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71 - 알퐁스 도데
회한으로 얼룩진 편지 5
드디어 그 여잔 자제력을 잃기 시작했어.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말하더군.
"그럼, 당신은 내가 매일 8시에서 10시 사이에 늘 거기에 그렇게 가고
모든 게 하나도 변함없이 예전과 똑같기를 바라는 건가요?"
그 말에 나는 좀 수그러져서 대답했어.
"난 그 어느것도 바라지 않아요.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스스로 돈을 벌게 되기를...
8시에서 10시 사이에 이루어지는 그 신사의 관용에 더이상 매달리지 않는 것이
당신에겐 더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죠... 다시 말하지만 난 단지 연극에 대해선
눈꼽만큼도 사명감 같은 걸 느끼고 있지 못할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배우가 되지 않을 겁니다."
이 말에 그 여잔 폭발하고 말았어.
"아! 그래 넌 배우가 되고 싶지 않다, 이거지... 그럼 대체 뭐가 될 거야?
설마 네가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시인이라고 생각하다니!...
네겐 시인이 될 소질이 전혀 없어. 가엾은 미치광이!...
당신이 그 잘난 시집, 어느 누구도 사보고 싶어하지 않는 시집을 찍어냈기에 하는 소리야.
당신은 자신이 시인이라고 믿고 있겠지... 멍청하군.
불행하게도 네 시집은 엉망이야. 모두들 그렇게 얘기하고 있어...
두 달 동안 그 책은 딱 한 권이 팔렸을 뿐이야. 그 한 권의 책마저도 바로 내가 사주었단 말이야...
자, 시인.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그런 어리석은 사실을 믿고 있는 건 네 형밖에 없다구...
그치 역시 천진난만한 가엾은 멍청이지!...
너한테 그 잘난 아름다운 편지를 써보내는 그치 말이야...
그 귀스따브 쁠랑쉬의 기사는 우스워 죽을 지경이라구...
그걸 기대하면서 네 형은 널 먹여 살리느라 기진맥진해 있구 말이야.
그런데 넌, 그동안 넌... 넌... 과연 넌 뭘 했지? 그걸 알고 있어? 네 얼굴이 좀 독특하다는 것,
넌 그걸로 만족해야 해. 넌 그 따위 터키 옷차림이나 하고 모든 게 다 잘 되어 간다고 생각했겠지!...
얼마 전부터는 네 얼굴의 그 독특함마저도 사라져 가고 있다는 걸 알려 줘야만 하나?
넌 추해, 정말로 추하다구. 자, 네 모습을 한번 똑바로 보라구...
네가 그 삐에로뜨인지 뭔지 하는 여자에게로 돌아간다 해도 널 받아들이지 않을 걸...
하기야 너희 둘은 서로 잘 맞아... 너희 둘 다 쏘몽 가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도자기나 팔 운명을 타고 났다구.
배우가 되는 것보다 장사를 하는 게 너한테는 더 잘 어울린단 말이야!"
그 여잔 입에 거품을 물고 숨을 몰아쉬었어.
형은 아마 그런 미치광이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거야.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넋을 잃고 그 여잘 쳐다보기만 했어.
그 여자가 말을 끝내자 난 그 여자에게로 다가갔어. 난 온몸이 떨렸어. 그리고 조용히 말했지.
"난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 난 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 보였어.
"나가 달라 이건가?"
그 여잔 여전히 히죽거리며 말했어.
"난 아직 당신한테 할 얘기가 많은데...."
이번에야말로 그 여자에 대한 애착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었어.
모든 피가 얼굴로 확 솟구치는 것 같더라구.
벽난로에서 장작 받침쇠 하나를 집어들고 그 여잘 향해 달려갔지...
그 여잔 도망쳤어... 형, 그 순간 나는 파셰코라는 스페인 남자를 이해할 수 있었어.
나는 모자를 집어들고 계단을 뛰어내려 그 집을 나와 버렸어.
하루종일 술취한 사람처럼 사방팔방을 헤매고 다녔지...
형이 그때 있었더라면... 일순 삐에로뜨 씨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검은 눈동자의 그녀, 그녀의 발아래 엎드려 용서를 빌고 싶었어.
나는 그녀의 가게 문 앞까지 갔지만 감히 들어갈 수는 없었어...
두 달 동안이나 그녀 집에 가지 않았단 말이야.
그녀는 내게 편지를 썼지만 난 답장도 안했었어. 날 찾아오면 숨어 버렸었거든.
어떻게 그녀가 날 용서해 줄 수 있을까?...
삐에로뜨 양은 카운터 앞에 앉아 있었다. 슬퍼 보이더군...
나는 유리창에 기대어 선 채 그녀를 바라보다가 울면서 그 자리를 떠나왔어.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지.
창가에서 한참 동안을 울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형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거야.
이 밤을 꼬박 새워 내내 형에게 편지를 쓸 거야.
형이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리고 그렇게 느껴지니까 무척 안심이 돼.
그 괴물 같은 여자! 어쩌면 그 여잔 나를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형은 이해할 수 있어? 나를 근교의 극장에서 연극이나 하게 하려고 했단 말이야!...
형! 뭐라고 말 좀 해줘. 나는 이제 지쳤어. 너무 고통스러워...
그녀는 충분히 나를 괴롭혔어. 아! 이젠 더이상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겠어.
나 자신에 대해 회의가 들고 ... 나도 내가 무서워. 뭘 해야 하지?... 공부?... 그래!
그 여자가 옳아. 나는 시인이 아니고 내 시집을 팔리지도 않아...
이런 보잘것 없는 나를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형은 또 얼마나 오래 고생해야 하지?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 돼 버렸어. 뭐가 뭔지 모르겠어. 창 밖은 캄캄하고...
세상에는 숙명을 타고난 이름이 있어. 그 여자의 이름은 이르마 보렐.
보렐은 사형집행인을 의미하는 단어지. 사형집행인 이르마!...
그 여자에게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야!... 이사를 하고 싶어. 이제 이 방은 지긋지긋해...
계단에서 그 여자와 마주칠 수도 있잖아... 침착해야지.
그 여자가 올라오기만 하면... 하지만 그 여자는 오지 않을 거야...
그 여잔 나를 잊어버리겠지. 그 여자에겐 자기를 위로해 줄 예술가들도 있으니까....
아니, 세상에! 저게 무슨 소리지?
자끄 형! 그 여자야! 그 여자가 오고 있어. 여기로 오고 있다구.
그 여자의 발자국소리야. 그 여자가 아주 가까이 있어. 그 여자의 숨소리도 들리는 걸...
열쇠 구멍에 눈을 갖다 대고 날 쳐다보고 있어. 날 태워 버리려고 말이야. 날....
그러나 결국 난 이 편지를 부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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