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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독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Joyfule 2018. 8. 12. 00:47



 
     나는 지독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아시다시피, 필자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고 있다. 영성학교를 연지 3년 반이 훌쩍 넘었고, 천여 명의 사람들이 이 기도훈련에 관심을 갖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기도훈련을 지속한 사람들은 그중 4분의 1정도도 되지 않는다. 지금도 그 길을 가는 사람들도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기 에는 아직도 2% 부족한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게 필자가 마주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후보자들은 맞지만, 야심차게 시작하였지만 뒷심이 달려서 지지부진한 상태로 있는 셈이다. 물론 필자와 코치진들은 목이 쉬도록 독려하며 힘을 불어넣고 있지만, 정작 기도는 본인이 해야 할 몫이다. 어쨌든 영성학교가 주말이면 사람들이 미어터져서 잠자리는 물론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번 주에 어떤 형제는 근처 모텔을 찾았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방이 없어서 차에서 밤을 샜다면서 충혈 된 눈을 보여주었다. 충주의 한적한 시골에 영성학교를 연지 3년 만에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상만 가지고는 나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으나, 성령의 사람이 우후죽순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우리 코치진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수한 자질을 가진 훈련생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지 아니한가? 그래서 성경에 드러난 성령의 사람들이 어떤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었는가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1.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은, 말할 것도 없이 으뜸으로 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조차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으니 신앙의 풍토는 척박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야말로 지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이삿짐을 싸고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에 단박에 순종하고 있다. 당시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는 국가의 치안이 형편없던 시대였다. 그래서 혈연지연으로 뭉친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쳐 생명과 재산을 보호했던 시대였다. 그런데 홀홀 단신으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한 위험한 처사였다. 그의 무모함(?)을 보여주는 장면은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로 던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그의 반응이다.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백세에 기적적으로 낳은 외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시행하는 그의 무지막지함에 살이 떨리고 있다. 하나님은 지독함의 수준을 믿음의 수준이라고 판단하시는 듯하다.

 

2. 야곱

 

야곱은 태생적으로 교활하고 잔꾀를 부리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형 에서를 교묘하게 꾀어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얻어낼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형의 분노를 피해 삼촌 라반의 집에 도망치다 시피 갔으나, 외삼촌에게 속아서 21년 동안 노예처럼 부림을 당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거부가 되어서 대가족을 거느리고 금의환향하는 것까지 좋았지만, 또 다시 형 에서가 군사를 거느리고 자신을 죽이러온다는 비보는 듣게 된다. 그로인해 그의 지독함을 보여주는 사건이 펼쳐진다. 천사와 싸워 이겼다는 칭호를 얻은 유일한 인물로 성경에 등극하였으니 말이다. 오죽했으면 천사가 그의 환도뼈를 부러뜨리며 화풀이(?)를 할 정도였다. 이렇게 그는 지독함을 보여주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이다.

 

3. 요셉

 

요셉은 성경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죽음을 앞둔 죄수의 몸으로, 일약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의 국무총리 자리를 꿰찼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의 과거를 살펴보자. 그는 형제들의 질투로 겨우 죽임을 면하고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다. 노예로서 주인의 신임을 받은 것도 잠시, 여주인의 수청을 거절하여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고대사회의 지하 감옥은 대부분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십여 년의 세월을 전혀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면서 지냈다. 그 정도의 신세라면 낙심하고 신세를 한탄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지독함이 무엇인지를 한눈에 보여주었다.

 

4.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12제자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선택하는 장면은 기이하기조차 하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한명씩 부르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는 갈릴리의 어부였다. 그래서 호숫가에서 찢어진 그물을 깁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따라오라는 한 마디에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처럼 무작정 따라나선다. 베드로는 결혼하여 아내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이렇게 패역무도한 가장이 어디 있는가?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잣대로 보면 이런 몰상식하고 황당한 인간(?)을 제자로 두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로 선택한 이들은, 죄다 무모하리만큼 지독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이 그들의 처지라면 그렇게 하겠는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자격은 학식이나 신분, 집안 배경이나 똑똑한 지의 여부를 보시지 않는다. 다만 예수님의 명령에 무식하고 지독하게 순종하는 태도만을 보시고 계신다. 성경은 죽도록 충성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이렇게 가장 소중한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버릴 수 있는 지독한 사람을 찾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당신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에, 군소리 하나 없이 무식하고 지독하게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고 계신가? 그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기도훈련을 시작하였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지독에 2%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이 부족한 지독함을 채우시지 않으면 성령의 사람이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라. 그래서 필자는 영성학교에 앉아서 지독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