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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의 역습

Joyfule 2012. 3. 24. 08:08

 

[한경데스크] 제조업의 역습
입력: 2012-03-21 17:57 / 수정: 2012-03-22 11:33
김용준 국제부 차장 junyk@hankyung.com

“월드카 르망, 세계시장을 제패하겠습니다.”

1986년 7월 대우자동차가 신차 르망을 출시하면서 내놓은 광고 문구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월드카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당시 대우의 기술력은 차를 겨우 조립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광고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르망은 미국 GM(제너럴모터스)이 추진한 월드카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1980년대 GM은 일본 자동차메이커의 추격에 시달렸다. 더 싸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출구였다. 해법은 글로벌 소싱이었다. 설계는 계열사인 독일 오펠에 맡겼다. 인건비가 싼 한국의 대우가 생산을 담당했다. GM은 이를 수입해 폰티악 브랜드로 미국에서 팔았다. 월드카로 이름 붙인 이유다.

월드카는 일자리를 없애고

GM뿐 아니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1980년대부터 대거 미국을 빠져 나갔다. 때마침 중국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은 문을 열고 이 공장을 유치했다. 미국 기업들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일시적으로 경쟁력을 회복했다. 이렇게 글로벌 소싱은 미국 기업들의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5년 후. 미국은 온통 제조업 타령이다. 해외로 나간 공장을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자고 부르짖고 있다. 정부는 세금을 깎아주기로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해외로 나가는 기업이 받는 혜택을 똑같이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에 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독일처럼 국가가 제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인세를 아예 걷지 말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왜 미국은 다시 제조업을 외치고 있을까. 제조업의 역습이 뼈저렸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은 스스로 ‘중산층의 나라’라고 불렀다. 수많은 공장 근로자들이 해마다 더 높은 임금을 받으며 중산층으로 올라섰다. 제조업은 일자리의 보고이자, 중산층 양성소였다. 미국의 황금기로 불리는 1950년대, 1960년대의 일이다. 

제조업의 빈자리는 금융업과 정보기술(IT)산업이 메웠다. 2000년대 중반까지 순항하는 듯했다. 그러나 안으로는 곪고 있었다. 중산층 대열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어떤 산업도 제조업만큼 고용을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융위기가 덮쳤다. 양극화는 치유하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뒤늦게 미국은 깨달은 듯하다. 제조업을 홀대한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중산층 붕괴 美 다시 제조업

미국뿐 아니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맹비난에도 환율은 못 건드린다고 버티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이 추락해서다. 일본에선 정부가 쓰러져가는 반도체 회사를 지원하기도 했다. 영국은 제조업을 지원할 투자회사를 세운다는 얘기도 들린다. 브라질은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과의 무역전쟁도 불사할 태세다. 최근 전 세계적인 환율전쟁의 이면에도 제조업이란 이슈가 깔려 있다. 세계는 제조업 전쟁 중이다. 

이 전쟁의 참전국이어야 할 한국은 어떤가? 딴 세상 같다. 제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지한 목소리는 사라졌다. 그 자리는 현 정권이 실정을 감추기 위해 던져놓은 재별개혁이란 아젠다가 차지해버렸다.

한국은 제조업의 나라다. 절대빈곤을 탈출한 것도,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어선 것도 모두 제조업 덕분이다. 이런 나라가 제조업의 역습으로 휘청거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조차 하기 싫다. 세계가 제조업 전쟁을 시작한 지금,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김용준 국제부 차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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