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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 할 기독교 핵심진리 20

Joyfule 2024. 7. 15. 14:28

 



 꼭 알아야 할 기독교 핵심진리 20

 

16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에게 육체적 죽음은 성화의 일부를 완성시킵니다. 임종할 때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즉시 완전해져서 하나님이 계신 속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야만 그리스도인의 몸과 영혼은 모두 충만한 완성을 경험합니다. 그 때에 비로소 몸까지도 부활하여 완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 임종과 재림의 때와 임종에서 재림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Ⅰ. 그리스도인은 왜 죽는가?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형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롬 8:1) 그리스도인의 죄에 대한 모든 형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로 신자가 즉시 구원의 모든 혜택으로 경험하는 것은 최선이 아니라고 판단하셨습니다. 예컨대 그리스도인도 죄를 짓고 병도 나며 자연 재해를 겪기도 하고, 악하고 불의한 행동에 희생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죽습니다. 바르지 못한 세상, 죄의 저주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에 사망을 이기셨지만, 사망은 아직 이 타락한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죄의 마지막 결과로 두셨습니다.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5-26)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화를 완성시키기 위해 죽음의 경험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 닮게 만드시는 수단으로 육체적인 죽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생활에서 고난과 고통을 사용하여 신자의 성화에 도움을 주시는 일은 일반적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고통과 고난은 하나님이 자녀들을 징계하시는 데서 비롯된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비록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鍊達)하는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 12:6-11)

 

징계는 우리의 잘못을 바로 잡는 역할과 우리를 강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징계는 우리의 성화의 한 수단입니다. 예수님도 죄는 없으셨지만 고난을 통하여 온전케 되셨습니다.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8)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히 2:10) 되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대속의 고난으로 온전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일생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힘은 점점 더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에서 위안거리만을 주시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화를 완성하시기 위해서 죽음을 통해 경험시키십니다. 그래서 신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순종하고, 신실한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죽음은 자연적인 것에 그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죽음으로 이루시는 우리의 성화의 한 단계인 것입니다.

 

Ⅱ.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면 자신의 죽음을 두려움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죽으셨습니다.(히 2:15) 따라서 신자가 죽은 후에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는 사실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쁨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 1:23)

 

신자라면 우리는 죽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더 분명하게 알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확실히 믿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한번 죽으면 그의 영혼은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지내기 때문에 죽은 신자를 위해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카톨릭 교회에서는 신자가 연옥에 가며, 연옥에서 벗어나려면 지상의 신자들이 기도하여 이룬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비성경적 견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에 우리가 느끼는 슬픔은 영원히 절망적인 슬픔이 아닙니다. 신자는 이 땅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말라고 말입니다.(살전 4:13) 물론 떠나보내면 슬픔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믿음의 선조들도 그의 가족이 이 땅을 떠나 이별하는 과정에서 모두 슬퍼했습니다. 신자의 죽음은 슬프지만 결코 영원히 절망스러운 슬픔은 아닙니다.

 

Ⅲ. 불신자가 죽었을 때

 

그리스도를 거부한 사람들은 죽을 때에 그 영혼이 즉시 영원한 형벌의 장소에 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그리스도가 재림 할 때까지 땅 속에 남아 있다가 그 때가 되면 마지막 심판의 날을 위해 영혼과 재결합할 것입니다.(마 25:31-46, 요 5:28-29) 하지만 사람이 한 번 죽으면 영원히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 16:24-26)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거부한 사람이 죽었을 때 느껴지는 슬픔은 소망 섞인 슬픔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끝까지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세상을 떠났는지 우리가 구별하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임종의 시기에 접어들어서 참된 구도자의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떤 상황을 함부로 판단하기란 참 곤란합니다. 그러나 불신자가 죽은 후에 천국에 갔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단지 그 불신자의 죽음을 두고 그 사람의 생전에 보였던 미덕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를 표현하는 편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의 죽음을 두고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왕하

 

Ⅳ. 그리스도인은 언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하는가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에 몸은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영혼은 하나님 곁으로 즉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롬8:23-24) 그 날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날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롬8:17) 이미 세상을 떠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은 구속의 적용에 있어서 마지막 순서일 것입니다. 그 날에 새롭고 완벽한 몸은 영혼과 재결합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런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 첫 사람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신자들도 그와 같이 부활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고전 15:22-23)

 

그 때에 신자들이 살아 있다면 그들은 불완전한 몸이 순식간에 완전한 몸으로 변할 것입니다.(고전 15:51-52)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는 구주께서 입으신 몸과 똑같은 새로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영화’라고 합니다. 우리 몸이 새로운 하늘의 영광을 덧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몸은 “썩지 아니할 것”(고전 15:52)입니다. 새 몸은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신 몸과 같이 우리가 이 땅에서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몸보다도 아름답고 매력적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이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조해 주신 모든 탁월한 특징을 다 가진 몸으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 몸은 영원토록 우주, 즉 하나님이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말씀하신 그 우주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지혜의 산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문. 그리스도인은 왜 죽습니까?

이 사실은 언젠가 닥칠 여러분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2문. 그리스도인은 죽을 때 몸과 영혼에 각각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 사실에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듭니까? 그렇게 느낀 이유는 무엇입니까?

3문.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인의 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여러분은 특별히 부활한 몸에 있어서 어떤 측면이 기대가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