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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00과)3.

Joyfule 2010. 1. 17. 22:21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00과)3.

잠언(5): 히스기야 신하가 편집한 솔로몬 잠언들 (25-29장)

 

3. 지혜와 미련함

 

 3-1. 지혜(의인)의 길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겠노라(27:11)."

  지혜자는 자녀(또는 학생)들에게 지혜를 얻어서 자신을 기쁘게 하라고 부탁한다. 자녀(또는 학생)들이 지혜롭게 될 때에 그 부모(또는 교사)는 자신들을 비방하던 자들에게 할 말을 갖게 된다. '비방한다'(하라프)는 말은 '경멸한다'는 말이다. 부모나 교사는 때때로 이웃들에게 무책임한 부모나 거짓 교사라는 비난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키운 자녀 또는 학생들이 지혜롭게 처신하게 되면 그들은 자기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할 말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키운 자녀나 학생은 바로 그 사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나 교사는 사실상 자기가 키운 자녀나 학생들이 바로 자기의 열매인 셈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잘되면 교사나 부모는 영광을 받고, 그들이 잘못되면 비방을 받게 된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27:12)."

  슬기로운 자는 '재앙'('라아': '악')을 보면 숨고 그것을 미리 피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악을 보고도 그것을 피하거나 대비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나아가다가 마침내 큰 해를 받게 된다. 슬기로운 자('아룸')는 '신중한 자'를, 어리석은 자(페타임)는 '단순한 자'를 말한다. '아룸'은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며, '페타임'은 '악을 분별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성도들은 지혜를 가까이 함으로써 악을 분별하고 거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2. 우매(악인)의 길

 

  "환난 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25:19).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으니라(25:20)."

  환난을 당했을 때에 진실 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자는 마치 불진 이빨과 뼈가 빠진 발과 같다. 부러진 이와 뼈가 빠진 다리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큰 고통만 더해준다. 또한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가서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고, 쏘다 위에 초를 붓는 것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마음이 상한 자'는 '마음이 무거운 자'를 말하는데, 이는 큰 근심으로 인해서 낙심한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에게 가서 노래를 부르는 일은 마치 추운 날에 그의 옷을 벗긴 것과 같이 그를 더욱 곤고하게 만들 것이다. 쏘다(나테르)는 천연 탄산소다를 말하며 세척용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물질은 식초를 부으면 부글부글 끊는 현상이 나타난다(Shaw). 이것은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이 오히려 근심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오는 것 같으니라(26:1)."

  팔레스틴에서 여름에 눈이 내리는 적은 없지만 내린다고 해도 금방 녹아버리기 때문에 아무런 유익이 못된다. 그리고 이 곳은 봄부터 10월까지 비가 거의 없으며 추수철에는 더 비를 볼 수 없다. 그런데 만일 이때에 비가 내리면 익은 곡식에 손상을 주어 도리어 해가 되기 때문에 불길한 징조로 생각되었다(삼상 12:17). "영예"(카보르)는 내적인 가치를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외적인 가치, 즉 높은 지위를 뜻한다.  미련한 자에게 높은 지위가 주어지는 일은 마치 여름의 눈이나 추수철의 비처럼 무익하고 오히려 해롭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 지위에 합당한 일들을 감당할 능력이 없으며, 오히려 그 지위를 자신의 욕심을 따라 남용하여 다른 많은 사람에게 불이익을 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 같이 이르지 않는도다(26:2).

  팔레스틴 전역에서 쉽게 발견되는 참새는 까닭 없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으며 제비 역시 먼 이국 땅을 행해 갈 때는 그 목적지를 분명히 정한다. 참새와 제비 같은 미물(微物)들도 이유나 목적이 없는 행동은 하지 않듯이 인간 세계 속에도 이유 없는 악한 저주는 임하지 않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저주가 공의(公義)에 관계없이 마술 화살처럼 그 목적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간다는 미신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발람도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민 23:8).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자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26:3-5)."

  어리석은 사람은 당나귀나 말처럼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인 힘으로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에 둔하고 어두운 사람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징계의 매를 맞고서야 그 길을 돌이킨다. 그리고 미련한 자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보면 자신도 그 우매함에 물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4절은 미련한 자의 수준에로 떨어지지 말라는 소극적인 경고이다. 그러나 5절은 미련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자신이 스스로 옳은 줄로 알게 되기 때문에 그를 책망하고 교정해서 그의 어리석음을 교정해 주라는 적극적인 권면이다.

 

  "미련한 자의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버림이라. 해를 받느니라.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미련한 자에게 영에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26:6-9)."

  소식을 전하는 일에는 두 발이 사용된다. 보냄을 받는 자가 그 목적을 잘 수행치 못할 어리석은 자라면 그를 보내는 일은 두 발을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두발을 자르는 일은 치명적인 해악을 연상케 하는데 이 사실은 '해를 받느니라'의 원문상의 의미와 잘 조화를 이룬다. '해를 받는다'(하마스 쇼테)는 말은 '폭력을 마신다'는 말이다.

절름발이의 걸음이 무기력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것처럼 미련한 자의 입에서 나오는 잠언도 무익하고 어색하다.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일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다. 돌을 물매에 맨다는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라틴역에 근거한 것으로 보석 같은 귀중한 돌을 잡석(雜石)더미 위에 던지는 미련한 행위로 보는 것이다(Perowne, Clark 등). 둘째는 물매를 사용할 줄 모르는 자가 돌을 물매에 묶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는 해석이다(Whybray).

 

어느 해석을 따르든지 이 행동은 어리석은 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영예', 곧 세상적인 지위를 미련한 자에게 부여하는 일은 극히 어리석은 행위이다. 손에 가시나무를 들었을 경우 만취한 사람은 그 움직임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의 경우 잠언의 말씀을 읽거나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적절히 활용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무익하고 남에게 상처만 준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적절하게 적용하여 이웃에게 유익한 도움을 준다(전 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