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인터넷성경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14과)6

Joyfule 2010. 4. 10. 09:41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14과)6

아모스 (2) :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선언 (3-6장)

 

2.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선언(3-6장)

 

2-2. 심판의 이유(3:9-6:14)

 

라. 지도자들의 사치와 교만과 안일함(6:1-4)

 

  가) 화있을 진저!


  하나님은 자만에 빠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셨다.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1). "화 있을진저"(호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심판을 선포될 때 사용되었다.

'안일한 자'(하솨아나님)와 '마음이 든든한 자'(하보테힘)는 '시온'과 '사마리아'의 지도자들로서,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정욕과 쾌락을 좆아 자기 뜻대로 살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그 곳에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2)" '갈레'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지만 시날 땅과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으며(창 10:10), 이 곳은 이사야가 언급한 '갈로'(사 10:9)와 에스겔이 언급한 '간네'(겔 27:23)와 동일 지역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갈레는 티그리스 강  건너편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이다. 또 '하맛'은 원래 가나안에 속해 있다가(창 10:18),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 지역으로 소속되었다(민 34:7,8; 수 13:5; 삿 3:3; 왕하 14:25; 겔 47:16). '가드'는 블레셋과 유다의 경계 지역이었다. 이 지역들은 변방에 있는 도시들로 보잘것 없는 도시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이러한 도시들로 가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러한 도시들에 비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도시들에 비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무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흉한 날, 즉 심판의 날이 멀었다고 떠들어대면서 폭력을 가까이하고 있었다(3)."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부와 영예로 풍요로은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고 폭력으로 부와 향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이러한 죄를 엄히 추궁하셨다.

 
 나) 안일과 사치한 삶(4-7)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지적하셨다. 그들은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를 켜고,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해 악기를 제조하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해서 근심하지 않았다(4-5)."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제적인 풍요로움 속에 빠져서, 방탕과 쾌락을 탐닉하고 있었다. 그들은 술에 취해서 곡조를 흥얼거리고 있었고,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많은 악기를 제조하고, 그것을 연주하면서 흥을 돋구었다.

또한 그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위해 사용하는 대야, 즉 제물 그릇으로 포도주와 술을 마셔대고 있었다. 그들은 몸에 귀한 기름을 바르고 방탕한 삶을 살면서, 요셉의 환난, 즉 장차 이스라엘에게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심판은 하나님을 분노케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심판을 예고하셨다. "그들이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칠 것이라!(7)." 쾌락과 방탕을 좆으며 심판을 대비하지 않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가장 먼저 사로 잡혀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기지개를 켜며 거만하게 외쳤던 그들의 소리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다) 공법을 쓸개로 정의를 인진으로 바꾼 백성들(8-14)


  그러면 심판의 날에 포로로 끌려 가지 않고 이스라엘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은 그들 역시 비참한 생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맹세하셨다.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해도 다 죽을 것이라!(8-9)" 하나님은 이에 대해서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다. 이러한 맹세는 변치 않고 반드시 실행될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영광', 즉 이스라엘이 누리는 부와 궁궐들을 가증히 여기셨다.

그들은 풍부한 재물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의 쾌락만 추구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모든 재물을 대적을 보내어 탈취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 때에는 한 집에 열 사람이 사는 집에서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죽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죽은 사람의 친척이 시체를 불사르기 위해서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내실에 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묻게 될 것이다 "아직 너와 함께한 자가 있느냐?" 그러면 그때에 내실에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살아 남은 자가 없다"도 대답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완전히 패망하여 입을 다물 것이며, 다시는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불리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10). 일반적으로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시체를 화장하지 않고 매장했다. 그러므로 시체를 화장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전염병으로 죽은 시체)에 속했다. 그때에 포로가 되지 않고 이스라엘 땅에 남은 사람들은 전염병으로 죽게 될 것이며,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도 죽음을 기다리면서 겨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때에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잘못 부르다가 심판을 받을 것을 두려워 해서 여호와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며 살게될 것이다.

 

  이러한 고난은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한 결과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공법을 쓸개로 만들어 버리고,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바꾸어 버렸다(11-12)."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마치 "말이 바위 위에서 달리고, 소가 바위 위에서 밭을 가는 것처럼 순리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은 공법과 정의의 실천을 위해 주신 율법을 버리고, 써서 먹을 수 없는 쓸개와, 해를 입히는 독초와 같은 우상의 법을 받아들였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공익을 위해 주어진 법을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사용했다.  그들은 법을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가진 자를 비호하는 도구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그들은 "허무한 것을 기뻐하면서 모든 영광을 자기 힘으로 얻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13) 그들은  구원을 주지 못하는 허무한 우상을 좆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들은 풍요와 영토확장을 하는 동안, 한껏 자만해져 있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심판을 선언하셨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장차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게 하리니, 그들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할 것이라!(14)." 하나님은 장차 공의를 버리고 쑥을 받아들이며, 공익을 위해 주어진 법을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도구로 만들어 버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한 나라를 일으키실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는 이스라엘의 전 영토를 정복하고 그들을 학대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하맛어귀에서 아라바 시내까지'는 여로보암이 회복한 이스라엘의 경계선을 가리킨다(왕하 14:25,28). 이 영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영토이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공의를 버린 죄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영토를 대적에게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아모스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교만하게 행하다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하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