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기도가이드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라.| - 신상래 목사

Joyfule 2014. 8. 12. 13:49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라.| - 신상래 목사

 

필자가 30대의 젊은 시절 10여 년 동안 농구에 심취했을 때의 일이다. 몇 년을 열심히 연습하자 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하는 농구는 시시해지고 대학교 동호회회원이나 농구마니아인 청년들과 시합해야 직성이 풀리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학교 운동장의 흙과는 달리, 주로 시멘트바닥에 방수도료를 칠한 실외농구장에서 하다 보니 웬만한 운동화는 쉽게 바닥이 떨어져 나갔다.

필자가 즐겨 신던 나이키농구화는 웬만한 브랜드의 구두가격보다 높아서 바닥이 일부 떨어져나갔어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붙이려했지만 쉽게 붙지 않아, 공구상가를 돌다가 방앗간의 벨트를 팔고 수리하는 곳에 가서 수입접착제를 사왔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벨트를 붙이는 강력접착제라 성능은 가공할 정도였다. 이 접착제는 두 가지 종류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사용하기 전에 이를 적당하게 혼합하여 사용해야 강력한 성능이 나타난다. 평상시에는 각각의 용기 속에 넣어져 있지만 따로 사용하게 되면 효과가 거의 없다. 필자가 농구화를 붙이던 그 접착제가 갑자기 생각이 난 이유는, 성경과 기도가 영적 통로로 사용하지만 따로 사용하면 별로 효과가 없던 그 접착제와 성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을 만나는 양대 산맥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읽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상대적이 아니고 보완적이다. 기도를 안 하고 성경을 읽게 되면 성경지식은 많아지겠지만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오래 다녀 머리만 커진 크리스천이 바로 그렇다. 기도 없이 성경을 읽으면 부정적인 내용이나 비판적인 견해만 쌓인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성경지식을 얻으려면 상당한 수준의 신학적인 책이나 자료를 참고해야겠지만, 그럴 노력은 하지 않고 일반적인 신앙지식을 바탕으로 잘못된 교회행태를 보면서 비판적인 견해를 갖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도를 하지 않으면서 성경을 읽으면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이 없기에 팍팍한 성경지식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기도만 하고 성경을 안 읽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 주변에는 기도 없이 성경을 읽는 사람은 드물지만, 기도만 하고 성경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적지 않게 있다. 집집마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쓰고 앉아있는 성경책은 주일예배의 필수 지참용으로만 사용된다. 사실 요즘의 대부분의 교회는 예배시간에 프로젝터로 성경구절을 쏘아주기 때문에 성경책이 필요 없다. 그렇지만 손이 허전해서인지 모두 성경책을 지참하고 교회를 간다.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게 사실이다.

 

설교시간에 들은 성경지식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지만, 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만일 그렇다면 신학교를 3년이나 다닌 필자가 요즘도 매일 꼬박꼬박 한두 시간 성경을 읽어야할 까닭이 없다. 성경지식을 얻는 일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른 세계이다. 성경지식이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이들이 기도만 하다보면 신비주의자나 은사주의자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도를 열심히 할수록 더욱 위험하게 변질되기 십상이다. 기도할 때 드는 생각을 자의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비성경적으로 왜곡되게 해석한 것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고 강요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나님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용서를 받을 수 없고 영원한 죄에 처해진다고 무섭게 말하고 있다.(막3:29) 구약시대의 거짓선지자들과 거짓예언자들이 좋은 예이다. 그럼에도 이들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있다면 영혼이 위태로운 일이다. 올바른 성경지식과 깊은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는 성경읽기를 동반할 때 강력한 시너지효과가 나타난다.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의 기도가 응답이 없고 삶에 힘이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시너지효과가 없는 팍팍한 기도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영적인 책이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라고 신앙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믿음의 원천이나 종교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토경비결을 믿는 이들도 적지 않다. 토정비결은 조선 명종 때에 토정 이지함이 지었다고 하는 일종의 도참서이다. 연(年), 월(月), 일(日)의 간지(干支)를 숫자로 따지고, ‘주역’의 음양설에 기초하여 길흉화복을 점치는 데에 쓴다. 합리적이거나 객관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이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결과를 믿는다.

