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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2과) 8

Joyfule 2008. 10. 30. 00:08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2과) 8 

 사사기(7): 부록(2) 도덕적 타락(19-21장)

 


 마. 3차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20:26-28)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거듭 패배를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자손들은 보다 근원적으로 패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아 교만하고 완악 했던 모습을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전까지는 병력의 수효만을 믿고 하나의 요식 행위로 하나님을 찾았으나, 이번에는 '모든 해결책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겸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즉 그들은 '고난'을 통하여 자신의 죄악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다(시 119:71; 히 5:8). 진정으로 회개하고 마음을 비운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과 지혜와 위로로 채워 주실 것을 약속하였다(시 107:9; 약 2:5).

이스라엘 연합군은 첫 번째 전투에서 패했을 때에 여호와 앞에 나아가기에 앞서 먼저 진을 배치했다(22). 그러나 그들은 이번에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자세를 취하였다. 아마 그들이 힘으로 베냐민 지파와 전쟁하려고 했다면 힘을 쇠잔케 하는 금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회개를 위해 금식한 경우가 많이 있으며(삼상 7:6;욜 2:13; 행 9:9),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기 위해 금식한 예도 여러 번 있었다(출 34:28; 욜 1:14).  '번제'(Burnt Offerings)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를 기원하며 드리는 제사이다. 그리고 '화목제'(Peace Offerings)는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의 화목과 친교를 도모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다. 한편 이 두 제사는 모두 예배자가 자원하여 드리는 자원제이다.

 

  일부 학자들은 "그때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었다"는 말을 근거로 하여 사사 시대에 실로의 성막이 벧엘로 옮겨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 18:1; 삼상 1:3; 2:14; 3:21; 4:3)에 의하면 하나님의 언약궤는 엘리 제사장 당시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길 때까지 실로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실로에서 벧엘로 옮긴 것이 분명하다(Keil, Delitzsch, Lange). 한편 그들이 언제 하나님의 법궤을 그곳에 옮겼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두 번의 전쟁 패배 이후에 실로에서 벧엘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본문 등장하는 비느하스(Phinehas)는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부디엘의 딸을 통하여 얻은 아들이다(출 6:25). 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때에 모세와 함께 광야에서 이미 활동하기 시작했다(민 25:7). 때문에 그가 제사장으로 지낼 때는 사사 시대 초기임이 분명하다. 이로 볼 때 본 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의 발생 연대 역시 사사 시대 초기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세 번째 전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증하는 약속을 주신 것은 26절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화목제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화평을 누리기 위한 목적으로 회개하고 서원 함으로 드려졌다.


 바. 매복 작전의 성공(29-37)

 

  "29 이스라엘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30 이스라엘 자손이 제 삼 일에 베냐민 자손에게로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를 대하여 항오를 벌이매, 31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 길 곧 한편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편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32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길로 꾀어내자 하고, 33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 항오를 벌였고, 그 복병은 그 처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34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일 만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심히 맹렬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 일백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이었더라. 36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깐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37 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에 돌입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이스라엘 연합군은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시켰다. 그리고 이스라엘 주력 부대는 제 삼 일에 베냐민 자손을 치기 위해 올라가서 기브아를 향해 진을 쳤다. 연합군은 더 이상 베냐민 지파를 앝보는 것과 같은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 이는 마치 과거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공략할 때 사전 준비를 갖춘 것과  흡사하다(수 8:4). 그들은 베냐민 군을 기만하기 위하여 지난번과 다름없는 전투대형을 갖추었다(19,20). 베냐민 자손은 이스라엘 연합군을 공격하다가 유인 작전에 말려들어 기브아 성읍을 멀리 떠나고 말았다.

베냐민 지파는 의기양양해서 벧엘로 올라가는 길과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이스라엘 연합군을 추격하여 30명 가량을 죽였다. 이러한 전투의 장면은 (수 8:3-28)에 기록된 여호수아의 아이 성 전투의 양상과 매우 유사하다. 베냐민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의해 유인되는 것인 줄도 모르고 기세 등등하게 기브아 성읍을 떠나서 이스라엘 연합군을 추격했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스라엘 연합군이 또 자기들에게 패한 줄로 생각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고의로 패한 척하면서 후퇴하여 베냐민 지파를 성읍에서 유인하여 큰길로 나오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모두 자기가 있던 곳에서 나와서 바알다말에 진을 쳤고, 복병들은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 '초장'('마아레')은 나무나 풀이 없는 황량한 벌판을 가리킨다. 이러한 곳에는 웅덩이가 많기 때문에 복병들이 숨기에 적합했다.

 

  이스라엘 연합군 중에서 택한 사람 10,000명이 기브아에서 베냐민 지파와 더불어 맹렬한 전투를 벌였다. "기브아에 이르렀다"는 말은 '기브아(베냐민)의 군대에 대항하였다'는 말이다. 이 때까지도 베냐민 사람은 자기들이 연합군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호와께서 이 날 베냐민 사람들을 이스라엘 연합군에게 붙여셨다. 베냐민 군대 앞에서 거짓으로 후퇴하던 연합군은 성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신호로 하여 급히 돌아서서 복병과 함께 베냐민 군에게 협공을 가하기 시작했다. 바알 다말에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베냐민 사람들은 기브아에 매복해 있던 복병들(29, 33절)이 자기들의 후미를 공격하는 줄을 알지 못했다.

 

베냐민 지파의 전체 군대 수효는 26,700명이었는데(15), 그 날에 25,100명이 전사했으며, 도망한친 사람은 600명에 불과했다. 그때에서야 베냐민 사람들은 자기들이 패배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스라엘 연합군의 매복 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연합군의 주력 부대는 베냐민 군사들을 성에서 유인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틈을 타서 복병들은 기브아 성읍을 점령하였으며, 다시 성에서 나와 연합군의 주력 부대와 함께 베냐민 군대에 협공을 가했다. '깨닫다'는 말('라아')은 '보다'는 뜻으로,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거나 몸소 체험한 후 비로소 사태를 직시하게 된것을 의미한다. 매복한 곳으로부터 급하게 쏟아져 나온 복병들은 작전상 후퇴하는 아군들의 피해를 최소로 줄이기 위하여 신속하게 기브아 성읍을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