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73 - 알퐁스 도데
몽빠르나스의 어릿광대 2.
"사람들은 당신 얼굴에서 나오는 독특한 연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녀는 종종 그렇게 말하며 나를 위로하곤 했다.
지배인은 내 독특한 얼굴을 잘 알아 보았다.
두 번의 공연이 휘파람과 야유가 뒤범벅되어 소란스레 끝난 후에
지배인은 나를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이것 봐, 멜로드라마는 자네에겐 맞지 않는 것 같아.
자넨 지금 길을 잘못 들어선 거야. 통속 희극을 한번 해보도록 하지.
자넨 통속 희극을 하면 아주 어울릴 것 같네."
그래서 나는 다음날부터 통속 희극 배우가 되었다.
나는 우스꽝스러운 젊은이 역이나,
사람들이 샴페인 대신에 로제 레몬수를 마시게 하면
배를 움켜쥐고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얼빠진 선멋장이 역,
붉은색 가발을 쓰고 마치 황소처럼 울어 대는 바보 역,
"아그씨, 증말로 좋아하는구만유!... 증말유. 무지무지하게 좋아한다닝께유"하고
말하면서 눈을 껌벅거리는 사랑에 빠진 시골뜨기 청년 역 같은 것을 했다.
못생긴 바보라든가 겁장이의 역을 맡아 무대 위를 누비고 다니면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어 댔다.
사실 나 자신은 내가 아주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불행히도 나는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결코 원하지 않았는데 결국 내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던 것이다.
내가 얼굴에 회반죽을 바르고 주름살을 그려 넣고 번쩍거리는 싸구려 장식품을 단 채
무대에 설 때마다 나는 자끄 형과 검은 눈동자의 그녀를 생각했다.
인상을 쓰거나 익살을 부리는 도중에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비겁하게도 배반해 버린 보고 싶은 그들의 모습이 돌연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어느날 저녁 우스갯소리로 장광설을 늘어놓아야 했을 때에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처럼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입을 헤 벌리고 서서 관객들을 휘둘러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내 영혼은 육신을 빠져나와 무대를 박차고 날개짓을 하며
극장의 천장을 뚫고 나가 자끄 형과 어머니를 만나러 갔었다.
또한 검은 눈동자의 그녀에게 용서를 빌러 멀리멀리 날아가곤 했다.
"오매, 증말유! 무지무지하게 좋아하는구만유."
갑자기 대사를 읽어 주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왔고,
난 환상에서 깨어나, 하늘에서 떨어져 버린 듯한 비참한 표정으로 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 표정엔 너무도 자연스럽고 너무도 우스꽝스러운 불안이 담겨 있어 온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연극 용어로 말하면 극적 효과라고 하는 것이었다.
일부러 원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우연히 그런 극적 효과를 창조해 낸 것이었다.
우리가 속해 있던 극단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연극 공연을 했다.
유랑 극단처럼 그르넬, 몽빠르나스, 세브로, 쏘, 쌩끌루 등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공연했다.
다른 지방으로 갈 때면 극단 합승마차에 빼곡히 끼어 앉아 이동하곤 했다.
그 마차는 폐결핵에 걸린 말이 끄는 밀크커피 배달 마차처럼 낡아 빠져 삐끄덕댔다.
단원들은 마차 속에서 노래도 부르고 카드놀이를 하기도 했다.
아무 역도 못 맡고 극단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은 마차 안쪽에 자리를 잡고는 구겨진 팜플랫을 다렸다.
나는 그들과 함께 앉아 그 일을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동료단원들이 내뱉는 유치한 얘기들에는 귀를 막은 채
그들 틈에 끼어 나는 말없이 슬픈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비록 비천한 상황에 이르렀다고는 해도
저속한 욕을 내뱉는 따위의 서투른 연기는 내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내가 그런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에 수치심을 느꼈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자존심으로 꽉 찬 데다가
광대뼈가 툭 불거진 초췌한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해서 부자연스러웠으며
지껄이는 말 속엔 허풍과 거짓말이 흘러넘쳤다.
미래에 대한 이상도 없고, 철자법도 모르는 무식한 남자단원들은
흔히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미용사나 망한 장사꾼의 후손들로 심심풀이로 또는 일하기 싫고 게을러
극단에 뛰어들었거나 아니면 화려한 무대 의상이나 나비 넥타이가 좋아서 배우가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연한 색깔의 수와로프 풍의 외투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무대에 드러내기 위해서 배우가 된 사람들이며, 여자 건드리기 좋아하고,
언제나 옷매무시에 노심초사하며 한달치 봉급을 머리 손질하는 데 날려 버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다섯 시간 동안 내내 기름먹인 종이로 연극에 사용할 루이 15세 장화 한 켤레를 만들면서도
"오늘은 참 일을 많이 했는데"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런 합승마차에서 초라한 꼬락서니로 있으려고 음악이 흐르는 삐에로뜨 씨의 응접실을 비웃었던가....
다락방에 처박힌 학생 같은 내 분위기와
침묵을 지키는 도도해 보이는 자만심을 동료단원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저놈은 엉큼한 놈이야."
나는 바보 취급을 당했지만 그녀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그녀는 합승마차에 마치 공주처럼 뻐기고 앉아 고르고 흰 예쁜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으며,
섬세한 목덜미를 드러내 보이기 위해 머리를 뒤로 젖히기도 했고, 모든 사람들과 말을 놓고 지냈다.
그녀는 남자들은 모두 '늙은이들'이라고 불렀으며 여자들은 '내 귀염둥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심술궂은 사람들마저도 자기를 '참 좋은 아가씨'라고 부르게 만들 줄 아는 여자였다.
좋은 아가씨라니, 그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렇게 웃고, 유치한 농담을 열심히 지껄이면서 마차는 굴러굴러 공연할 다음 장소에 도착했고
공연이 끝나 익숙한 솜씨로 의상을 벗고는 다시 마차에 올라 파리로 돌아올 땐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컴컴한 마차 속에서 무릎을 맞대고 앉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리 죽여 웃기도 했다.
맨느 근교의 세관에 마차를 넣어 두기 위해 멈추면 모두들 마차에서 뛰어내려
떼지어 이르마 보렐을 호위해서는 집 앞까지 바래다 주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꾸꾸블랑이 술취해 널부러져 우리를 기다렸다.
'톨로꼬또티강! 톨로꼬또티그낭!'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말이다.
언제나 붙어다니는 우리를 보고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린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우린 서로 사랑하기에는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냉혹하고 인정머리 없는 거짓말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녀는 내가 나약하고 비겁할 정도로 우유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늘 불안해 했다.
'어느 개인 아침, 그의 형이 찾아와 내게서 그를 빼앗아 도자기 파는 여자에게 데려갈 거야.'
나 또한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초조해 했다.
'이러다가 자신의 인생에 싫증이 나면 8시에서 10시에 만나던 그 신사에게 날아가 버리겠지.
그러면 나는 이 구렁텅이에 혼자 남게 될 거고....'
서로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 끊임없는 불안이 우리들 사랑을 가로막는 가장 확실한 공통분모였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질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은 곳에 질투가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녀가 극단에서 일하는 누군가와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모습만 봐도 내 안색은 창백해졌다.
내가 편지라도 한 통 받을라치면 그녀는 고꾸라지듯 달려와
떨리는 손으로 채가서는 겉봉을 뜯어보곤 했다.
편지는 대부분 자끄 형에게 왔다.
그녀는 히죽거리면서 그 편지를 끝까지 읽었고 그러고 나선 아무데나 휙 내던져 버렸다.
"항상 똑같은 이야기로군."
그녀는 경멸하는 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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