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인터넷성경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2과) 10

Joyfule 2008. 11. 1. 00:12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2과) 10 

 사사기(7): 부록(2) 도덕적 타락(19-21장)

 

 

2-3. 베냐민 지파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들(21:1-15)

 가. 길르앗 야베스 사람이 형벌을 받음(1-12)

 

  "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 통곡하여 3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4 이튿날에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거기 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5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 7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8 또 가로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치 아니하였으니, 9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 회중이 큰 용사 일만 이천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 11 너희의 행할 일은 모든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할 것이니라 하였더니, 12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 백 인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이 실로 진으로 끌어오니라.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서 자기의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에 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혈기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두 가지 맹세를 하였다. 첫째는 자기 딸을 베냐민 자손에게 아내로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으며, 둘째는 모든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미스바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자들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5절)이었다. 결국 전쟁이 끝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맹세를 이행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또 다른 살상과 무모한 납치극이 벌어지게 되었다(Pulpit).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기해왔다(창 28:6-9, 신 20:16, 17).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 총회에서 본절과 같은 맹세를 하였다는 것은 곧 그들이 베냐민 지파를 가나안 이방인들과 동등히 취급함으로써(신 7:3) 이스라엘 사회에서 축출하려 한 것임을 알 수 있다(Matthew Henry).

 

이 맹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에 모여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 대성 통곡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서 한 지파가 거의 사라지게 된 일로 인해 슬퍼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벧엘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들이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마친 후(20:48) 다시 하나님의 언약궤와 대제사장 비느하스가 있는 벧엘(20:26-28)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승리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열 두 지파 중에 한 지파가 거의 멸종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문제를 긴급히 해결하여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행한 맹세로 인해 해결책이 없게 되자 대성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서 탄식의 기도를 드렸다. 언약 공동체 중 한 지파가 빠진다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성립 요건을 결여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베냐민 지파의 멸절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한 지파의 몰락이 아니라 그 공동체 전체의 사활에 관계된 심각한 문제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에 대하여 이렇게 거국적으로 노심 초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 일어나서 그 곳에 단 하나를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당시 벧엘에는 이미 제단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20:26) 본문에서 그들이 또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통상적인 이스라엘의 관습에 따르면 이에 대한 설명도 가능해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함부로 아무 곳에서나 제단을 쌓지는 않으며 반드시 신의 현현이 있는 곳에서만 단을 쌓는 것을 관습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민족적인 위기를 직면했거나 축제 등을 치룰 때에도 단을 쌓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특히 전쟁 전이나 후에 단을 쌓는 경우가 많았다(삼상 7:9; 13:9; 14:35). 따라서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전쟁을 마친 후 재기된 민족적 과제를 놓고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새롭게 단을 쌓았을 것이다(Keil & Delitzsch).

 

  이스라엘 자손들은 베냐민 지파를 치기 위해 총회를 소집했을 때에 참석하지 않은 지파가 누구였는지를 조사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미스바에 와서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에 참ㅇ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맹세했기 때문이었다. 본문으로 보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를 타개할 방도를 모색하던 중에 전에 그들이 맹세하였던 사항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기브아 거민을 응징하기 위해 모인 미스바 총회(20:1, 2)에 참석하지 않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이었다(1).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실을 확인하여 불참자들의 성읍을 쳐서 처녀들을 사로잡아 베냐민 자손에게 줄 계획(12절)을 수립하였다.

 

 여기서 '크게 맹세하였다'는 것은 불이행의 경우에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뜻한다(Keil & Delitzsch).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맹세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1) 긍정적인 면 :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을 온전케 하는 일에 발뺌한 자들을 응징하는 것은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발뺌 자들은 소극적이나마 기브아 사람들의 죄악(19:22-26)을 묵인한 셈이니 어떤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범행에 동조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2) 부정적인 면 :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응징하지 않고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를 타개하는 타개책으로 그들을 응징하였다는 점이다.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은 형제 베냐민을 위해 뉘우쳐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지게 되었다고 한탄했다. 그들은 베냐민 자손 중에 살아남은 자들에게 아내를 얻어 줄 궁리를 생각했다. 여기에서 '뉘우친다'는 말('나함')은 '한숨 쉬다', 호의적으로 '동정심을 갖다', 소극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다' 등의 뜻이다. 따라서 이는 적극적인 의미의 회개와는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가 멸절하게 된 그 현상 자체에 대해서만 안타까워하였을 뿐, 그에 대한 책임이 자신들에게도 있다는 연대 의식(solidarty)을 느끼고 회개하는 자리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패퇴(敗退)하여 림몬 바위로 도망, 간신히 목숨을 보존한 베냐민 자손은 600명이었다(20:47). 이스라엘 자손들은 두 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1) 남아 있는 600명의 베냐민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딸들을 주어 한 지파의 사멸을 방지하는 것이다.

