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99과)5. |
잠언(4): 지혜자의 말씀들 (22:17-24:34) |
14.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10)."
이 구절은 원문 그대로 번역을 하면 다음과 같다. '만일 재앙의 날에 연약함을 보인다면 너의 힘은 작다.' 모든 일이 평탄할 때에는 누구나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겉으로 보기에도 강해 보인다. 그러나 막상 큰 역경을 만나게 되면 그 반응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과 용기의 여부는 역경의 때에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시련과 역경의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낙심하지 말고 인내로 극복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 구절은 이렇게 바꾸면 더 효과적인 번역이 될 수 있다. '만일 재앙의 날에 연약해진다면 너의 힘은 과연 강한 것이겠는가!'
15.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반드시 구원하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11-12)."
성도들은 치명적인 위험 중에 빠진 자들을 구출해야 한다.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 나 '살륙을 당하게 된 자'는 거의 죽게된 자를 말한다. 이러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1) 자신들의 악이나 무지로 인해 멸망으로 달려가는 자들,
2) 구속되고 재판을 받아 사형에 처해지기 직전에 있는 자들,
3) 질병, 기근, 전쟁 등으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위험 가운데 빠진 자들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든지 위급한 상황에 빠진 사람을 보았을 때 무관심이나, 이기심으로 인해서 그를 구출하는 일을 피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눅 10:30-36). 만일 그들을 구하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나는 그 일을 알지 못했다고 변명을 해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된다. 그가 이웃의 생명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무관심과 같다(마 25:31-46).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더욱 더 피할 수가 없다. 이것은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의 위급함을 보고도 모른 체 하고 도망간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행위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16.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13-14)."
'꿀'은 지혜를 상징한다(14절). 그러므로 꿀을 먹으라는 것은 지혜를 얻으라는 권고이다. 이스라엘에서 꿀은 건강식품이며 어린이들의 성장과 발육을 돕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사 7:15). 그러므로 꿀을 먹는 것이 우리 몸에 유익을 주는 것처럼 지혜도 그것을 얻는 자에게 유익을 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얻고 그대로 실행하게 될 때에 장래가 밝아지게 될 것이며, 이 세상과 내세에서도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17.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15-16)."
악인은 의로운 자의 집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엿보는 일을 금해야 한다. 의인의 집과 그 쉬는 처소는 한 의인의 가정으로 볼 수도 있고,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로 볼 수도 있다. 의인의 가정을 공격하지 말라는 경고는 하나님을 공격하지 말라는 경고와도 같다. 왜냐하면 의인의 가정과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시고 지키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마 16:18).
악인이 의인의 가정이나 교회를 공격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의인의 궁극적 승리 때문이다. '일곱'은 성경에서 완전을 상징한다(잠 6:31; 26:16; 창 4:24; 욥 5:19; 마 18:22). 따라서 '일곱 번 넘어짐'은 완전한 멸망을 말한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악인이 승리하고 의인이 완전한 멸망한 것으로 보여도 의인은 반드시 다시 재기(再起)하게 되는 법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악인은 파멸에 처하면 회생할 수 없다. 왜나면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을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18.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움이니라(17-18)."
참된 지혜 자는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않고 그가 넘어질 때에 기뻐하지 않는다. '즐거워한다'(티스마흐)는 말은 상대의 고통을 보고 비웃는 것을 말하며, '마음에 기뻐한다'는 말은 고통 당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비록 자신을 치고 공격하였던 원수라도 그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그의 편이 되어 주는 것이 성도들의 자세이다. 왜냐하면 그 상대방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기뻐하면 그 진노를 옮겨서 남의 고통을 보고 기뻐하는 자에게 내리실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19.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19-20)."
참된 지혜자는 악을 행하는 자가 잘되는 것을 보고 분을 품지 않으며, 악인의 형통한 것을 보고 부러워하지 않는다. '행악자의 득의(得意)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라'는 말은 원래 '악인들 때문에 스스로 분노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가 악인으로 인하여 분노할 수 있는 경우는 많다. 우리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온갖 부귀 권세를 누리며 사는 사람을 보면 참기 어려운 분노가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때에도 분노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악인은 장래가 없고 악인의 등불은 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악인에게는 장기적인 혹은 궁극적인 면에서 보면 땅 위에서든지 하늘에서든지 누릴 축복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잠시 축복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나 금방 끝이 나고 그의 등불은 꺼져 버릴 것이다.
20.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나니 이 두 자의 멸망을 누가 알랴!(21-22)"
참된 지혜자는 하나님은 물론이고 사회의 질서를 위해 세워진 왕에게 복종하고 반역하는 자와 교제하지 않는다. '반역자'('쇼님')는 '정치 선동가', '어리석은 자들', '딴 길을 가는 자들', '다른 성향의 사람', '달리 생각하는 자', '불 찬성자' 등 다양하게 번역된다. 그런데 이 구절의 강조점이 하나님과 왕에 대한 경외에 있기 때문에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하는 자와 함께 하지 말라는 해석이 자연스럽다(벧전 2:17). 하나님과 왕을 거역하는 자는 즉시 재앙을 받게 될 것이며, 그 때에는 그와 함께 한 자도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구절이 악한 왕도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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