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6과)2 |
열왕기(3): 솔로몬 이야기(2)(9-11장) |
10-9. 솔로몬의 건축 사업과 노동 정책(9:15-25)
솔로몬은 역군을 일으켜서 성전과, 자기의 궁전, 밀로와 예루살렘 성,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였다(15). 밀로란 명칭은 '채우다'는 뜻인 '말레'에서 파생된 말로, 이는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장 취약한 북방의 방어를 위해 북동쪽 또는 북서쪽에 '흙과 돌로 채워 세운 성채'를 가리킨다. 원래 이곳은 여부스인들의 성채였으나 다윗에게 정복당했다
(삼하 5:6-9).
다윗은 밀로에서부터 성을 쌓아 수도 예루살렘의 성벽을 건축하였다(대상 11:8). 그리고 후에 솔로몬은 이 밀로를 다시 증축 또는 수축을 했다(24). 다윗은 여부스족속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을 빼앗아 밀로와 예루살렘 성을 건축했다(삼하 5:9). 그러나 그 당시 다윗의 건축은 시온 산의 고지대 지역을 중심으로 성벽을 쌓았기 때문에, 솔로몬은 수도 방어를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하여 저지대 부분까지 성벽을 확장, 또는 증축했다.
하솔은 '울타리를 둘러 친 땅'이라는 뜻이다. 갈릴리 호수의 북쪽으로 16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하솔은 북쪽으로부터 뻗어내려오는 두 주요 도로가 합쳐지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따라서 솔로몬은 이 언덕에 성채를 쌓아 북방 국경 및 훌레 평야를 방어하는 요새로 삼았다(Yadin). 이후 하솔은 B.C. 8세기경 디글랏 빌레셀 3세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이스라엘의 북방 국경을 방어하는 주요 성읍이 되었다.
므깃도는 에스드렐론과 샤론 평원 사이에 위치한 군사적 요새지이다. 또한 이곳은 팔레스틴 내륙에서 베니게에 이르는 길과 애굽에서 수리아,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길의 교차점으로서 주요 교통로이기도 했다(삿 5:19; 삼상 31:1; 왕하 23:29).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상 이곳에서는 많은 전쟁이 치루어졌는데, 이런 맥락에서 계시록은 므깃도를 그리스도께서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멸망시키실 최후의 큰 전투 장소, 곧 아마겟돈 전쟁의 무대로 묘사하고 있다(계 16:16).
게셀은 예루살렘과 욥바 중간의 팔레스틴 평지에 있는 성읍이다. 원래 '게셀'에는 가나안인들이 거주하였으나, 애굽의 바로가 빼앗아 솔로몬에게 주었다(16). 이는 솔로몬의 아내인 바로의 딸을 위한 일종의 지참금이었다. 솔로몬은 이곳에 요새를 구축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게셀은 이스라엘의 이후 '게셀'은 마카비 시대까지 주요 군사 요충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또 바알랏과 그 땅에 있는 다드몰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자기의 모든 영토 안에 건축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들을 건축하였다(17-19). 벧호론은 깊은 계곡에 의해 동서로 구분된다. 이중 동쪽지역을 '윗 벧호론', 서쪽 지역을 '아래 벧호론'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동쪽 지역은 해발 525m, 서쪽 지역은 해발 315m이기 때문이다(Reed).
이 벧호론은 게셀과 함께 블레셋을 방어하기 위한 진지였으며, 베냐민, 유다, 에브라임 지역을 방어하는 길목이었다(Keil). 따라서 솔로몬은 이곳을 더욱 견고하게 요새화시켰다. (대하 8:5)을 보면 솔로몬이 '윗 벧호론'까지 증축했음을 알 수 있다. 바알랏은 '여주인'이라는 뜻으로, 단 지파의 영역이며 깁브돈과 여훗 사이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수 19:44-45).
다드몰은 다메섹과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중간 지역에 위치한 전략상 요충지였다. 이곳은 많은 정원과 종려나무 숲들이 있어 쾌적한 오아시스 지대 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새로 점령한, 왕국의 북동 지역을 지원할 국고성을 다드몰에 건축했던 것이다(대하 8:3,4). 국고성은 나라에 필요한 물품들(군량미, 왕국의 재산, 구제용 식량 등)을 비축하는 장소였다(창 41:35; 출 1:11; 대하 17:12; 32:28).
이러한 국고성은 물품의 저장 뿐 아니라 방비도 요구되었으므로 요새화되는 것은 당연했다. 솔로몬이 거느린 마병의 수는 만 이천 명이었다(10:26). 솔로몬은 말과 기병들을 위해서 성을 건축했다. 이처럼 요새화된 국고성과 여타 전쟁용 병거 및 말과 기병대는 주로 북방 국경 지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대하 8:4; 16:4). 이는 당시 솔로몬 왕국에 위협이 될만한 세력은 주로 북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이들을 건축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자들, 즉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사람, 그리고 여부스 사람을 노예 역군으로 삼았다.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다 쫓아내지 못한 토착민들이었다(삿 1:21-36). 가나안 정복 전쟁 이후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주하여 살면서 여러 가지 일에 종사했다.
솔로몬은 이러한 노예들을 건축 사업을 위해 역군으로 사용했다. 20년에 걸친 솔로몬의 건축 공사는 막대한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솔로몬은 옛 가나안 토착민의 자손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함으로써 이 모든 일을 완수할 수 있었다. 솔로몬에 의해 동원된 가나안인 역군들의 수는 15만명이 넘었다(5:15). 그러나 솔로몬은 율법을 따라 이스라엘 자손은 노예로 삼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로서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될 수 없었다(레 25:39-43). 가나안인들에 비해 이스라엘 자손들은 특권과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부역에서 면제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비록 좀더 자유롭고 대가를 받으며 일을 했지만, 3만명 이상이 건축사역에 동원되었다(5:13-14).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이스라엘 자손의 노역도 과중하게 부과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역 사무를 총괄하는 감역관의 존재와 솔로몬 사후 르호보암을 향한 백성들의 호소 및 탄원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일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12:4,18).
솔로몬의 건축 사업을 감독하는 두목은 550명이었는데, 이들은 상급 감독으로 이스라엘인 250명과 가나안인 300명으로 구성되었다(5:16). 바로의 딸을 위한 궁전이 완성이 되게 되자, 바로의 딸은 다윗 성에서 나와서 그녀를 위해 건축한 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때에 솔로몬은 왕비가 떠난 다윗 성에 밀로의 건축 사업을 수행했다(24).
솔로몬은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고 그 위에 해마다 세 번씩 번제와 감사제를 드렸으며, 여호와 앞에 있는 매 단마다 분향을 드렸다(25). 이렇게 해서 솔로몬이 건축하려던 모든 사업이 완성이 되게 되었다(26). (대하 8:13)을 보면 이 세 번의 제사는 일년의 세 절기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드렸다. 일부 사람들은 이 언급을 '불필요한 반복'이라고 본다(Montgomery). 그러나 많은 주석가들은 이 기록이 일상적인 제사기능이 발휘됨으로써 성전의 참다운 완성을 이루었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Bahr, Hammond).
'━━ 보관 자료 ━━ > 인터넷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6과)4 (0) | 2009.03.25 |
---|---|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6과)3 (0) | 2009.03.24 |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6과)1. (0) | 2009.03.21 |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5과)16. (0) | 2009.03.20 |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5과)15. (0) | 2009.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