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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

Joyfule 2020. 3. 28. 01:05



 
    성령의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



값비싸기로 이름난 보석 다이아몬드를 연구실이나 공장에서 만들 수 있을까? 결론은 YES 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를 합성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 다이아몬드는 순수한 탄소결정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래서 합성 다이아몬드는 순수한 탄소로 이루어진 다른 물질에 엄청난 열과 압력을 가해 다이아몬드와 같은 상태의 물질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리를 자르는 유리칼 끝에는 자그마한 합성다이아몬드가 붙어있다. 탄소 결정체는 다이아몬드만 있는 게 아니다. 석탄이나 흑연도 탄소결정체로 이루어져 있다. 다이아몬드도 탄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화학적 성질과 물리적 성질이 석탄이나 흑연과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는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이 있어야 가능하다. 탄소자체를 공장에서 만들 수 없다. 금도 마찬가지이다. 중세시대에는 다른 물질로 금을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 연금술은 중세 아랍에서 발달한 분야로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나 마술에 가깝다. 고대로부터 약 2000년 이상 신봉되었던 원소 변환설을 근거로 값싼 철이나 납과 같은 금속을 비싼 금으로 바꾸려고 하였다. 그러나 원래의 원소는 다른 원소로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금속을 변형시켜 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탄소물질을 가지고 또 다른 탄소결정체로 이루어진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탄소가 아닌 다른 원소의 물질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을 불가능하다. 이런 법칙이 성령의 사람이 되는 길에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하나님의 영이자 성령이 안에 들어가서 거주하시면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성령의 사람은 다른 길은 없다. 오직 한 가지 길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22:37,38)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5:2)

 

성경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명령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계명이란 명령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뜻, 예수님의 명령, 율법, 계명은 죄다 같은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인 셈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라. 하나님의 뜻과 계명이 새카맣게 도배되어 있지 않은가? 부족하고 연약한 육체를 지닌 인간이, 이 모든 계명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명령하신 계명을 죄다 지킬 생각이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만 지키고 있다. 그것도 성경대로 올곧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요구하는 것으로 변조시켜서 말이다. 물론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으로서 전능하시고 완벽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 수 없는 게 우리가 마주한 암울한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이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 지킬 것을 명령하셨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5:10)

 

예상하신대로, 그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당신이 예수를 믿고 의지하며 교회마당을 밟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사는 능력을 드러내며 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마당을 밟으면서도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우리네 교회에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행위로는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어떻게 믿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지키며 살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1~8)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이 문제를 해결하셨다고 밝히고 있다. 바로 육체를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셨다고 말이다. 말하자면 예수를 믿고 교회 다니는 크리스천들이라면, 육체가 아니라 영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가? 크리스천들은 죄다 영의 뜻을 따라 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가? 즉 수많은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아낌없이 헌금을 드리며, 교회봉사를 하고 수련회에 참석하는 것이 영의 생각을 따라 사는 것인가? 그렇다면 증거와 열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증거란 다름 아닌 생명과 평안이다. 생명이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었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

 

영의 생각을 따라 사는 영의 사람의 증거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며, 영혼이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누리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이들이 그런 능력과 평안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라면 종교적인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것으로,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영의 뜻을 따라 사는 영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영의 뜻을 따라 사는 영의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

 

