했지...
데뷔작은 논란 끝에 '아딸리'로 하기로 결정을 봤어...
여러 레퍼토리 중에서 그 꼽추의 제자들과 호흡을 맞추려면 같이 모여서 연습해야만 했지.
이르마 보렐은 그들에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직접 나다니게 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부인이었으므로 연습은 그 집에서 하기로 했지.
매일 꼽추선생은 제자들을 데리고 왔지.
비쩍 마르고 점잔을 빼는 너댓 명의 처녀들은 13프랑짜리 케시미어 쇼올을 목에 두르고 있었고,
검게 물들인 종이 옷을 입고 피난민처럼 보이는 작은 악마 같은 서너 명의 남자아이들도 있었어.
연습은 하루종일 계속되었어. 아침 8시에서 10시 사이는 제외하고 말이야,
그 바쁜 연습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그 불가사의한 외출은 중단되지 않았어.
어쨌든 이르마, 꼽추선생, 그리고 제자들, 모두가 광적으로 연습했지.
앵무새 먹이 주는 것을 이틀 동안이나 잊어버렸을 정도니까 말이야.
그들은 내게도 더이상 신경쓰지 않았어... 간단히 말해 모든 게 잘 되어 나갔지.
작업장을 단장해서 극장이 만들어졌고 의상도 준비되었고, 초대장도 모두 발송되었지.
공연을 삼사 일 정도 남겨 두고 있을 때 꼽추의 조카로 어린 엘리아쌩 역을 맡은
열 살쯤 먹은 계집아이가 병에 걸렸어... 그래서... 그래서 말이야,
삼사 일 만에 그 역을 소화할 능력이 있는 어린애를 어떻게 찾아냈느냐 하며 말이야,
실로 경악할 노릇이지만, 글쎄... 갑자기 이르마 보렐이 내 쪽을 보는 것이었어.
"다니당, 당신이 그 역을 맡을래요?"
"내가요? 농담 마세요... 내 나이에!"
"당신들 어른이라고는 안할 거예요. 이것 봐요.
당신은 열다섯 살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구요.
의상을 입고 분장을 해서 무대에 서면 열 두살 정도로 밖에는 안 보일 거예요...
게다가 그 역은 당신 얼굴의 특징하고 잘 맞는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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