 2)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한 맹세(1절)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맹세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딸을 베냐민인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둘러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그 결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일전의 미스바 총회에도, 그같은 맹세에도 참여치 않았음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의도는 감추고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치기로 결의한다(8-11절).

 

  이스라엘 총회는 베냐민과의 전쟁 때에 야베스 길르앗에서 한 사람도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홍회는 강한 용사 12,000명을 그리로 보내어 그들에게  가서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 총회는 군사들에게 언약대로 모든 남자와 유부녀들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야베스 길르앗은 요단 강 동쪽 길르앗 땅에 있는 갓 지파의 성읍이다. 이 성읍은 요단강의 지류 중 갈릴리 바다 남쪽 32km 지점의 동쪽으로부터 요단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와디 엘 야비스(Wadi el-Yabis) 근처에 위치하였다. 이 성읍을 진멸하기 위해 12.000 명의 군사만을 보낸 것(10절)으로 볼 때에 그리 큰 성읍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러한 견해는 그 성읍에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4백 명밖에 되지 않았던 사실로도 뒷받침된다(12절). 이러한 야베스 길르앗은 훗날 사울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성읍이다(삼상 11장).

 

 야베스 거민이 아모리 사람 나하스에게 포위 당했을 때 사울이 성읍을 도와 구출해 주었다. 그리고 야베스 사람들은 훗날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벧산 성벽에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다가 야베스에 묻어 주었다(삼상 31:11-13). 때문에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용감하고 경건한 이들 야베스 사람들의 행위에 대하여 특별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삼하 2:5). 앞서 이스라엘이 미디안 총회로 모여 베냐민과의 싸움을 결의했을 때(20:1-11) 그들은 분명 군사들의 수를 점호(點呼)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총회에 참석치 않은 것을 알았다.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는 명령은 야베스 길르앗 성읍에 대하여 철저한 심판을 가하라는 뜻이다. 한편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미스바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비록 그곳의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의 책임이 아닐  터인데 이처럼 그들까지 모두 함께 진멸시키도록 한 이유는 공동체적 책임  때문이다.  당시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 하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한 성읍의 일개인이 범죄하였을경우에도 그 성읍에 대하여 전체 책임을 묻곤 하였다(신 21:1-9). 그것은 곧 이웃이 범죄할 경우 그를 개도(開導)할 책임이 각자에게 있음을 교훈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 당시 남자를 알지 못하던 처녀 400명만은 멸절 대상에서 제외되었다(12절).

 

  그들은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 백 인을 얻었는데, 이들은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이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을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진으로 끌어왔다.  곳은 가나안 땅이었다. 여기서 '남자와 잔 여자'란, 곧 '기혼녀'를 가리킨다. 고대 사회에서는 대개 전쟁이나 변란이 일어났을 때 기혼녀를 죽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민 31:17). 아마 이는 그들을 살려둘 경우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 획책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여기서  '진멸하다'는말('하람')은 '구분하다', '봉헌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듯 야베스 길르앗 거민들을 멸절시킨 것을 의미한다. 남은 베냐민 자손들(20:47)에게 주어 그들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하기 위해서 처녀 400명을 길르앗 야베슬부터 탈취했다. 여기에서 야베스 길르앗을 치게 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의도가 분명히 나타난다. 

 

 그들은 겉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처럼 행했지만 실상은 교묘히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즉 이로써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이 서원한 것(1절)을  어김이 없이도 베냐민 자손들에게 아내를 구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2절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 지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 번제를 드린 곳은 분명히 벧엘이었다. 그런데 본문에서 야베스 길르앗 처녀 400명을 이끌고 간 곳은 벧엘이 아니라 실로였다.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의 견해가 매우 다양하다. 혹자는 이제 베냐민의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벧엘로 옮겼던 언약궤를 다시 실로로 복귀시켰다고 한다(Hervey). 그리하여 백성들은 다시금 벧엘이 아닌 성소 실로로 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19절에 언급된 바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가 가까웠기 때문에 언약궤를 실로로 옮겼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Goslinga).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성소로 모인 것이었다. 이처럼 실로는 엘리 제사장 당시까지(삼상 4:3, 4) 희막이 있던 성소로 여호수아 시대에도 이 곳에서 자주 총회가 열렸었다(수 18:1;21:2;22:9). 야베스 길르앗은 요단 동편의 성읍인 반면 실로는 요단 서편, 즉 가나안의 성읍이다. 따라서 이러한 실로를 야베스 길르앗과 대비시키기 위하여 '가나안 땅'이란 말을 사용한 듯하다(Hervey, Ke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