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74 - 알퐁스 도데
몽빠르나스의 어릿광대 3.
그렇다! 언제나 자끄 형은 변함없는 친절과 관용 희생으로 가득찬 편지를 보내왔다.
그녀가 그토록 자끄 형을 미워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착한 자끄 형은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이 다 잘 되어 가며 '전원시'도 4분의 3쯤 팔렸고
어음기간이 만기가 되면 결제할 만한 돈은 서점에서 수금 할 수 있을 거라고 답장을 썼다.
남을 잘 믿는 사람좋은 형은 매달 보나파르뜨 가로
백 프랑씩 꼬박꼬박 돈을 부쳐 왔으며 꾸꾸블랑이 그 돈을 찾아왔다.
자끄 형이 부쳐 오는 백 프랑과 극장에서 받는 봉급은 우리가 살아 갈 수 있을 충분한 돈이었다.
그 돈은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꼬방동네 같은 그 아파트에선 쓰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나 나나 돈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번도 돈이란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었고,
그녀는 언제나 너무 많은 돈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우리의 낭비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매달 5일이 되면 금고로 사용하는 옥수수 짚으로 만든 자바 풍의 작은 슬리퍼는 텅 비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장정 한 사람이 먹는 분량을 먹어대는 앵무새를 먹여살려야 했고
갖가지 색의 분이며 화장품, 화장분, 치약, 토끼풀 등 연극 분장에 필요한 도구 일체를 사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연극 선전 팜플렛이 너무 빛이 바래고 낡았다며 새 팜플렛을 만들고 싶어했다.
또한 그녀는 차라리 안 먹는 한이 있어도 꽃병에 꽃을 늘 풍성하게 꽂아 두어야 직성이 풀렸다.
두 달 만에 우리는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다.
우리는 집 주인에게도 빚을 졌고, 식당주인에게도, 극장의 수위에게도 돈을 빌렸다.
때때로 외상으로 물건을 대어 주는 사람이 기다리는 데 지쳐서
꼭두새벽부터 찾아와 외상값 갚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 '전원시'를 출간해 준 출판업자에게 달려가
형 이름을 대고는 통사정을 해서 몇 루이를 겨우 꾸어 오곤 했다.
그 유명한 회고록 제 2권을 손에 들고 출판업자는 자끄 형이
여전히 다끄빌 후작의 비서로 있는지 물어 보고는 별 의심 없이 돈을 빌려 주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빌린 것이 어느새 4백 프랑이 됐고,
'전원시'를 출판할 때 빌린 9백 프랑의 빚까지 합하면
형 이름으로 빌린 돈이 총 천 삼백 프랑이나 되었다.
불쌍한 자끄 형이 돌아오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끔찍하고 엄청난 일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나는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고, 검은 눈동자의 그녀는 밤낮을 눈물로 지새우고 있고,
시집은 한 권도 팔리지 않았고, 갚아야 할 빚은 천삼백 프랑이나 되니 말이다.
이렇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내가 그러한 걱정으로 짓눌려 있어도
이르마 보렐은 걱정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고 늘 태평했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나는 그 걱정들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강박관념으로 머리속에 박혀 한시도 떠나지 않고 날 괴롭혔다.
걱정거리를 조금이라도 잊어버리려고 도형수처럼 일에 몰두해 보기도 하고,
새로운 익살을 연습하기도 했으며,
거울 앞에서 참신한 표정을 연구해 보려고 별짓을 다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거울을 보면 거기엔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불쌍한 자끄 형의 모습만이 어른거렸다.
내가 해야 할 역할들인 랑글뤼모나 조시아스,
또다른 통속 희극의 인물 모습 대신에 자끄 형의 얼굴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나는 겁에 질려 달력을 쳐다보며 어음만기일을 계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제 한 달밖에 안 남았어, 이제 3주일밖에 남지 않았군!"
어음만기일이 되면 모든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고 바로 그날로
형은 희생양이 되어야 할 것임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강박관념은 잠자리에서까지 나를 괴롭혔다.
때때로 나는 심장이 방망이질치고 눈물과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끔찍하고 기이한 꿈에서 깨어나곤 했다.
매일 밤 되풀이되는 똑같은 악몽에 시달렸다.
덩굴 모양의 낡은 편지가 박힌 큰 장농이 놓여진 어딘지 알 수 없는 방안에서
자끄 형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창백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는 조금 전에 숨을 거두었다.
까미유 역시 그 방안에 있었는데 장농 앞에 서서 수의를 꺼내려고 장농문을 붙잡은 채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장농을 열지 못했다.
열쇠를 자물통에 맞추려고 애쓰며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심장을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
"문을 열 수가 없어서... 너무 울어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무슨 수를 써서든 꿈을 꾸지 않으려고 해보았지만 그 꿈은 이성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눈을 감는 순간부터 눈앞에는 소파에 드러누운 자끄 형의 모습과
장농 앞에 서 있는 장님이 된 까미유의 모습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 모든 회한과 공포가 나를 하루하루 더욱 침울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르마 보렐 역시 참을성이 없어져 갔다.
더우기 그녀는 내가 어디로 도망치는 지는 모르지만
자기의 품안에서 빠져나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고 그것이 그녀를 짜증나게 했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끊임없이 끔찍한 장면들이 연극처럼 연출되었다.
고함소리와 욕지거리로 가득 찬 방안은 마치 요란한 세탁통 속 같았다.
"네 그 도자기 파는 삐에로뜨에게나 가버려. 그래서 하트 모양의 사탕이나 달라고 그러지 그래!"
그녀는 이런 식의 말들을 고래고래 질러 댔고 그러면 나 또한 질새라 외쳤다.
"파셰코한테나 가 보지 그래, 가서 입술이나 찢어달라고 그래!"
막판에 이르면 그녀는 내게 '속물'이라고 욕했고
나는 그녀를 '거지 같은 년'이라고 욕설을 퍼부어 댔다.
한참을 그렇게 아귀다툼을 벌이고 나선 둘다 주루룩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관대히 용서해 주고 다음날을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아니, 그런 식으로 함께 썩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철판에 꼼짝 못하게 고정된 것처럼, 같은 배를 탄 사람들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채....
꾸꾸블랑이 흥얼대던 그 기이하고 우수에 젖은 후렴
'톨로꼬또티강! 톨로꼬또티그낭!'을 읊조리다 보면 어느새 내 눈앞에는
그 진흙투성이의 삶, 그 비참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톨로꼬또티강! 톨로꼬또티그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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