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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접기도행위를 하고 교회의자에 앉아있으면 구원이 확정되었다고?

Joyfule 2019. 9. 5. 10:33



 
    영접기도행위를 하고 교회의자에 앉아있으면 구원이 확정되었다고?



필자가 인터넷 칼럼에다 유투브 동영상에 영접기도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투의 주장을 하니까, 속이 부글부글 끓은 이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목회자들과 열정적인 전도자들이 해왔던 업적에 찬물을 끼얹는 필자의 말이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집단속이나 잘하면 돼지라며, 교인들에게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이단에 빠진다고 겁을 주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진정으로 영접기도행위를 하는 것을 폄훼하는 것에 대해 불만스런 메일이나 댓글을 보내서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누가 옳은지는 심판대 앞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전혀 예측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먼저 자신들의 주장이 성경적이냐는 것을 여러 성경구절에서 뒷받침해주어야 하고, 또한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역에 성령의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가 있는 것으로 증명해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도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과 제자들의 열매로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의 주장이 이단비스무리하다고? 그래서 필자도 심판대 앞에서의 성적표를 기다리고 있다. 그 때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이니까, 날카롭게 자신의 주장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영접기도행위를 하고 교회의 예배에 규칙적으로 참석하고 있는 것으로, 구원을 확증하는 것이 얼마나 허접한지 살펴보고 싶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6:4~8)

 

히브리서는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들을 향해 쓴 편지이다. 당시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들은 로마당국의 극심한 핍박한 박해를 당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는 예전의 유대교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이에 대해 편지로서 그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교훈을 주고 독려를 한 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목적이다. 당시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들은, 유대교인으로 있을 때는 핍박이나 박해가 없었으며 같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같은 성경을 읽고 율법도 같지 않았냐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기독교인이 되고 나서 핍박과 박해를 당하는 것에 회의와 두려움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런데 우리네 교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하여 규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 교회에 간을 보러 왔다가 도로나간 교인들이라고 폄훼하고 있다. 아니,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 단지 교회를 구경하러 온 사람에게 주어졌다고? 그렇다면 교회 예배에 열정적으로 출석하는 교인들은 이런 경험이라고 하였는가? 대다수의 교인들이 이런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선물을 체험하지 못한 자들이 수두룩한데, 단지 교회에 간을 보고 나간 이들에게 주어졌다고? 지나가는 개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성경말씀이라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널려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 이유는 이미 교단신학자들의 주장을 따르다보니, 그들의 교리에 충돌하고 도전하는 말씀을 보면 진땀을 흘리면서 구차한 변명과 구실을 늘어놓다 보니 이렇게 허접쓰레기 같은 주장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필자의 주장을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에게 다른 구절을 올려드리겠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10:26~28)

 

위의 구절에서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라는 한글번역을 살펴보자. 위의 원문 구절은 우케티(no longer) 페리(for) 하마르티온(sins) 아포레이페타이(there remain) 뒤시아(a sacrifice)이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죄에 머무르면 다시 죄를 위한 (속제의)제사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짐짓 죄를 범한즉이라고 번역한 여러 영어 성경을 비교해보았다. If we deliberately keep on sinning(NIV) 의도적으로(고의로) 죄를 계속 범하면, For if we sin wilfully(KJV), For if we go on sinning willfully(NASB) 고의로 죄를 범하면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고도 고의적으로 죄를 계속 범하면, 더 이상 용서받을 수 없으며 심판을 받아 지옥의 불길에 던져진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영적기도행위를 하고 주일에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게 어떻게 구원이 확정되었다는 주장인가? 성경에는 그런 말이 결코 없다. 위의 구절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희생적인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와 피터지게 싸우면서 육체의 연약함으로 지은 죄를 즉시 회개하지 않는다면 구원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네 교회에서는 예배의식에 참석한 교인들에게 구원을 기정사실화 하여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씀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미혹의 영이 우리네 교회지도자의 머리를 타고앉아 속이고 있으며, 대부분의 우리네 교인들이 미혹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런 교회에서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시라. 아니라면 천국에서 당신의 얼굴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