그 해결책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 그 말요...당신도 교회에서 적지 않게 들어본 말이다. ‘하나님 안에서’, 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교회의 성경교육시간이나 설교시간에 수도 없이 유통하는 말이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 ^^”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를 수 없다고 성경에서 밝혔으며, 주 예수를 믿으면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으므로, 자신은 여러 번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영접기도행위를 했으므로 당연히 성령이 안에 들어오셨을 거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께서도 당신 안에 있다면, 당신은 이미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그게 관념적인 지식으로 받아들여서 머리에 저장하는 자기 확신의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안에 계신 증거나 변화, 능력과 열매로서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20)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위의 구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안에 거하는 사람인 셈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의 증거는 바로,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응답이 내려오는 사람이다. 이 말씀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될 거라는 말씀과 동일하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철썩 같이 믿고 있다고 여기지만, 당신의 믿음을 하나님의 능력과 기도응답으로 증명해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당신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다면, 필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께서 당신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당신이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교회의 직분이 높아도, 육체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영의 생각을 따라 사는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한 이유이다. 결국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까지의 종교적인 크리스천이 아니라 성령이 내주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할 능력을 얻어서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1.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 성령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과 항상 만나서 교제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쉬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는 간구하는 기도의 습관은 기본이다. 하나님과 함께 했던 성경의 위인들을 보라. 그들은 평생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하는 일로 보냈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 중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은 규칙적으로 기도하지 않는다. 소수의 기도하는 사람들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도가 대부분이다. 이 시대에 성령의 사람을 볼 수 없는 이유도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성령과 교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루에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종교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가능하다. 그러나 하루 종일 하나님을 떠올리면서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께 인생을 맡긴 사람들만 가능하다. 말하자면 자신이 죽어야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 하나님은 자기 부인하며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을 각오와 결단을 삶에 적용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신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거주하면서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다.

 

2.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죄와 피터지게 싸워 이겨야 한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5~8)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생각과 성품, 말과 행동을 총망라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그 죄의 본질은 어떤 말이나 행동, 생각이나 성품이 육체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것에 귀결되어진다. 그러므로 말과 행동의 속내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육체가 원하는 것이라면 죄가 된다. 그러므로 육체가 원하는 생각이나 말, 행동과 철저하게 싸워 이기지 않으면 성령의 사람이 될 수도 없고, 설령 성령과 교제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떠나갈 것이다. 사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이 죄라고 아는 것들만 죄라고 규정짓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 죄라고 규정하는 것들에 대해 무지하다. 성경에는 모든 하나님의 뜻이나 규례, 명령 등을 조금이라도 위반하거나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이다. 성령이 안에 들어오시면 죄에 대하여 세밀하게 깨닫게 해주신다. 그러므로 죄라고 알게 된 모든 것들과 피터지게 싸워 이겨내야 한다. 싸워 이길 수 있고 없고가 중요하지 않다. 싸우는 것이 자신의 몫이다. 싸워 이기는 힘은 성령께서 주신다. 그러나 피터지게 싸우지 않는 사람들은 죄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고, 죄를 싫어하고 끊어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백번 넘어지더라도 싸우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라.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에 대하여 관심조차 없으며, 설령 성경을 읽어서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죄와 싸울 생각이 없는 이들이 허다하다. 어쨌든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순종하고 지키려고 애쓰는 게 종의 본문임을 잊지 마시라.

 

3. 어쩔 수 없이 걸려 넘어진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는 삶을 살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1~4)

 

왜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토대위에서 시작되었는지 아는가? 인간은 죄를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로 변질된 자아를 지니고 태어났다. 죄로 변질된 자아는 죄가 좋으며 죄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즉 육체가 원하는 삶, 육체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을 떼어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성경은 죄가 없는 의인은 한명도 없다고 선포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어찌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심으로, 그 보혈의 공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받는 통로가 열렸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며 내어놓고 철저하게 회개하는 사람들은 죄가 용서하여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죄와 싸우지만 연약한 육체로 인하여 걸려 넘어졌다면, 철저하게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33:13~16)

 

그러나 형식적인 회개기도를 반복하거나, 과거에 행한 회개기도를 내세우며 죄를 밥 먹듯이 지으면서도 더 이상 죄와 싸워 돌이키지 않는다면 죄로 인해 지옥의 불길에 던져질 것이다. 회개기도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죄에서 돌이키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이 세 가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사람이 되는 비결이다. 날마다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며, 죄와 피터지게 싸워 이기고, 죄를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는 사람이라면 이미 성령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