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26) 사랑의 낭비 (4장 13-1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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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숙을 위해 필요한 것 >
신앙성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첫째,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고 말합니다(13절). 또한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말합니다(15절). 즉 삶의 목표를 주님에 두고, 주님처럼 생각하고, 주님처럼 살고, 주님처럼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에는 “예수님 믿고 천국 간다.”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천국 삶을 산다.”는 더 중요한 목표가 있습니다.
둘째,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귀가 얇아 유혹에 잘 넘어갑니다(14절). 이단에도 잘 빠지고, 세상 유행도 잘 탑니다. 쉽게 말하면 자체적인 힘으로 세파를 헤쳐 나가는 ‘동력배’가 아니라 바람과 파도에 따라 흔들리는 ‘돛단배’입니다. 반면에 성숙한 사람은 고난의 바람과 파도를 이길 수 있는 성령님이 주시는 자체 동력이 있어서 중심을 잃지 않고, 어떤 고난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셋째, 사랑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본문 15절과 16절 말씀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은 “사랑 안에서”란 말입니다. 사랑은 성숙의 증거입니다. 어리면 사랑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철이 들면 사랑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거룩한 낭비’입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을 때 가룟 유다는“왜 낭비하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사랑의 낭비의 의미를 알면 마리아처럼 되고, 그 의미를 모르면 가룟 유다처럼 됩니다.
< 사랑의 낭비 >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고후 12:15).” 언제나 사랑엔 낭비가 있고 손해가 따릅니다. 사랑은 논리와 손익계산을 초월해야 이뤄집니다. 참된 사랑은 잃는 것이고, 빼앗기는 것이고, 바치는 것입니다. 손해보고도 행복한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뭔가를 잃어버리고 빼앗겨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신앙의 진수를 아는 사람이고, 주님을 위해 눈물과 재물과 시간을 낭비해 본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이 어리면 축복받아야 행복하지만 신앙이 성숙해지면 사랑의 낭비를 해야 행복합니다. 신앙이 어리면 나의 구원과 축복이 귀하지만 신앙이 성숙해지면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귀합니다. 기도도 초기 단계에는 복을 주로 구하지만 기도가 성숙해지면 하나님 한분을 주로 구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낭비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더 많이 줄수록 행복한 것처럼 사람은 사랑의 낭비가 있을수록 행복해집니다.
진정한 신앙은 대가를 치르는 신앙입니다. 신앙 안에서는 마리아처럼 계산이 없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 최고의 낭비를 할 때 최고의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처럼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나의 모든 것을 드리고, 나의 생명까지 쏟아 부어도 행복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옥합을 깨고, 주님을 위해 전부를 낭비하고도 행복해하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이고, 더 나아가 ‘은혜 받을 사람’입니다.
주일성수의 축복에 대해 간증하는 분들의 간증들을 보면 대부분 믿음으로 가게를 닫고 주일성수를 했더니 물질적으로 손해가 없었고 오히려 돈을 벌었다고 간증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주님만 바라보는 사람은 주일성수로 인해 손해를 보았는지 이익을 보았는지에 대한 의식도 없습니다. 삶의 목적이 예수님 한분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고도 행복한 사랑을 하고, 은혜의 대가를 치르려고 사랑의 낭비를 할 때, 하나님은 손해 본 것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그의 영혼과 인생과 가정에 되돌려주십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