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44) 부부의 3대 의무-셋째 의무 (엡 5장 31-3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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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한 몸을 이루십시오 >
본문 31절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말씀은 육체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형이상학적인 플라토닉 사랑으로도 부부가 온전히 하나 될 수 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신적인 나눔만으로는 온전한 부부생활이 가능하지 않고 육체적인 연합도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육체가 되라!”고 실제적인 명령을 내리십니다.
기독교는 전인적 인간상을 추구하기에 ‘육체가 하나 됨’도 대단히 중시합니다. 그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행복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많은 이혼 사유는 ‘성격(性格) 차이’이지만 사실상 ‘성격 차이’보다 더 큰 이혼 사유는 성격에서 ‘격’자 하나를 뺀 ‘성(性) 차이’입니다.
사람은 모두 성격이 다릅니다. 성격 차이는 보완의 가능성이 있고, 그 성격 차이가 보완되면 부부생활이 더 풍성해집니다. 결국 이혼의 더 깊은 이유는 ‘성격 문제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라 ‘성 문제에 대한 불만’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허락한 결혼이란 범주 안에서 성적 즐거움을 누릴 권리와 당위성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4절에는 부부간의 성 윤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부부는 성 생활에서 자기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말고 배우자가 자기 몸을 주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즉 자신에게 필요가 느껴지지 않아도 상대방이 필요를 느끼면 그 필요를 채워주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필요나 욕구를 넘어선 배우자 중심의 성 생활은 아가페 사랑의 핵심 요소입니다. 부부는 서로의 성적 필요를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합법적인 대상입니다. 그 대상으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할 때 부부는 시선을 밖으로 돌리게 되고, 결국 부부관계가 어려워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몸을 이루라!”는 명령은 세속적이거나 부끄러운 명령이 아니라 거룩한 명령입니다.
< 하나님 중심적인 결혼생활 >
무엇보다 부부관계를 원만하게 하려면 하나님이 그 결혼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한 가정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어느 날, 잉꼬부부로 소문난 한 젊은 부부가 결혼 2년 만에 목회자를 찾아와 그들의 결혼생활이 위험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목회자가 이렇게 상담해주었습니다. “두 분이 잊고 있는 것이 있어요. 결혼을 지켜주는 것은 두 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이제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힘쓰세요.”
두 부부는 그때부터 ‘서로 마주보는 사랑’보다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랑’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때부터 서로의 약점이 점점 보이지 않으면서 곧 두 부부는 옛사랑을 회복했습니다. 처음에 서로만 바라볼 때는 둘 사이의 차이가 갈등으로 비화(飛火)되었지만 둘이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자 둘 사이의 차이가 잘 승화(昇華)되었습니다.
사람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열정적인 사랑마저 하나님이 지켜주어야 그 사랑이 유지됩니다. 부부가 진정으로 하나님 안에 있으면 자신 안에 숨겨둔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가 자신들의 약점을 감싸려고 세웠던 방어벽을 허물고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부부사이의 중심에 있을 때, 그 부부는 어떤 외부의 시련과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행복한 부부가 됩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