말하자면 토정비결에는 무언가 신(神)의 섭리가 작용하는 영적인 책으로 여긴다. 영적인 능력이 있다는 데는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미신이라 하여 믿지 않은 사람들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점술서에 불과하다고 여기지만, 이를 철썩 같이 믿는 사람들은 상당한 금액의 복채를 마다하지 않으며 미래의 길흉을 얻어내려고 애쓴다. 한낱 조선시대의 선비가 지은, 근본도 알 수 없고 정확성을 측정할 수 없는 점술서도 영적인 책으로 여기는데, 성경은 여기에 비할 수 없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게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죄다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예언하는 무시무시한 내용도 적지 않지만, 그보다는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고 이를 실행한 예수그리스도의 행적은 압권이고 백미이다. 역사적으로 부활을 예언한 이도 없지만, 이를 실제로 보여주신 이는 오직 예수그리스도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이 세상을 창조하신 야훼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믿는 까닭이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세상 어느 종교도 그들의 경전이 곧 신이라고 한 적은 없다. 경전이 신이라는 건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다. 그들의 종교는 인간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그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천국과 지옥도 지극히 인간적이다. 인간이 생각해낸 최악의 상황이 바로 지옥이고 그 반대가 천국이다. 그렇지만 성경은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인류를 구원해줄 그리스도가 정복자의 군대에게 굴욕을 당하고 잔인한 형틀에서 사형을 당한다는 게 어디 있을 법할 얘기인가? 게다가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고 실행한 사실은 사람들을 극도의 경악으로 몰아넣는데 부족함이 없다. 완전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은 인류역사를 통해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파들은 목격자들의 입을 막고 그 사실을 지우고자 혈안이었다. 자신들의 행위를 인정한다면 하나님을 죽인 사악한 무리가 되는데 이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생각을 넘어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증언하는 것이다. 굳이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지 않아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자체가 하나님이라고 못 박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책이며 곧 영적인 책이 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성경을 통해 기록하게 하셨고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고 분명하고 공표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의 잣대를 통해서만이 그 분의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필자는 아내의 예언을 통해 얻어진 내용을 공유하며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오래 되어 이미 검증이 끝났지만, 처음에는 그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예언의 방식은 입을 통해 나오는 말씀과 영음으로 들려주는 말씀 두 가지 종류의 방식인데, 어느 방식도 과연 하나님의 예언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전에 사탄이 사람 안에 들어가 입을 빌어 나타나 필자를 속인 체험도 있었으며, 자칭 예언자라고 말하는 자들이 진위를 밝혀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험하여보고 거짓예언자임을 밝혀낸 경험도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예언의 처음은 하나님의 사자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영이 아내의 입을 통해 필자에게 말함으로 시작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깊은 기도를 통해 성령이 말씀해주셨다. 간간히 개인적인 내용도 섞여 있었지만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거나 성경원칙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도가 깊이 들어가면 성경말씀을 통째로 반복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예언내용이 성경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말씀에 위배된 곳이 한 곳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왔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사실은 말투가 평소 아내의 말투가 아니라 성경적인 말투였으며, 아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도 아니었으며, 심지어는 아내가 모르는 용어도 자주 튀어나왔다.

말하자면 성경내용 그 자체였다. 그래서 필자는 실망스런 부분도 조금 있었다. 필자에게는 미래를 알고자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언으로 말하는 내용은 성경을 읽으면 알게 되는 내용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호기심이나 유익을 얻으려는 기미가 보이는 요청에 대해서는 응답은커녕 책망부터 하셨으며, 심지어는 기도한 것만으로 족하다고 마무리하신 적도 있었다.

