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27) 사랑하는 마음의 혁명 (4장 15-1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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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낭비가 아닙니다 >
성숙함의 제일 징표는 ‘사랑 안에서 행동하는 것’입니다(15-16절). 사랑은 낭비처럼 보이지만 낭비가 아닙니다. 살기 너무 바쁘고 힘든 상황에서 힘써 주일성수하고, 하루의 첫 시간을 말씀으로 보내는 것은 시간의 낭비처럼 보이지만 낭비가 아닙니다. 교회와 교인을 섬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때로는 사랑이 상처로 돌아옵니다. 그때 조용히 주님 앞에 나와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도 마음의 낭비처럼 보이지만 낭비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너무 큰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내가 침체한 모습을 보이면 가족과 교우들도 같이 힘들어하겠지!”하고 아무 일도 없이 예전처럼 변함없이 목소리가 밝고, 얼굴 표정도 밝고, 유머도 하면서 주위를 즐겁게 해줍니다. 왜 그분의 고통을 모르겠습니까?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식구들과 교우들을 위해 밝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생활의 낭비처럼 보이지만 낭비가 아닙니다.
감춰둔 소중한 옥합을 깨뜨리는 ‘사랑의 낭비’를 통해 아름다운 향유 냄새를 전파하는 성숙함을 구하십시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사랑과 헌신엔 감동과 향기가 없습니다. 때로는 은혜 받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상식을 초월해서 자신의 옥합을 깨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향기가 가정과 사회에 진동해서 서로가 힘을 얻게 되고, 그 향기를 하나님도 흠향하시고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예쁜 것’보다 ‘성숙한 것’이 더 예쁜 것입니다. 성숙이란 마음과 신앙이 예쁜 것입니다. 그런 성숙함의 핵심표시는 “내 것을 얼마나 예수님을 위해 포기할 줄 아느냐?”에 달렸습니다. 예수님의 뜻에 몰입하고, 예수님께 소중한 것을 드리고, 예수님을 위해 내가 사랑하는 것과 나 자신마저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 사랑하는 마음의 혁명 >
‘찬란한 문 저편(Beyond the Gates of Splendor)’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는 짐 엘리엇(Jim Elliot), 네이트 세인트(Nate Saint), 피트 플레밍(Pete Fleming), 에드 맥컬리(Ed McCully), 로저 유더리안(Roger Youderian) 선교사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그들은 1956년 1월에 그들이 사랑해서 도우러 갔던 와오다니 인디언(Waodani Indians)에 의해 에콰도르 정글에서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낭비한 것 같았지만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 후 와오다니 인디언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살해당한 일부 선교사 가족은 나중에 와오다니 인디언과 함께 살려고 에콰도르 정글로 다시 찾았습니다. 그 중에 네이트 세인트 선교사의 두 자녀인 캐씨와 스티브(Kathy and Steve)는 그들의 아버지를 죽이는 일에 동참했던 와오다니 인디언 목자의 의해 침례를 받았고 나중에는 그들의 어머니까지 그곳에 가서 살았습니다.
영화에서 네이트 선교사의 딸인 캐씨가 말했습니다. “저는 저의 아빠의 시체가 던져진 바로 그 강물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저의 양쪽에는 젊었을 때 저의 아버지를 죽인 두 명의 와오다니 인디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제가 침례 받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아버지를 죽였던 그 두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눈과 변화된 마음을 가지고 원수조차 사랑하는 마음의 혁명을 이루어내는 종교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할 때 세상은 달라질 것입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용서받고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만이 아니고 성경 말씀대로 살고 성경의 진리를 몸소 체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