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당신의 꿈을 접으라고 명령하신다.
필자가 칼럼의 제목으로 올려드린 투의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은 없다. 그런 얘기를 하면 다들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교회마다 교인들이 줄어들어서 걱정거리여서, 어떻게 하든지 교회에 붙잡아 두는 게 당면과제인데, 교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의 설교를 들어보면 덕담과 축복, 격려와 위로 경연장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필자가 물어보고 싶다. 그런 설교를 많이 들어서 삶이 펴지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느냐고 말이다. 필자가 운전하면서 본 어느 대형사우나의 LED광고판에 이런 선전문구가 지나간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부자 되세요’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 광고 문구를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건강을 걱정해주고 덕담까지 해주니 고마운가? 솔직히 말해서, 눈을 피곤하게 만드는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다. 만일 교회의 목회자들이 설교 때마다 쏟아 부었던 축복과 덕담, 격려와 위로가 진짜 능력이 있었다면, 이렇게 우리네 교회가 영적 침체의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고 교회마다 텅텅 비어가고 있다는 게 기이하지 않은가? 그래서 오늘은 교회에서 전가의 보도로 삼고 있는 축복의 말씀을 꺼내어서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시81:10~12)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위의 구절은 액자에 넣어져서, 많은 이들의 눈요기감(?)이 되게 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자신들이 소원을 더 크고, 더 넓게 열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 바로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다. 그래서 그 백성들은 입을 크게 벌려서 소원을 이루고 성공적인 삶을 이루었는가? 거꾸로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의 대부분 광야에서 죽어서 지옥의 불길에 던져졌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불평과 원망을 일삼다가 하나님의 격노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입을 크게 벌라는 뜻은 무엇인가? 자신들의 욕망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투덜대며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만일 그들의 뜻을 이루고자 입을 크게 벌렸다면, 이들이 광야에서 죽어 지옥 불에 던져졌을 리가 만무하다. 입을 크게 벌리라는 내용은 하나님의 뜻이지 자신들의 욕망과 소원일 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머리 자르고 꼬리를 떼어내서,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가르치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2,3)
교회에서는 믿고 기도하는 것마다 받게 될 것을 믿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정을 하고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부르짖으며, 이불보따리를 싸갖고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이 그동안 믿고 기도한 것은 응답을 받았는가? 아니라면 왜 응답을 받지 못한 것일까? 믿음 없이 기도해서일까? 아니다. 주실 것을 굳게 믿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왜 당신이 응답을 받지 못한지 그 이유를 말씀해주는 야고보사도의 말씀을 올려드렸다. 바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기도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하여도 허공에 사라지는 소리에 불과했던 까닭이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렘33:2~5)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구절도 덕담과 축복을 선포할 때 즐겨 사용하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 말씀의 뒤에 나오는 구절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군대와 맞서 싸우려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얼굴을 가리고 예루살렘 성을 돌보지 않으셨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뒤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외면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앵무새처럼 부르짖으라고만 다그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그동안 마구 부르짖어서 무슨 일이 생겼는가? 성대 결절이 되어서 병원치료를 받아야 할뿐이었을 게다.ㅋ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구절을 책상위에 붙여놓고 자기암시를 하는 크리스천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는가?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어떤 환경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자족의 능력을 배웠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족하며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싶은 탐욕을 드러내는 도구로 삼고 있으니 가증스런 죄악을 더하고 있을 뿐이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교인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요정 지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거꾸로, 교인들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종의 신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의 목회자들은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비틀어서 가르치고 있으며, 교인들은 이를 맹목적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은혜 받았다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촌극을 연출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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