필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사역이 성취되는 일시에 대한 질문도 응답대신 일시는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말씀만 되풀이 하셨다. 결국 예언도 성경을 읽으면 알게 되는 내용이 전부였다. 물론 개인적인 정황이나 문제해결의 우선순위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유익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면 알게 되는 범주를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예언의 은사를 받지 않아도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에는 절대로 부족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 예언의 말씀이 성경 안에서만 말씀해주시기 때문이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라.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사람들이 기도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지 않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도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희생적인 기도만 하면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생각한다. 이는 기복신앙이 바탕이 된 생각이지 성경적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런 아류(亞流)들이 우리네 교회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칙을 성경에 기록하시고, 그 뜻대로 기도하고 그 뜻대로 삶에 적용하는 이에게 응답해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 결국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무지하다면 오랫동안 희생을 들인 기도가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어볼 것도 없이 날마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된다. 그렇지만 우리네 교회에서는 성경을 정규적으로 읽지 않은 크리스천이 대부분이다. 성경을 정규적으로 읽는 것은 성경 지식을 쌓으려는 의도가 아니다. 인물이나 사건 중심의 내용은 한번만 읽어도 머릿속에 저장이 된다. 특히 설교는 감동적인 사건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한번만 들어도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는다. 그런데 교회를 수십 년 다녔다면 똑 같은 내용의 설교를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설교제목만 보아도 본문이 무엇이고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할 것인지, 안 봐도 비디오이다. 그런 이들에게 성경을 매일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한 번 읽은 책도 재미가 없어서 다시 읽는 법도 없는데, 내용을 훤히 꿰고 있는 성경책을 매일 읽어야 된다니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온다. 그래서 듣는 척은 하여도 실행에 옮기는 이가 없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경을 신앙 인물들의 위인전쯤으로 여겨서 그럴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가득한 영적인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 지식이 아니라 영적 깨달음이 없이는 그 뜻을 깨닫기 어렵고, 설령 깨닫는다 하더라도 삶에 적용할 수 없다.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강력한 파워를 주는 깨달음을 얻으려면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를 동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성경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날마다 읽고 묵상해야 한다.

 

필자는 평신도 이십여 년 동안 중고등교 교사로 봉사했기에 공과공부를 준비하려면 억지로라도 성경을 읽어야했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였다. 성경에서 깨달음을 얻는 데 무지했다. 신대원 3년 동안 온갖 과제를 준비하고 토론에 대비해야했기에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했다. 이 역시 지식을 위한 시간이었지 깨달음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러다가 사역을 시작하면서 상담에 대한 답변을 해주게 되면서 성경지식과 그 깨달음이 절실히 필요해졌다. 지금은 사역분야가 다양하게 넓어졌지만, 처음에는 성경적인 재정관리 상담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방송국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에 개설해 놓은 필자의 게시판에는 날마다 상담내용으로 빼곡했다. 상담에 대한 답변은 질문에 대한 성격적인 원칙과 더불어 삶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지혜도 덧붙여야했다.

아시다시피, 성경책은 재테크를 위한 책이 아니라 인류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다양한 내용의 말씀이 역사와 시, 교훈집, 편지 등의 다양한 장르로 방대하게 기록되어있는 책이다. 물론 돈과 그 책임에 대한 구절도 무려 2,300구절이 넘게 나와 있지만 말이다. 정확한 성경지식과 날카로운 깨달음이 없다면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낙담스러웠다. 그래서 날마다 성경을 두루 파면서 깨달음을 얻기를 간절히 기도해야만 했다.

 

그 때부터 성경을 정말 열심히 읽어야했다. 서재에서는 물론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성경을 읽곤 했다. 매일 두 시간 이상 읽는 것은 기본이었다. 일 년에 구약성경은 수차례, 신약성경은 한 달에도 여러 번 읽을 정도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읽다보니 성경지식이 아니라 성경의 행간에 숨어 하나님의 뜻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성경책만 펴면 말씀이 쫀득쫀득하게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동을 받은 말씀들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며칠 동안 때로는, 몇 주일 동안 남아 있곤 했다. 어떤 구절들은 날카롭게 가슴을 찌르고 눈물폭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수시로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