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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00과)4.

Joyfule 2010. 1. 18. 23:30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00과)4.

잠언(5): 히스기야 신하가 편집한 솔로몬 잠언들 (25-29장)

 

3. 지혜와 미련함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자를 고용함과 같으니라(26:10)."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궁수(弓手)는 어리석은 자를 고용하고 모든 나그네를 고용하는 자와 같다. '어리석은 자나 나그네를 고용하는 자'는 마치 궁수가 그 활을 생각 없이 자기 멋대로 쏘는 것같이 위험하다. 가진 바 능력이나 지위를 생각 없이 함부로 사용하는 자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Brown, Cook, Toy).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26:11-12)."

   문자 그대로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며 어떤 경고에도 불구하고 악한 행위를 반복한다. 토해 놓은 곳으로 발을 돌이키는 개의 비유는(벧후 2:22) 죄를 반복하는 행위를 꼬집는 대목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스스로 미련함을 인정하는 자는 소망이 있으나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는 구제 불능이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통감하는 자는 새 출발할 가능성이 많다.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에서 세리가 바로 그 모범이다. 그러나 자신이 완전하다고 믿는 자는 회개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 경우의 예는 바리새인이다(눅 18:9-14). 그러나 자신의 죄를 통감한 세리는 의롭다고 여김을 받았고 자기의 의를 자랑한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열납받지 못하였다.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27:3).....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절구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 하느니라(27:22)."

  돌과 모래 덩어리는 무겁다. 이것을 운반해 본 사람이라면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게 하는지를 안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분노는 사람을 더욱 지치게 하는데 그것은 정말로 참기 힘든 영적, 정신적 불쾌감을 안겨준다(McKane). 돌이나 모래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비교 차원에서 상이한 질적 차이를 보인다. 하나는 물질적인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껍데기와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곡물을 절구에 넣고 찧는 일은 타락한 사람을 교정하는 일보다 차라리 쉽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는 이러한 교정 작업을 통해서도 교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은 그에게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온갖 징계, 가르침, 권면이 그에게는 무익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는 징계 중 가장 큰 징계는 내 버려 두심이다. 그 어떤 징계와 가르침과 권면을 통해서도 그 완고함을 버리지 않는 자는 진정 어리석은 자로 하나님의 유기(遺棄)를 당하고 만다(롬 1:28). 그러므로 징계를 당하는 자는 아직 버림을 당한 단계는 아니니 즉각 회개해야 할 것이다(히 6:1-8).

 

 3-3. 지혜자와 미련한 자

 

  "모반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29:8)."

  상반절의 원래 의미는 '조롱하는 자는 도시를 불 위에 올려놓는다'라는 말이다. '조롱하는 자'는 도덕적 의무, 특히 국가가 부여하는 의무를 비웃고 동료 시민들의 감정을 부추겨서 정부를 대항하여 정치적, 종교적인 쿠데타를 일으키는 자를 말한다(사 28:14, Cook, Toy).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 구절이 '슬기로운 자'와 대조되고 있기 때문에 이 말을 영적으로 교만한 자(하나님의 율법을 경멸하여 분쟁을 일으키는 자)로 볼 필요가 있다. '슬기로운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신령한 지혜를 받고 선행으로 지혜와 온유함을 나타내는 자를 말한다. 그는 이기적 탐욕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다툼이나 분쟁을 그치게 하고 화평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약 3:13-18).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29:9)."

  지혜로운 자가 미련한 자와 다투면 그 논쟁은 해결할 길이 없다. 왜냐하면 미련한 자는 옳고 그름보다 자기의 주장만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와 더불어 이성적인 논쟁을 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29:10-11)."

  피를 목말라 하는 자는 정직한 자를 미워하나 의인은 그들의 영혼을 위해 간구한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였던 사단과 그의 모든 후손들은 정직한 자, 의로운 자를 미워한다. 가장 가까운 아우 아벨을 피 흘려 죽인 가인은 이런 일의 시조이자 표본이다(창 4:5-8). 피에 굶주린 악인들은 의인들을 증오하지만, 의인들은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이러한 일의 절정은 십자가 위에서 나타났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어리석은 자는 분노를 그대로 드러낸다.

 분노(루호)는 '바람', 또는 '마음'을 의미하나, 본문에서는 '격렬한 열정'에 휩싸인 '분과 노'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반절에 사용된 노를 억제한다는 말은 분노나 폭풍 따위를 완전히 가라앉히거나  잠잠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시 65:7;89:9).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에 평정을 계속 유지한다. 이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하늘로서 임한 평안이 있기 때문이다(약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